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밤샘 걷기 도전기
한강을 밤새 걷는다는 말. 처음 들었을 땐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42킬로미터라는 숫자 앞에서 나는 조금 망설였다. 평생 그런 거리를 걸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육십, 체력에 대한 자신감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강나이트워크 42K'에 도전하기로 한 것은, 단순히 완보가 목표가 아니었다. 나이 들어가는 내가 아직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긴 여정을 걸으며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여의도한강공원에서 출발해 광나루공원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코스. 마라톤과 같은 거리지만, 오직 걷기만으로 완보하는 도전이다. 이 길 위에서 내가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설령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걷기 전날, 나는 몸을 좀 아껴두려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했고, 당일 아침엔 대전에서 열리는 독서 모임에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다. 오후 6시가 걷기 출발 시간이니 시간은 충분할 줄 알았는데, 모임을 마치고 기차 시간에 맞춰 오송역으로 가는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아이를 만나 여의도로 향했다. 간단히 요기를 한 뒤, 근처 찻집에 들러 잠시 숨을 돌렸다. 주최 측에서 나눠준 티셔츠로 갈아입고, 배낭에 번호표를 달며 준비를 마쳤다. 약간 긴장되었지만,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42킬로미터. 얼마나 먼 거리일까.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평소에 하루 2시간 정도 걷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아 대회 신청 후엔 하루 10킬로미터씩 연습하기도 했다. 그 거리도 세 시간은 걸렸다.
녹음수광장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12,000명이 참가하는 행사이고, 출발을 시간대별로 나눈다 해도 사람은 많았다. 무대 위에서는 걷기 전 준비운동 시범이 진행되고 있었고, 주변 부스에서는 기념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우리는 줄 서는 걸 피해서 그늘에 서서 출발을 기다렸다. 조금 후 아이 친구가 합류했다.
오후 6시. 여전히 해는 뜨거웠고,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흘렀다. “6시 팀, 출발선으로 이동해 주세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출발의 신호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초반은 가볍고 경쾌했다. 걷는 사람 중 젊은이들이 많았다. 친구, 연인, 가족끼리 온 듯한 그룹도 눈에 띄었다. 나처럼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은 드물었다.
서울의 밤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낯선 풍경이었다. 노을이 한강에 번지던 순간, 그 장면은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인공적인 무엇으로도 낼 수 없는 자연의 색이 경이로웠다.
반포대교를 지나던 순간, 마침 화려한 분수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장면을 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주변은 북적였고, 그 모습 자체도 하나의 근사한 풍경이 되었다.
초반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아이들보다 약간 앞서 걷기를 지속했다.
하지만 반환점인 광나루공원 CP, 21.5킬로미터 지점에 도착할 즈음부터 다리가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벤치에 잠시 앉아 물을 마시고, 나누어준 약과를 먹으며 짧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시 광진교를 건너 걷기 시작했다.
23킬로미터 지점에 이르자 아이들의 피로가 눈에 띄게 드러났다. 졸음을 참기 어려워했고, 아이 친구는 걷는 게 힘들다고 했다. 자연스레 말수도 줄어들었다. 말하는 것도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며, 때론 말을 아껴야 한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그럼에도 앞으로 계속 걸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뚝섬 CP, 13킬로미터 남은 지점을 지나자,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졸리지 않았고,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발바닥과 무릎이 점점 더 불편해졌다. 아이들은 졸음과 싸우고 있었고, 아이 친구는 걷는 것 자체가 힘겨워 보였다. 결국, 나는 “2킬로미터씩 걷고 10분 쉬자.”고 제안했다.
사실 나는 목표한 시간에 맞춰 빨리 도착점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졸려 하는 아이들이 걱정되었고, 쉬는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이제 남은 거리는 길지 않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조금만 더 힘내자.” 앞장서서 말하며 아이들을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웠다.
멀리 원효대교가 보였고, 그 너머로 여의도의 불빛이 아득하게 반짝였다. 서울타워를 마주 보고 걸을 땐 가까워지지 않아 답답했는데, 도착 지점이 가까워졌다는 게 느껴져서인지 여의도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원효대교를 건너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1.47킬로미터, 꽤 길고 지루한 다리였다. "이렇게까지 길 수 있나?" 어느새 그런 푸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새벽 5시가 가까워질 무렵, 11시간 정도 걷고 드디어 다시 녹음수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은 먼저 도착한 참가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마음이 저절로 느긋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완보 메달을 받으러 가자, 진행자가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하고 큰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힘들어 지친 모습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셋이 함께 인증사진을 찍자고 했다. 메달을 손에 들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오늘의 2025 한강나이트워크 42K를 마무리했다.
완보했다는 사실보다, 함께 걸어 냈다는 그 여정 자체가 의미 깊었다. 몸은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다리는 무거웠고, 손은 부어 주먹이 쥐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한밤의 서울을 걷는 동안 나는 새로운 서울을 보았다. 새벽 1시, 2시에도 한강 공원은 사람들이 많았다. 달리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까지. 밤이 활기찼다. 그 시간에 거리에 나와 본 적 없는 나는 그 풍경이 낯설고 신기했다. ‘정말 우리나라는 안전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새로운 경험은 계획하고 있는 ‘코리아둘레길’을 걸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한밤의 서울을 지나, 새벽의 서울에 닿은 그 길 위에서 나는 나를 조금 더 믿게 되었고, 내 안의 또 다른 가능성을 만났다.
작년에 한강나이트워크 42K를 달려 완주했던 아이는 걷는 건 지루하다며, 다시 마라톤을 신청해 달려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42K를 달릴 자신이 없어 걷기를 택했고, 아이는 걷는 게 지루하다며 달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같은 길 위에서 ‘걷기’에 대한 생각은 달랐지만, 우리는 같은 속도로 끝까지 함께 걸었다. 그 시간 덕분에 내 마음엔 아이와 함께한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하나 더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