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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말 좋아하는게 뭐니?

아빠가 딸에게 쓰는 편지 #04.

희원아, 아빠가 아는 분 중에 지방대를 나온 한 사람이 있어. 이 분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데 자꾸 내 질문이 어럽다고 투정을 부리는 거야. 그래서 두 번 만날 일은 없겠다고 생각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었지. 그런데 왠걸? 이 분이 벌써 일곱번 째 책을 썼고,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어. 게다가 연수입이 상위 1%에 든다고 하더라고. 도대체 얼마나 벌어야 상위 1%가 되는지 알아봤더니 1년에  2억 1571만 원을 벌어야 한다나. 어때 놀랍지 않니?


그런데 그 비결이 뭔지 아니? 자기 자신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는 거였어. 이 분은 자기 자신이 뭘 잘하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에게 설문 조사를 했다고 해. 의외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거든. 그러니 희원이 너도 친구들에게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문지를 한 번 돌려봤으면 좋겠어. 그러면 네가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은 더 정확히 알 수 있을거야. 그러고보니 아빠도 한 번 해봐야겠다. 서로 비교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그 다음에 한 일이 자신이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을 구분하는 거였어. 그런데 의외로 내가 잘하는 일을 찾는 일은 어려워.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언제나 있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이 분은 자신이 못하는 것부터 찾아가기 시작했어.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영어야. 이 분이 토익 시험을 쳤는데 200점이 나왔대. 그래서 영어는 바로 포기하기로 했지. 그대신 수능 시험을 만점 받은 사람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1년 간 그 내용을 유튜브에 올렸지. 그리고 '나는 당신처럼 공부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썼어. 그리고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지. 왜냐하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내용이었거든.


아빠가 보기에 희원이는 수학으로 성공하기는 힘들거야. 그렇다면 수학과 관련한 직업들은 미리 제외하는 것도 한 가지 전략이 될 수 있어. 이를테면 회계사나 재정 전문가가 되는 일은 애초에 18지망으로 제외하는 거지. 그렇게 내가 경쟁력이 없는 부분들을 하나씩 제외해가다보면 정말 잘하는 일을 찾을 수 있어. 그런데 아빠가 지난 번에 만난 서울대 출신의 코치님도 똑같은 방법을 썼더라. 신기하지 않니?


이 코치님은 대학에 다닐 때 이미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을 찾아다녔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공무원이었어. 그런데 2:8 가르마를 하고 나온 그 분은 그냥 까칠한 사람이었대. 재미도 없어보였고. 그래서 다음에는 회사원이 된 선배를 찾아갔다지. 그런데 꿈도 희망도 없이 일하는 모습이 공허해보였대. 그리고 공무원이나 회사원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지. 그리고 찾아간 사람은 전공을 살린 사회복지사였대. 그런데 정말 가치있는 일을 하는 건 맞는데 가난해 보여서 싫었다고 해. 그래서 이분은 어떤 직업을 선택했을까? 궁금하지 않니?


이 분은 서울대를 나왔지만 숫자에 약해서 회사에서 박스 세는 것도 실수를 많이 했었대. 그런데 우연히 '공익 마케터'란 직업을 알게 된거야. 그게 뭐냐하면 유니셰프와 같은 국제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래. 여기서 하는 일은 유명한 연예인이나 회사들을 만나 기부를 요청하는거야. 그런데 이 분이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나봐. 거기다가 국제단체니까 폼도 나는 거지. 영어를 잘하니 다른 사람보다 인정받기도 쉬웠고. 그래서 유니셰프를 다니는 동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대.


희원아, 어른들도 자신이 뭘 잘하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출근하기 싫어서 우는 사람도 많이 봤어. 그러니 네가 잘하는 걸 찾기보단 우선 정말로 못하는 것들부터 찾아서 리스트에서 제외하는거야. 앞서 얘기한 것처럼 숫자 다루는 일은 아무리 멋진 직업이라도 내 갈 길이 아니다 생각하는 거지. 게다가 너는 영어나 국어 지문 읽는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잖아. 선택 장애도 좀 있고^^ 그러면 빠르게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직업도 리스트에서 빼버리자고. 싫어하고 잘 못하는 일을 찾는건 그래도 좀 쉬워보이지 않니?


그 다음에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는 거야. 앞서 말한 코치님은 사람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하셔. 그리고 폼 나는 일을 좋아하시고,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것도 좋아하셨대. 그래서 유니셰프에서 일하는 동안 엄청나게 좋은 성과를 쌓으셨고 칭찬도 많이 받으셨대. 아빠가 보기엔 희원이도 사람과 어울리는 걸 그렇게 어려워하는 것 같진 않아. 친구들도 잘 사귀고. 게다가 엄마가 물려준 튼튼한 허벅지도 있지. 건강한데다 성실하기까지 해. 그리고 화나 났다가도 금방 기분 좋게 방문을 걸어나오는 걸 많이 봤어. 이런 장점이 모두 칭찬받는 직장엔 뭐가 있을까?


이런 장점을 필요로 하는 곳은 아마 간호사나 공무원, 군인 같은 직업이 아닐까 해. 어때? 당장 마음에 드는 직업은 아니라고? 그런데 희원아. 이런 곳이 화려해보이진 않을지 몰라도 너 같은 성향이 사람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일하기엔 너무 행복한 곳이 될거야. 다들 공무원이 되고 싶어하는 건 그 때문인데 사실 월급도 적고 스트레스도 많아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대. 그런데 너는 일단 들어가면 잘 적응하고 오래 다닐 것 같아. 너는 사람 대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고 끈기가 있고 표정도 밝으니까. 그렇다고 위에 말한 직업을 꼭 하라는건 아니야. 네 장점과 어울리는 직업을 조금씩 찾아보자는 거지.


아빠 경험으로 그 일을 밖에서 볼 때와 직접 해보는 건 엄청나게 차이가 나. 아빠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글쓰기는 좋아해도 남 앞에서 강연하는 건 한 번도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런데 아빠가 대학 다닐 때 발표 수업을 그렇게 좋아했다는 거 아니? 아빠도 몰랐어. 아빠한테 강연이라는 재능이 있는 줄은. 그런데 할 때마다 어렵고 식은 땀이 나도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걸 보니까 힘이 나는거야. 계속 하게 되고. 게다가 가끔이지만 1시간에 300만 원씩 받는 직업인 줄 누가 알았겠니. 그러니 처음부터 아니라 생각하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그 일들을 경험해봤으면 좋겠어.


오늘도 말을 하다보니 말이 길어졌네. 꼰대처럼 잔소리하면 안되는데. 아무튼 정리하자면 네가 싫어하고 잘못하는 일부터 제외해보자. 그리고 가능성 있는 직업들을 간접 체험해보는 거야. 공무원 언니도 만나보고, 간호사 오빠도 만나보자. 오빠 친구가 간호사가 된다고 하니 경험해볼 기회도 오지 않을까? 군인이나 물리치료사처럼 튼튼한 몸이 꼭 필요한 직업도 한 번 고민해보고. 그러다보면 네 장점과도 맞고 좋아하게 되는 일이 분명히 생길거야. 대학은 그걸 발견하고 나서 가도 괜찮아. 아빠도 상황만 되면 내년부터 경영대학원을 다닐거거든. 대학이란 원래 그런 곳이야. 필요할 때 더 배우기 위해 다녀야 하는 곳이지 점수 따라, 고3을 마치고 가야만 하는 곳은 아니라는 거지.


희원아,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니? 항상 시간이 모자라 애를 쓰는 모습을 보니 아빠가 보기에 너무 딱해보일 때도 있어. 하지만 생각의 속도가 느린 것과 무능한 건 전혀 다른 거야. 빨리 가는 것보다 느리지만 꾸준히 일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 너한테 맡는 일을 아빠랑 함께 찾아보자. 안맞는 건 빼고 맞는 건 경험해보는 거야. 그리고 네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아빠 엄마가 있다는 것 잊지 말고. 그 정도면 행복한 사람 아니니? 안그래?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하고 저녁에 보자. 아빠도 열심히 돈 벌어서 맛있는거 사줄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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