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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Aug 18. 2022

그럴때마다 난 남 탓을 하지

아들이 좋은 거만 닮았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욕심


여름휴가를 맞이해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 투어를 했다. 마음 같아선, 한의원에 이비인후과까지 가고 싶었지만 그럴 체력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더 오래 미룬 급한 곳만 네 군데 방문했는데, 휴가 중 이틀을 꼬박 반납했다.


작년 육아휴직 중이었나? 아이 시력이 좋지 않아서 6개월 마다 검사하라고 하셨다. 그 6개월은 한참 지나고 말았다. 마침 요즘 눈이 빠질 듯 비비길래, 결막염 진료도 볼 겸 정기검진을 가기로 한 것이다. 안과는 진료나, 정기검진 예약이 되지 않는다. 대기가 몇 시간이 기본이므로 휴가를 내고 용기 내어 가야 한다. 이틀 동안 두 번의 검사 후 근시가 많이 진행되었다는 소견을 듣고야 말았다. 또 한차례 대기 후 근시 치료에 대한 안내를 듣고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이제 매 달 휴가를 내고 안과를 가야한다.ㅠㅠ)


각자 아이들마다 아프거나 약한 곳이 있다는 건 물론 안다. 직업 상 더 많이 아픈 아이를 가끔 볼 일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은 한다. 그래도 속상한 걸 어떡하지. 어릴 때부터 아토피와 천식 등으로 모든 연차와 육아휴직을 아이 병원 방문에 쓴 나로서는 눈만큼은 아이 아빠를 닮기를 바랐다. (아빠처럼 눈 작아도 좋으니.)


침울하고 조용한 집안의 공기를 남편이 슬쩍 깬다.

"자기, 몇 살부터 안경 썼지?"

이 상황에 참 기분 나쁠만한 질문이었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하다. 아이가 열 살 될 때까지 아빠 닮아서 편식을 한다, 아빠 닮아서 비염이 있다 등등 아빠 닮아서 아빠 닮아서 아빠 닮아서라는 말을 늘 듣고 살았으니, 시력이 좋은 남편으로서는 복수할 기회가 온 것이다.


난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 게임보이를 들인 이후 급격한 시력 저하로 안경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약간의 수정을 거쳐 전달한다. "6학년 즈음? 그리고 난 책벌레였다고. 쟨 아빠 닮아서 책도 안 읽는데 웬 벌써 안경이냐고!"





다음날은 치과 오픈 시간에 맞추어 충치치료가 예약되어 있었다. 이것 역시, 아빠 닮아서 양치 잘 안 해서 결국 이렇게 됐다고 이야기 한다.(나 닮아서 젤리랑 초콜릿 달고사는 건 극비)


아이가 입을 벌리자 선생님께서 웃으신다. 입이 작아서 귀엽다고 하신다.(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아이는 진료받으며 운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 의사선생님께 입이 아프다고 대답한다. 진료가 끝난 후에도 선생님께서는 같은 말을 반복하신다. 또래보다 입이 작아서, 아이가 치료를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만 아니었어도, 마스크만 안 쓰고 있었어도 선생님께선 아이 입 크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셨으리라 장담한다. 나 역시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위축되지 않고 선생님의 말씀에 눈을 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저는 입이 크답니다~ 딱 봐도 이 덩치에 입이 작을 리 없잖아요.)


결국 그 이야기를 아이 아빠에게 하고 말았다. 괜히 내가 잘못한 것 같은 일은 꼭 누구한테 말해야마음이 가벼워지므로.

"치과 선생님께서 우리 단비가...입이 너무 작다고..."

풉!!!! 남편이 피식 웃더니, 급기야는 소리 내어 계속 웃는다.


이틀 연속 아이가 병원에서 고생한 이유가 본인의 유전자가 아닌 내 유전자 때문이라는 것에 안도한 나머지 기뻐 죽겠나 보다. 참고로 난 치과 치료 중 입이 찢어진 경험이 있다. 그때 찢어진 덕분에 입이 오른쪽으로 조금 커지긴 했다.


법정 스님의 엄마 수업을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깨달은 점은, 아이가 남편의 안 좋은 점을 닮았다고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이다. 아이는 당연히 남편을 닮았을 테니, 남편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내 아이 역시 부정적으로 클 것이라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아이 문제로 속상하고 힘들 때마다 남편을 위해 백팔배를 하라고 제안한다. 그래도, 그건 차마 못 하겠다. 아이가 클수록 자꾸 남편 탓하는 못난 내가 참회할 수 있도록, 남편이 날 위해 백팔배 좀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기독교니까 백일기도라도)


이번엔 남편에게 책임을 못 돌리고 나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아들아, 안질환과 작은 입을 물려줘서 엄마가 미안해ㅠㅠ(사실은, 예민해서 잠도 잘 못 자고 새벽에 여러 번 깨는거 그것도 나 닮은거다.....)


#그래도남편은내입닮아먹는게이쁘다고

#그래도남편은아이눈이커서다행이라고

#쓸데없이낙천적인것도

#아빠를닮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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