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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Jan 05. 2022

2021 연말결산_내가 만난 사람

나의 마지막 팀장님

근무하면서 몇 분의 팀장님을 만났는지 열 분까지 세다 포기했다. 그때가 일을 시작한 지 만 4년쯤 되던 시기였다. 내가 또는 팀장님께서 인사발령이나 소내 업무분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15년 이상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분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2021년은 휴직 중이었다가 9월에 복직을 했기 때문에 단 한 분의 팀장님을 만났다. 그분은 항상 웃으신다. 성씨가 '하'인데 성 그대로 늘 '하하하' 까진 아니어도 '허허허' 하신다. 그 웃음은 가식이 아니라고, 과장님을 비롯한 많은 직원들이 말한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없듯, 팀장님을 좋다 좋다 하는 직원만 있지는 않다. 어떤 직원들은 팀장님의 개인 전화가 자주 울리는 것에 대해 불평하기도 한다. 팀장님과 자리가 가까워 통화 내용을 유추해 보게 된다.


아픈 어머님께서 전화해서 울기도 한다. 자녀분들이 아빠에게 무언가를 부탁해서 갑작스레 휴가를 내느라 직원들 눈치를 보시기도 한다. 친구분들이 관련 업무를 문의하기 위해 전화하거나, 찾아오기도 한다. 두루두루 다 챙기셔야 하고 거절하지 못하시는 걸 보면 나와 참 다른 성격이다. 하지만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나에게 피해 안 주면 땡큐다. 그런데 도움까지 주시니 장점만 보인다. 그저 평범한 분인데, 늘 기쁜 일만 있는 것 같진 않은데 항상 웃으셔서 신기하기도 했다.


경력이 몇십 년이 시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아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직렬과 직급을 불문하고 모르는 직원이 없다. 본청에 회의가 있으셔서 참석하시면, 본청 문을 다시 나오시는 데 발에 걸리는 사람마다 다 아는 직원이라 인사하시느라 복귀가 늦다. 그래서 직원들은 팀장님 왜 이렇게 안 들어오시냐며 또 불평하기도 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 있는데 그렇지도 않다. 어떤 팀장님은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팀장님께 늘 예의 없게 대하신다. 속된 말로 자꾸 와서 갈군다. 그래도 같이 화를 내시지 않는다.(그래서 내가 그 팀장님께 대신 조금씩 복수중이다. 왜 자꾸 우리 팀장님 갈구시냐고!)




그럼 난 그런 사람 좋은 분께 잘 하느냐고? 그렇지 않다. 사실 무서운 팀장님과 일할 때 더 잘 하게 되는 약육강식의 세계. 결재 올릴 때 실수해도 화를 내지 않으시니까, 검토도 여러 번 안 하고 올리게 된다. 특히 회식하자고 하실 때마다 팀원들을 대표해서 거절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헉! 애보러 집에 가야 하는데요, 어머, 야근해야 하는데요, 에구, 약속 있는데요.'

그동안 함께 근무했던 팀장님들이었으면 벌써 삐져도 백 번은 삐졌을 것이다. 혈압 올라 목덜미 잡고 쓰러지시는 분도 계셨을 것이다. 팀장님은 그저 잠시 서운해하시는 내색뿐이다. 금세 또 웃으신다.


연말에 승진 예정자 명단이 뜨는 날이 있었다. 팀장님 성함이 명단 속에 있었다. 승진 예정자가 뜨는 날에는 그 명단에 속한 사람이 있고, 기대했지만 속하지 못한 사람이 동시에 있기 마련이다. 기쁜 사람도 마음껏 웃을 수 없다. 축하하는 사람도 속상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소란스럽지 않게 축하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팀장님은 웃을 수 있었다. 일상을 웃음과 함께하기 때문에, 승진이 결정되고 싱글벙글하셔도 평상시 모습과 똑같다. 누군가 '아이고, 너네 팀장님 승진하신다고 입이 귀에 걸렸더라.'라는 소리를 들어도

'아닌데? 원래 그러신데?' 라고 받아칠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째 끊이지 않는 축하 전화를 '허허허' 받으시는 팀장님 통화 소리를 들으니 팀원으로서 함께 에너지를 받는다.


승진 예정자가 뜬 날, 팀장님께서 급히 조퇴를 하신 날이라 톡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축하드립니다! 사무실로 축하전화가 빗발치고 있어서 대신 받느라 힘들어 죽겠습니다! 오늘은 가족분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시고, 조만간 저희 팀도 축하파티 한 번 해요!"

넓은 인맥은 안 봐도 훤하니, 얼마나 많은 전화 와 톡을 받으셨을까. 전화가 많이 와서 그날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버렸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하게 밤늦게 답장이 왔다.

 "고마워~~~ 그래 조만간 파티하자~~~ ㅎㅎ 그땐 빼지말고~~~~~~~"


            

역시 늘 웃으셨지만 내가 회식을 안 가려고 늘 꼼수를 부린다는 걸 알고 계셨던 것이다. 연말이라 매일 야근해야 했지만, 하루 저녁은 팀장님의 축하를 위해 스스로 회식에 기어나갔다.(이럴 땐 9시 제한 방역지침 칭찬한다.)



꼭 웃어야 하는 상황에서만 웃으며 지낸지 오래되었다. 지위가 높은 분 앞에서 억지로 웃거나, 진짜 좋아하는 직원들과 있을 때만 몰아서 웃는 정도였다. 직원들을 둘러보아도 아직 때묻지 않은 신규 직원 외에는 웃는 걸 보기 힘들고 삭막해진 지 오래다.




한 번 웃음이 터지면 멈추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배꼽 빠질 때까지 웃어야 직성에 풀린다. 가끔 사무실에서 메신저나 휴대전화를 통해 누구와 연락하다 웃음이 터지면 주변 직원들 눈치가 보여 엎드려서 몰래 웃음을 눌러야 했다. (그렇게 웃음을 참다 보면 희한하게 눈물이 난다.)


2021년은 웃음을 참지 않아도 되는 팀에서 근무했다. 올해는 그 팀장님과 헤어져 내가 팀장이 되었다. 늘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웃는 나의 마지막 팀장님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항상 웃고 살아야, 진정 웃고 싶은 순간에도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분이다.


팀장님과 꼭 닮은 케이크와 축하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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