아흔 살을 목전에 둔 노모와 60대의 시한부 아들의 이야기
아직...아.아니야..저리가!
엄.마..나 죽어요. 엄마아아.
악몽을 꾸는 건지 아니면 이게 바로 암 관련 카페에서 말하던 섬망 증상인건지 밤새 알아듣기 힘든 혼잣말을 이어나갔다. 확실히 알아듣긴 힘들지만, 그 애처로운 울부짖음 속에서 유일하게 또렷하게 들리는 한 단어, 엄. 마. 여기서 엄마는 그의 어머니, 나에게는 친할머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게 우리가 태어나 가장 처음 배우고 내뱉는 단어는 보통 '엄마'라고 한다. 죽음의 문턱에 서서 허덕이고 있는 아버지가 본능적으로 그때의 엄마를 다시 찾고 있다. 아버지의 무게, 남자의 무게, 남편의 무게를 다 벗어던지고 '엄마, 나 힘들어. 나 좀 제발 살려줘.'라고 그냥 누군가의 아들의 모습으로 무의식적으로 외치고 있는 것일지도..
날이 밝자마자 나는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가 밤마다 할머니를 많이 찾는다고. 며칠 집에 오셔서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좀 갖는 게 어떠시겠냐고. 코로나 19 덕분에 사실 밤새 고민을 했다. 아버지의 가장 진한 핏줄인 할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게 하는 것, 어쩌면 고민할 거리도 아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누군가와 접촉했는지도 모를 또한 바이러스에 취약한 고령의 할머니를 모시고 온다는 것이 맞는 일인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정해 보일지 몰라도 중증 환자를 케어하고 있는 우리 가족의 입장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이러스로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보다도 할머니와의 만남으로 아버지가 느낄 정서적 안정감과 어떻게 보면 마지막으로 혈육의 정을 나눌 기회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모든 두려움을 잊기로 했다. 아버지와 할머니만 괜찮으시다면 앞으로 무엇이 됐든 어떻게 되든 괜찮았다.
일산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를 모시고 오는 길에 백미러로 힐끔 본 그녀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자식이 나이 든 자신보다 먼저 죽어가는 모습을 생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이 잔인한 상황에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꾹꾹 눌러 담아보지만 결국 눈물샘으로 넘쳐흐르고 있었으리라. 아흔 살을 목전에 둔 노모의 눈물은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도 할머니를 만나서 애써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했다. 신기하게도 할머니와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아버지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건지 긴장의 끈을 절대 놓지 않았다. 덕분에 어느 때보다도 어눌하긴 하지만 맑은 정신으로 할머니와 대화를 하였고 이번 만남에서도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좋아지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서로의 눈을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서로가 알고 있음에도 두 사람의 따뜻한 온기가 어떠한 약과 치료보다도 그를 치유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가슴에 묻고 있었다.
"아들, 엄마 간다."
48시간이 채 안 되는 짧고 굵은 시간을 아버지와 함께 한 할머니가 떠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아들, (사랑해. 힘내고 있어.) 엄마(도 곧)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