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풍 Sep 14. 2022

엽편 소설 - 매미

매미      


 그저 5천 원짜리 매미였을 뿐이었어요. 중고마켓을 보며 저렴하게 식료품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나 살펴보던 중 희한한 의뢰가 적혀있는 게 보였어요.      


“곤충채집 매미 한 마리 잡아주실 분? 사례 5천 원”     


 한 마리에 5천 원이라니... 아무리 자본주의 세상에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고작 매미 한 마리를 5천 원에 사겠다는 감사한 분이 있을 줄이야.... 번개 같이 채팅을 걸어 의뢰인에게 수시간 내로 잡아서 대령하겠다고 아뢰었죠.      


 마침 전 일주일이 넘도록 어떤 소음공해에 시달리던 상태였어요. 소음의 근원은 집 근처 노인정 앞 나무 위에 앉아 울어대는 철 지난 매미 한 마리였죠. 가을이 한창인데 정신 나간 매미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녀석이 무려 5천 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귀하신 몸이 될 줄이야....     


 창고를 뒤져 간신히 오래된 잠자리채 하나를 찾아냈어요. 들러붙은 먼지들을 털어내니 마치 무협영화에서 전설의 보검을 찾은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더군요. 잡동사니를 구석에 처박아둔 채로 오랜 세월 보관했던 저의 영특함을 기특하게 생각하면서 매미를 포획한 후 담아 놓을 플라스틱 용기도 찬장에서 꺼냈어요. 그리고 낮에도 미친 듯이 아름답게 울어대는 5천 원을 사냥하러 나갔죠. 더 이상은 소음이 아니었어요. 아름다운 5천 원의 울림이었으니까요.      


 나무 앞에 서자마자 ‘풉!’하는 웃음이 나오더군요. 바로 눈앞에 ‘날 잡아 잡숴!’하고 나무에 붙어있었거든요. 멍청한 매미라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손으로 잡을 수도 있었지만 외관이 상하면 고객님이 분노하실지도 모르는 일이라 잠자리채로 포획했어요. 빠르게 할 필요도 없더군요. 그냥 ‘툭!’ 갖다 대고 끝이었어요. 조심스레 플라스틱 용기를 열어 망에 갇힌 매미를 집어넣으려던 순간이었어요. 마치 언젠가 한번 겪었던 것 같은 데자뷔가 일어나더라고요. 매미가 말을 했거든요.     


“자... 잠깐만요!”     


 분명 살려달라는 피곤한 애원을 할 게 뻔했죠. 어떤 데자뷔인지 기억났어요. 어미 모기에게는 돈이 걸려 있지 않아서 사정을 봐줬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5천 원이 걸려있었으니까요. 프로는 의뢰인과 계약을 했으면 묵묵히 수행해야 하는 거였어요. 무표정하게 입을 꾹 닫은 채로 플라스틱 용기에 매미를 밀어 넣으려던 순간 전 멈칫했어요. 또 마지막 비명이자 절규였죠.      


“저! 그녀를 꼭 한번 만나야 한단 말이에욧~~~!”    

 

“그녀”라는 단어가 저의 귓바퀴를 돌아 귓구멍을 파고들었을 때, 모든 상황을 뒷전에 두게 만드는 궁금증이 하나 생기더군요. ‘그녀는 누구지?’라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물어봤어요.  

    

“그녀는 누구를...?”     


 매미의 눈은 참 크더군요. 그리고 서글픈 눈이었어요. 저의 물음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는지 매미는 갇혀있는 망 사이로 앞다리는 내밀며 말했어요.      


“7년 전에 만났던 굼벵이예요. 나중에 우리 닮은 아이를 갖기로 했는데 주민센터에 있던 나무를 노인정으로 옮겨심으면서 서로 떨어져 버렸어요. 하지만 분명 제 목소리를 들으면 찾아올 거예요. 그렇게 하기로 했거든요”


 ‘7년’ 정확히는 모르지만 사람으로 치면 ‘70년’을 기다린 셈일 거예요. 매미는 성충이 되면 얼마 못 산다고 알고 있거든요. 너무 길었어요. 그것도 어릴 적 약속을 믿고 있는 남자 매미라니.... 꼭 그녀가 아니면 안 되냐고 묻고 싶어 지더라고요.      


“아니, 매미로는 얼마 못 산다고 알고 있는데 그럼 그 짧은 시간에 다른 매미라도 알아보지 그 매미를 계속 기다린 거야? 지금 가을이야 이 양반아.... 그녀는 이미 시집가서 애들 다 낳았어. 너 결국 장가 못 가고 끝장날 판이라니깐.”     


 매미는 자신의 처한 상황을 잊었는지 기분이 나쁘다는 듯 망 사이로 내민 앞다리를 강렬하게 휘저으며 말했어요.      


“아니에요! 그녀는 그럴 매미가 아니에요. 우린 정말 사랑했다고요. 우린 사람과 달라요. 마지막 사랑을 나누면 전 바로 죽고, 그녀는 아이를 낳고 죽죠. 우린 목숨을 걸고서 사랑을 약속해요. 그녀도 어딘가에서 지금 절 찾으며 날아다닐 거예요. 전 느낄 수 있어요.”     

“야! 그렇게 멍청한 게 어딨냐. 딱 한번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고 끝날 걸, 그냥 이쁜 매미 아무나 골라 잡지 그걸 미련하게 기다리고 앉아있냐!”     

“맞아요! 우린 원래 그래요. 그 한 번을 위해 평생을 공들이죠. 인간들은 같이 한 시간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아요. 우리에겐 기다림도 같이 한 시간이거든요. 서로 그리워했다면요.”     


 인간 세계에도 그렇지만 꽉 막힌 골치 아픈 로멘티스트들이 말은 또 잘해요. 참 재수 없죠. 매미도 재수 없게 느껴지더군요. 더군다나 머리에서 5천 원이 날아가고 있었으니까요. 망에서 매미를 꺼내 주며 말했어요.     


“며칠 또 시끄럽겠구먼....”     


 그러자 매미가 나무에 붙은 채 몸을 제 쪽으로 돌려 말하더군요.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그동안 시끄럽게 울어서 미안해요....”

“뭐? 마지막이라니?”

“수명이 다 했거든요. 우리는 10일 정도밖에 못 살아요. 오늘이 저에겐 마지막이에요.”

“야! 그럼 오늘 못 만나면 어떡할 건데?”

“물론 꼭 한번 만나는 게 제가 간직했던 꿈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우리에겐 기다림도 같이 한 시간이라고요.”     


 멍청한 매미... 더 이상 말을 섞을 가치가 없다고 느꼈어요. 한심한 녀석으로부터 등을 돌려 집으로 향하며 말했어요.      


“야! 꼭 성공해라!”     

 

 매미의 낮은 울음이 등 뒤에서 들려오더군요. 중고마켓 의뢰인에게 다시 채팅으로 매미를 잡지 못하게 되었다면서 죄송하다고 이야기했어요. 곤충 표본으로 쓸 거였는데 마침 상태 좋은 매미가 죽어있는 걸 발견해서 해결됐다고 하시더라고요.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매미가 세차게 울더군요. 그런데 전혀 시끄럽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전 그저 시계를 자꾸 확인했어요. ‘오늘까지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자정이 다 될 때까지 울어대서 나중엔 걱정이 되더군요. 그러다 ‘잠깐 나가볼까?’란 생각이 들었을 때였어요. 매미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달라졌어요. 전 귀를 쫑긋하고 그 소리를 자세히 들었죠. 지금까지 그녀를 찾을 때처럼 길게 우는 소리가 아니었어요. 짧게 두 번씩 그리고 또 짧게 두 번씩.... 그건 분명 기쁨의 울음이었어요. 그리고 울음을 멈췄어요. 전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킥킥 대며 혼잣말을 했어요. ‘그렇지!’     


 다음날 노인정에 있는 나무 근처에 가보니 매미 두 마리가 죽은 채로 나란히 땅에 누워있더군요. 손수건을 펴서 조심스레 담아 집 앞 화단에 묻어 주었어요. 그리고 내년엔 매미 부부가 묻힌 자리에 백일홍을 심기로 했어요. 백일홍은 백일 동안 피어서 이름이 ‘백일홍’이라고 하더라고요. 내년엔 백일 동안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겠죠. 그리고 멍청한 매미였지만 전 해낼 줄 알았어요.





작가의 이전글 시 - 다시 알이 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