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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Kim Aug 15. 2020

10. 무엇이든 물어보살

항암치료만이 답은 아닐 수 있다. 연명의료계획서


항암치료를 너무 힘들어하시고
 본인의 의지가 없다면
치료를 지속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무엇이든 물어보살>이라는 프로그램에 (현재는 故)이건명 군이 출연하여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것을 보았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꿈 많은 청년이 직장암 4기를 선고받고 이 세상과 헤어질 준비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내용이었다. 여명이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가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소망들을 수줍게 이야기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어떻게 더 행복하고 소중하게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아무도 감히 답을 내려줄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모습에 나까지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무엇보다도 그가 자신보다 남겨질 가족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 환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남겨질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클 수도 있겠구나. 아버지도 우리 가족이 힘들어할까 봐 몸에서 거부하는 항암치료를 꿋꿋하게 버텨내 보며 억지웃음을 지었던 건 아니었을까.'

항암치료 이후에 점점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해져 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고 자신보다도 가족들을 위해 병마와 힘겹게 싸우며 삶을 인위적으로 연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암 4기인데 그러면  버텨온  아니야?"라고 묻는 질문에  차례의 고통스러운 치료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렸고 이제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자신의 버킷리스트들로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면서 이제야 드디어 본인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감히 응원하고 싶었다. 안아주고 싶었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항암치료를 너무 힘들어하시고 본인의 의지가 없다면 치료를 억지로 지속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간 함께 노력했던 주치의의 냉철한 의견을 듣고 나니 감성에 젖어 모른 채 하고 있던 현실과 이성에 눈이 떠졌고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왔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치료로 큰 효과를 보기엔 어려울 것 같다는 의학적 소견이었으리라. 그나마 있던 면역체계는 엉망이 되었고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두 다리로 잠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폐에 물까지 차게 되면서 삶을 연장하려 했던 치료가 이제는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더 이상 어떤 치료도 받고 싶지 않아 하셨고 병원이 아닌 집에서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셨다. 우리는 아버지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그의 삶이고 그의 선택이기에. 어머니와 의료진들의 입회하에 아버지는 *연명의료계획서에 동의를 하셨고 주렁주렁 매달려 아버지를 옭아매고 있던 링거줄들도 사라졌다. 그토록 원하던 집에서 잘 버텨내 주실지 걱정스러우면서도 병원에서보다 밝아진 낯빛에 나도 잠시 걱정을 내려놓았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걱정이 무엇이든 물어보기만 하면 모든 게 거짓말처럼 해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Youtube에 관련 동영상을 다시 찾아보며 사람들의 생각들을 읽다가 순간 멈칫하게 만든 댓글 하나,

내게는 평범하고 한심하게 흘려보낸 오늘 하루가

그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바라던 하루일지도 모릅니다..


故 이건명 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연명의료계획서란?

암 말기 환자 등이 담당 의사에게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시행 중인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담당 의사가 작성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연명의료계획서 (한경 경제용어사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D.N.R 동의서)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서류다. 19세 이상이면 작성 가능하며, 신분증(주민등록증 또는 운전면허증)을 지참하고, 보건복지부의 지정을 받은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해 작성해야 한다. 등록기관에 등록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는 연명의료 정보처리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어 법적 효력을 인정받는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는 국가생명윤리정책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건소, 의료기관, 비영리 법인 또는 단체에서 작성할 수 있다. 2019년 7월 말 현재, 전국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록기관은 총 110개(보건소 29개, 의료기관 55개, 비영리법인 및 단체 24개, 공공기관 2개)에 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한경 경제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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