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릿 글쓰기 #01. - 선생님, 선생님, '푸른 보리' 선생님
인상적인 한 사람을 만났을 때만큼 글쓰기 좋을 때도 없다. 애매한 컬러보다 분명한 원색의 자기 컬러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신이 난다. '푸른 보리'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몇 번 뵈었던 분이지만 그의 글을 통해서 더욱 선명한 '푸른 보리'를 만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사람을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가의 여부다. 나는 이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장면으로부터 이 글을 시작했다.
평범하고 소탈한 그와의 첫 만남에 대해 썼다. 하지만 알고보니 교감 선생님이라는 사실에 놀랐다는 작은 반전을 기록했다. 첫 문장은 궁금증을 일으켜야 한다. 대단한 걸 말하기보다 그 다음 단락으로만 넘길 수 있어도 성공이다. 강연 의뢰와 학교에 대한 짧은 소개도 이런 이유로 서술한 것이다.
중학생을 상대로 한 강연이라니. 결과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 강연을 위에 언급한 선생님과 다시 연결시켰다. 이우 중학교의 교감 선생님이란 프로필로 다시 한 번 선생님을 설명한다. 여기서 강연은 조연일 뿐이다.
그런 선생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블로그 글로 썼다. 그것도 '황홀한 글감옥'에서. 이런 글을 쓸 때는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나는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가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키워낸 '화초들'. 이만큼 생생한 소재도 다시 없을 것이다. 여기서 푸른 화초는 글의 마지막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된다. 사람들이 선생님을 떠올릴 때 화초가 함께 떠오른다면 그건 성공한 글이다.
많은 글들이 그냥 '설명'하는 데서 그치고 만다. 그런 글이 안 좋다고 할 수 없지만 자신의 생각이 더해지지 않으면 그냥 매뉴얼 같은 글이 되기 쉽다. 이 글을 쓴 목적은 사실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쓰는 글은 이렇게 일관된 목적이 있다. 그것이 '남다른'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자기다움이란 키워드를 푸른 보리 선생님에게로 연결했다. 내가 세운 가설은 그가 '통역가'라는 사실이었다. 추상적인 단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번역할 수 있는 그런 의미의 번역가 말이다.
한 번 글을 썼다면 결론을 의미있게 마무리 지을 수 있어야 한다. 푸른 보리 선생님의 글이 왜 의미있는지를 결론을 썼다. 결론 역시 '나다움' 찾기다. 그리고 글의 마무리는 사진 속 화초 장면으로 마무리 했다. 나다움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 화초가 함께 떠올랐다면 성공한 글이다. 마치 수미상관처럼 글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찾았기 때문에 이 글은 쉽게 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