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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삶 Aug 18. 2021

삼십 대에 입문하며

-삶의 나침판 되감아보기

갓 삼십 대에 접어든 나는 앞으로의 삶을 정의 내리기 위해 글을 써보기로 했다. 


정의? 정돈?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나의 삶에 대한 태도, 나의 가치관, 그 밖에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뼈대를 고르고 새로 짜 맞추는 작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립하다, 재정립이 옳은 표현일까.


20대의 어린 나는 그만큼 미숙했기에 시행착오도 많았고 그 만큼의 어리숙한 흑역사를 이룩했다. 갑자기 떠올라도 이불을 차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니 망각의 축복이 내게 세례를 내렸거나 흔히 말하는 정신적 성숙이 조금이나마 이뤄졌거나 둘 중 하나겠지. 어쨌건 당시의 많은 실수들에 감사한다. 덕분에 앞으로는 다시 같은 방향으로 넘어지게 된다 해도 낙법 비슷한 거나마 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더는 어리지 않고, 더불어 갈 길이 구만리인 서른의 나는 범람하는 어른의 책임감과 ‘젊은이 멍청함 면책특권’의 유통기한이 다 했음을 절실히 실감하고 있기에 내 머릿속은 일주일 내내 청소 한 번 안 한 원룸 자취방처럼 어지러웠다. 그것은 더 이상의 ‘낭비’를 하지 않고 좀 더 실용적이고 안전하게 나의 삶을 꾸리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머리가 굵어진 만큼 나는 더 효율적으로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가 추구하는 삶과 행복은 정확히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알아야 했고 더불어 그 길을 걷기 위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가점검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직업상 상상과 생각하는 것이 의무에 가까운 나라 할지라도 그건 마찬가지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검색하여 경로를 알아도 내 차의 기름이 어느 정도인지, 과연 고속도로를 달릴 만한 운전실력이 내게 있는지 점검해봐야 할 테니까. 


앞으로의 글들은 내가 탐색한 ‘나’라는 인간-삼십대 초반, 프리랜서, 결혼 신중론자, 1남 1녀 중 막내딸, 기르고 있는 동물 없음-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정의내린 삶의 정의에 관한 이야기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환경이거나 추구하는 바가 닮은 사람이라면 참고할 만할 테고, 결국 인간은 거기서 거기니까 뭐 하나 건지시는 거라도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너저분한 타인의 인생을-헛발질을- 구경하는 재미라도 있기를 바란다. 


다만 앞서 반드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건 내가 찾아가고 있는 답에 불과할 뿐, 여러분의 답과는 100% 같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부디 분별력을 갖고 제 보잘것없는 의견을 관음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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