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전환장애란 마음의 병이 신체화로 변한 병이다.
중년의 나이엔 흔하게 나타나는 병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화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특이 케이스에 속했다. 나의 인터뷰는 늘 녹음되었다. 녹음된 자료가 인턴들의 교육자료로 쓰였다고 했다.
전환장애 환자는 폐쇄병동에서도 처음 보는 사례라고 간호사와 보호사들의 이야기였다. 119 구급대원들도 처음 보는 증상이라고 간호사에게 묻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쓰러지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일반병실에서 치료를 하다 폐쇄병동 리모델링이 끝나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갔다.
그전에는
암병동, 내과병동에 입원하면서 다양한 검사를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특별한 검사 방법 중에 하나인 수면 유도제를 써서
얕은 잠에 빠지게 한 상태에서 무의식의 나를 관찰했는데 정말 신기했다고 한다. 주치의가 질문하면 난 잠꼬대처럼 말대답을 전부 했다고 한다.
2회의 무의식을 들여다 보고 원망과 상처로 인한 것이 병의 원인으로 드러났다.
2013년 2월 13일 대학병원 외래진료를 보면서 병명을 알게 되었다. 들어보지도 못한 병명 전환장애.
첫 외래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쓰러져 교수님을 제대로 뵙지 못하고 딸이 병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바로 입원장이 나와 입원실로 올라갔다.
입원 중 평상시에는 멀쩡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면 비상을 걸기를 수십 번 처음 처방받은 약이 자낙스정 하루 4알을 먹으니 호전되어서 2월 28일에 퇴원을 했다.
2번째 입원은 3월 14일 약을 찾으명서 경두개 자극술을 (전두엽에 자극을 주는) 하면서 호전이 있어 5월 4일에 퇴원해서 외래로 상담치료를 1주일에 한 번씩 받으러 다니며 지나면서 좋아지기도 했다. 그 당시는 심하지 않은 상태라 다행히도 약을 조절하고 나와서 8월까지는 외출도 하면서 지냈다.
3번째 입원은 8월 14일 주치의 권유로 폐쇄병동으로 입원했다. 집중치료실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첫날 너무 힘들었다. 첫날 9시에 약을 먹고 누웠는데 잠이 안 와 부스럭거리는데 옆 환자가 버럭 화를 내는 것이다 겁을 잔뜩 먹고 아침에 회진 돌 때 주치의에게 병실을 바꿔 달라고 하니 여기 스트레스가 10이라면 밖은 100도 넘는데 견뎌내지 못하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냐고 하는 말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치료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활동적으로 생활하며 환우들과 친하게 지냈다. 생각보다 병동생활은 즐거웠다. 성실한 환자로 착실하게 생활했지만 상태는 더 심각해진 상태로 변했다. 밥 먹다 의자에서 떨어지고 침대에서 떨어지고 하루에도 수십 번 그렇게 지내야만 했다.
명절과 제사가 중간에 있어서 다 피하고 나가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따라 10월 27일에 퇴원했다.
퇴원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병은 더 악화되어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답답함이 목까지 차니 나 스스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보이는 줄만 있으면 눈이 뒤집혀 목을 조르기를 반복하니 심각성을 느낀 남편이 다른 병원에 가보자고 해 의뢰서를 가지고 서울 삼성병원에 갔지만 결과는 같았고, 지금 다니는 교수님께 교육을 받는 교수님이라며 같은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오는 길에 딸이 아는 분이 잘 보시는 무당이 있다 해서 갔는데 보자마자 신을 받아야 한다고 하며 이별수와 이동수가 들어있다며 굿을 하라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와서 친정엄마가 아는 지인분이 무당인데 용하다고 해 갔는데 결과는 마찬가지 속는 셈 치고 천만 원 드려서 굿을 하자는 것이다. 천만 원이 작은 돈도 아니고 개 같은 소리를 한다고 하고 돌아서 왔다.
다시 11월 3일에 입원을 했다. 딸의 생일날에 말이다. 1주일도 집에 있지 못하고 바로 들어가야만 했다.
약을 바꾸고 상담치료를 하며 약이 맞고 증상이 없으면 내가 나간다고 하면 퇴원을 시켜 주셨다. 11월 27일에 퇴원하자마자 증상은 심각해져서 바로 12월 1일에 5번째 입원을 했다. 증상은 아무 데서나 쓰러지고 침대에서 떨어지고 해서 내 자리에는 언젠가부터 매트리스가 두 개 바닥에 깔려 있고 바닥에서 자야만 했다. 바닥에 자면서도 발작이 나면 침대 구석으로 돌아다니며 여섯 개의 침대 아래를 다 쓸고 다녔다.
작은 딸이 고3일이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수능날도 입원하고 있었다.
2013년에만 5번의 입원으로 6개월 정도를 병원에서 보냈다. 2014년 1월 6일에 퇴원을 해서 해를 넘겼다. 자주 입원하다 보니 쭉 있으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병의 호전은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 5번을 더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중간에 최면치료도 받았지만 치료비 정도의 기간만 좋아지고 그다음은 제자리였다.
10번의 입원에서 써볼 수 있는 약은 다 써봤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악화되어 입원장이 다시 나왔다. 바꿀 약도 없다며 다시 입원이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입원을 거부하고 그냘 돌아왔다. 참담한 심정으로...
무당의 말을 듣고 굿을 할 수는 없었다. 용하다는 사람마다 큰 신이 들어와 있다고 당장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소리에 겁이 났다.
새로운 삶의 길을 가기에는 너무도 무섭고 딸들도 생각해서 도저히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최면치료 선생님께 자문을 구하기로 하고 전화를 하니
다른 방법이 있다고 했다. 바로 퇴마치료였다.
그다음 날 치료를 시작해야만 했다.
퇴마치료 또는 빙의치료라는 것이다.
그래도 살아야 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 선택지였다.
치료비가 상당했다. 영이 진짜 있는지 확인하는데만 90만 원이 들어가고 퇴마치료에 들어가면 영에 따라 비용을 또 지불해야만 했다. 그 비용이 천오백만 원
병원 치료비만 몇천을 쓴 상태에서 또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할 수 없었다.교수님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해 봤고 더 할 치료도 없다 하시고 신 내림을 받아야 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셨지만 힘든 나 그리고 가족들이 힘든 상태였기에 해야만 했다.
퇴마를 시작하고 나를 본 퇴마사는 영이 48명이 있다고 헉 그렇게나 말이 할 말이 잃었다.본격적으로 퇴마치료를 받기 시작하며 증상은 신기하게도 사라졌다.
48명의 영들을 만난 시간을 써 내려가려고 한다.
소설이나 드라마 소재 같지만 나에게 벌어진 실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