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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간만에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입니다. 다소 도발적이고 많이 선정적이던 '채식주의자' 이후로 그녀의 소설은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으로 읽는데도 흡입력이 상당합니다. 밥알이 씹히지 않는 죽을, 부드러운 우동을 들이켜듯 먹는 기분입니다. 이질감 없이 몇 장을 순식간에 읽었습니다. 소설가는 다르구나. 감탄하며 읽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읽습니다. 몇 장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며 읽습니다. 그래도 분위기에 취해 자꾸만 읽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접하는 수없이 많은 글들이 얼마나 거친지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작가는 독자들이 그렇게 읽히기를 바란 것 같습니다. 심지어 대화체에 따옴표도 쓰지 않았습니다. 평서문처럼 곳곳에 대화가 숨어 있어 내가 방금 읽은게 대화인지 묘사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래도 계속 읽습니다. 좋은 글은 이렇듯 여러가지 모양을 하고 있어요. 어떤 글은 거칠게 쓰여도 내용에 감복하지만, 이렇듯 '읽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소설은 오랫만이네요. 그렇습니다. 저도 언젠가 한강이 쓴 글처럼 '잘 읽히는' 짧은 소설 한 편을 쓰고 싶습니다. 한글이 사랑스러운 오늘입니다. 매번 눈으로 보는 작업만 하다가 오랫만에 '읽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나도 언젠가 이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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