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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리 막국수는 어떻게 국숫집의 레전드가 되었나?

느즈막한 일요일 오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기리 막국수를 찾았다. 우리 차 앞으로 줄줄이 앞서가는 차들의 행렬에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보이는 제1, 제2, 제3 그리고 제4 주차장. 단단히 껴입은 어떤 아저씨가 '지금부터 2시간 대기'라는 푯말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 핸들을 돌렸다. 평일에 다시 오자는 마음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그럴수록 이 막국수집에 대한 기대는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래봐야 그냥 막국수 한그릇 일 뿐인데 하면서도...


궁금함이 목전에 다다랐을 때 고기리 막국수 김윤정 대표가 쓴 책을 읽었다. 다른 책과 함께 소개한 페이스북의 짧은 글에 국숫집 주인이 두 번이나 댓글을 달아 주었다. 내 책이 나왔을 때의 심정을 생각하면 그럴만도 하다 싶다가도, 각별한 댓글의 정서에 또 한 번 눈길을 주게 된다. 사실 책에는 자극적인 내용의 비법 따위는 없었다. 마치 씀씀한 평양 냉면의 그 알 수 없는 맛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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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국숫집을 향한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하루 매출 1200만 원, 주말 매출 1400만원, 햇메일이 나오는 12월 부터 석달 동안은 무려 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가게를 찾는다. 직접 다녀온 친구의 반응은 대단한 맛은 아니었다는 평이다. 어쩌면 이 소문은 그저 또 다른 소문이 만들어낸 허상은 아닐까. 지금까지의 결론은 이 국숫집의 성공이 '맛'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아본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겠다.


첫째, 고기리 막국수집은 '스토리'를 파는 곳이다.


이 집은 아이를 데려온 엄마를 위해 아기 막국수를 무료로 제공한다.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대표 자신의 경험에서 온 디테일한 배려다. 아이를 먹이려다 엄마 국수는 퉁퉁 불어 맛이 떨어진 경험을 그 자신이 해본데서 온 꼼꼼한 마음씀이었다. 햇메밀이 나와 막국수 맛이 절절에 달하는 12월 부터는 '고기리 햇메밀' 축제를 SNS로 알린다. 봄나물을 먹이며 '이건 이 때만 나오는 거야'라고 흐뭇해하는 엄마의 마음을 담은 축제다. 이러니 평범한 국수가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둘째, 정말로 막국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다.


이 가게의 두 주인은 300일 중 280일을 자신들이 만든 막국수를 먹는다. 그것도 주방이 아닌 손님들 사이에 앉아서 먹는다. 그리고 이 가게를 찾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다. 정갈하다, 예쁘다, 사리가 비녀 꽂은 머리 같다, 단아하다, 이 집의 기상이 보인다... 맛을 넘어선 가게의 특장점은 이곳에서부터 빚어진다. 사람들의 이 가게의 어떤 점에 끌리는지를 알게 된 이상 그들이 할 일은 하나다. 그 지점에 더욱 정성을 쏟으면 되는 것이다.


셋째, '눈에 보이는' 마케팅 장치들을 만든다.


도무지 막국수 집 답지 않은 고풍스럽고 현대적인 가게 풍경은 이 가게만의 '눈에 보이는' 차이다. 심플한 메뉴는 그래서 오히려 강렬하다. 클래식 음악이나 뉴에이지 장르가 국숫집에서 흘러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직원들의 복장은 주문 제작한 정갈한 옷이다. 조명이나 온도, 가게의 인테리어까지 '맛있는 집'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 국수집의 주인은 이를 '고기리의 미장센'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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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손님이 손님을 부른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에서 가게는 손님들의 반응을 앞서 나가지 않는다. 손님들을 통해 이야기가 자발적으로 퍼져 나간다. 그래서 이 집은 '태풍이 와도 가는 집'이 된다. 기다려서 뿌듯한 집이 된다. 손님들이 실시간 통신원이 된다.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서 소문은 풍문이 아닌 '스토리'로 전파된다. 별도의 마케팅이 필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입소문 만큼 강력한 브랜딩 전략이 또 어디 있을까?


다섯째, 손님들에데 '열린' 질문을 던질 줄 안다.


손님들이 식당을 나가며 '맛있다'고 이야기한다. 대개의 가게들은 '감사합니다'라고 응대한다. 하지만 이 집은 같은 질문에 다르게 답할 줄 안다. '오, 막국수 좋아하세요?'. 이런게 바로 열린 질문이다. 그러면 손님은 이야기를 이을 수 밖에 없다. '제가 춘천에 살아서 여러 막국수 집을 다 가봤는데 이 곳 면발이 너무 맛있어요'라고 답한다. 이 과정에서 손님은 다시 한 번 주인공이 된다.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드는 열린 질문의 힘이다.


맛에 실망한 친구의 반응은 무죄다. 이 집의 국수 맛을 폄훼하고자 함이 아니다. 맛만 기대하고 갔다면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것이다. 이 집의 막국수 맛은 7할이 맛이 아닌 다른데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소문이나 풍문이 아닌 정교하고 섬세한 '경험의 설계'에 있었다.


스토리를 만들 줄 알고, 막국수를 사랑할 줄 알고, 눈에 보이는 장치들을 만든다. 직접 알리지 않고 손님들이 전하게 하며, 마지막 인사 한마디까지 자신들이 아닌 고객들이 주인공일 수 있게 만든다. 문제는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비법'이라는 것이다. 하나같이 알면서도 따라하기 힘든 경험이자 노하우기 때문에. 내가 기어이 이 집의 국수맛을 보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마법 같은 브랜딩에 휘둘린 탓일지도 모른다.








* 이 컨텐츠는 '중소상공인희망재단'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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