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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씨 Jul 27. 2019

퇴사하자마자 수술을 했다

좀 쉬어요. 


무릎수술


 퇴사 후 한국에 가기 전에 2가지 준비를 했다. 나 자신과 내 사업 만들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할 멘토님을 찾은 것과 취미였던 블로그에 제대로 글을 써 보고자 글쓰기 강의와 그 외 듣고 싶었던 강의들을 신청했다. 이것들만 제대로 해 내도 뭔가 보이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건 완치하려면 수술해야 돼요  

 


 이번에도 염증 진단을 받고 주사치료 몇 번이면 완치될 줄 알았는데 내 무릎의 염증은 물혹이 되어 있었다. 1년 전 몇 번 주사치료를 해서 경과를 보자고 했을 때 비행기 값이 아까워서 다시 한국에 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일본에서 몇 군데고 병원을 다녔지만 제대로 치료해주는 곳이 없어서 병원에 가는 걸 포기했는데 그 때 좀 더 찾아봤어야 했다. 나는 왜 스스로 병을 키운 것일까. 한심했다. 


 3박 4일의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 9시 수술 예정이라 그전에 병원에 가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대기했다. 


들어가실게요.  


 이 한마디와 함께 수술실로 이동했고 수술 베드 위에 올라갔다. 건강하게 자라온 내게 수술이란 단어 그 자체로도 공포였다. 수술실은 왜 이렇게 공기가 찬 것인지, 안 그래도 긴장되는데 차가운 공기 때문에 더 무섭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아니다. 간단한 수술이다. 눈뜨면 끝나 있다. 이걸로 내 무릎이 낫는 거다. 좋은 거다. 스스로에게 되뇌며 천천히 호흡하려고 노력했다.


 사타구니인가, 엉덩이 쪽에 왼쪽 하반신 마취 주사를 놓으셨다. 마취액이 퍼지는 싸하고 아프고 무서운 느낌이 너무 싫었다. 마취 선생님과 감각이 무뎌진 것을 확인한 것을 마지막 기억으로, 눈을 뜨니 병실 침대 위였다.  



 무릎 쪽에 작은 구멍 2개를 뚫어서 관절내시경으로 수술하는 거예요.라고 설명을 들었는데 깨어보니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칭칭 붕대가 감아져 있고 반깁스를 대고 있었다. 마취가 덜 깨서 앉아있기가 힘들어 그 날은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새벽쯤 되었을까.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순간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눈 앞이 캄캄해지고 현기증이 났다. 아직도 덜 깬 마취 때문이었다. 엄마와 옆 침대 할머니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에 갔다. 겨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갈 뿐인데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보다 큰 것이었다. 침대로 돌아와 발가락을 움직여보았다. 까딱까딱 움직였지만 아직 둔한 느낌이 강했다.

   

 수술 다음 날부터는 오래 앉아있기도 했고 식사도 할 수 있었다. 요즘 병실은 침대마다 커튼으로 공간을 나눌 수 있고 침대마다 TV가 있어 꽤 쾌적했다. 나 빼고 모든 할머니들이 코를 심하게 곤다는 것 빼고. 엄마는 밝은 기운을 받아야 한다며 하루 종일 아기들이 나오는 예능을 틀어주었다. TV를 보고 할머니들과 수다도 떨고 맛있는 걸 주고받으며 나름 즐거운 병실생활을 했다. 하지만 가끔씩 간호사님이 놓아주는 항생제 냄새는 다신 맡기 싫은 것이었다. 다 큰 딸의 병간호를 하느라 보호자용 침대에서 쪽잠을 자는 엄마에게도 미안했다.  




다리재활


 수술 4일 후, 퇴원을 했다. 반깁스를 풀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하지만 그새 굳어버린 왼쪽  무릎은 구부러지지 않았다. 근육이 빠져서 오른쪽 허벅지와 다른 게 느껴졌다. 구부릴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며 아침저녁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재활치료를 진행했다. 1 달이면 나아지겠지 했던 게 2달 반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오른쪽과 비교하면 왼쪽 다리는 약하다.


 나는 직장에서 3개월 단위로 결과를 내는 일을 해 왔다. 남들과 다른, 혹은 남보다 빨리 결과를 내는 사람이 표창을 받는 회사. 대학도 취업도 빨리 한 방에 잘 되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자라났다. 그런 나라서 어떤 사람은 수술한 지 1달 만에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다는 후기를 보고 왜 내 다리는 아직 이 모양인지 불안했다.


 그런데 재활을 다 끝내고 깨달은 것은 세상의 어떤 중요한 것들은 빨리, 많이보다 조금씩 꾸준한 노력과 절대적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무릎 재활에는 보조기구로 무릎 각도를 내는 치료가 있는데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된다. 어제 문제없이 냈던 각도라도 오늘 다시 해 보고 문제가 없다면 조금씩 추가로 각도를 내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 나의 상태에서 무리가 가지 않는 최선의 노력으로 원래의 상태가 되기까지 치료를 진행한다. 그 기간 동안 딱히 결과가 눈에 띄지 않기에 불안했지만 분명한 건 매일 조금씩 나아졌고 시간을 지나자 완치되었다는 것이다.


 퇴사 후에 정말 내가 뭔가를 해낼 수 있을까? 불안한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재활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하는 데에만 충실한다면 그것들이 쌓인 어느 날, 무언가는 이루어져 있을 거라고. 빨리, 많이 결과를 의식하기보다 그 결과를 향해 어떻게 하면 꾸준히 오랜 시간 나의 노력을 지속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 몸이 내게 선물해준 것


 퇴원하고 나서 신청했던 모든 강의를 취소했고, 1주일에 1번 있는 코칭 상담도 미뤄두었다. 다리 재활 이외에 어떤 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어떤 것도 중요한 게 없었다. 지금까지 했던 진로에 대한 고민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푹 쉬자고 마음먹고 정말 원 없이 푹 쉬었다. 전에는 쉬는 시간에도 머리로는 뭔가를 계속 고민하곤 했는데 이때부터는 진짜 모든 걸 다 비우고 쉬었다. 원래 계획했던 자기이해나 사업구상 등 뭐 하나 제대로 시작한 게 없었지만 나는 이 기간 동안 내 평생의 가장 중요한 걸 얻었다.


 1달의 재활 후,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헬스장에 갔다. 약간의 통증이 있긴 했지만 하루하루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못 들었던 무게를 거뜬하게 들게 되고, 힘이 들어가지 않던 무릎과 허벅지에 힘이 생겼다. 땀 흘리며 헉헉대는 순간이 좋아졌다. 헬스장에 안 가면 신경 쓰이고 다녀오면 기분이 좋았다. 운동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30년 동안 머리로 생각하던 건강이 최고야. 운동은 꼭 해야 돼.라는 말을 2달 반 동안 몸으로 부딪쳐서 완전히 이해했다. 회복력이 빠른 20대였고, 완치가 불가능한 병도 아니었고, 간단한 수술과 재활로 나을 수 있는 병으로 건강의 소중함을 각성시켜준 내 몸에 감사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몸이 아프다는 것은 문제가 있고 쉬어야 한다는 신호이다. 나는 이 신호를 가볍게 여기고 무시해왔다.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내 몸도 한계가 온다는 걸 이해하고 더 챙겨줘야 한다. 



 혹시 나처럼 어딘가 아프지만 그냥 참을 만해서 참고 계신 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내일은 꼭 병원에 가시길 바란다. 약을 먹고 충분히 쉬고 운동을 하시길 바래본다. 






This story 

 공부한 걸로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에 갔다. 회사원이 되어 돈은 벌었지만 하루하루 내가 어딜 향해 달려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마음이 외쳤다. 서른 하나, 그제야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자발적 방황기를 갖기로 결심한다. 잘 쉬고 잘 자라기라는 나만의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된 현재진행형 일본 백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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