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 맑으면서 흐림
3일 차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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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원래 일찍 일어나 움직이는 편이고, 어제 일찍 자서이기도 한지 여섯 시쯤 일어났는데, 예민한 나도 인기척에 눈이 떠져버렸다. 반쯤 잠긴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니 오래간만에 파란 하늘과 은은한 햇볕이 느껴진다. 느낌이 왔다. 바로 일기예보를 확인했는데, 움직이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페로에 오면 곧 죽어도 가야 할 몇 군데의 스팟을 정해놓았는데, 오늘 반드시 그중 하나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정해진 일정은 뒤로 미루기로 아빠랑 빠르게 합의를 보고, 내 최애 장소인 흐비타마르 트레일 헤드(Hvíthamar Trailhead)로 향했다.
밖으로 나왔는데 날씨가 정말, 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찬 바람, 강하지만 구름에 적당히 갇혀 따뜻한 햇볕이 있는 날씨다. 벌써부터 기분이 정말 좋다. 이대로라면 오늘 잠을 안 자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고, 아빠를 힐끗 보니 발걸음이 가벼운 게 아빠도 신이 난 게 분명해 보여 기뻤다.
페로는 난방을 온수 라디에이터로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빨래를 하고 나면 밖에 널기가 힘들어, 개인적으로는 라디에이터가 있는 숙소를 선호하는 편이다. 차로 가는 길에 다른 호실 창문을 힐끗 봤는데, 호텔에 묵는 사람들도 저렇게 라디에이터에 젖은 옷과 양말, 신발을 말리고 있는 모습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내비를 찍고 이동하는 길에, 저 앞에 희끄무리한 점이 보여 뭐지? 하면서 속도를 줄였는데, 대규모 오리 가족이 찻길 위에서 자고 있었다. 얼마나 도로가 한적하면 얘들이 여기서 잠을 잤을까 싶어 다시 한번 페로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양과 오리가 도로에 진을 치고 있는 것 치고는 작은 새 정도의 로드킬만 발생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주변이 탁 틔여 갑툭튀 할 일이 없고, 또 사람들이 안전하게 운전하는 습관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50분 정도 차를 달려 트레킹 코스 초입에 도착했다. 우리가 첫 번째 손님이어서 주차 자리를 편하게 잡았다. 가이드 페이지에서는 주차장이 넓어 주차가 편하다고 적혀있지만, 개인적으론 오려는 사람이 꽤 있어 협소(8대?)해 빨리 오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회색 안개가 몰려와 마음이 초조해진다. 아직 반대편을 보니 맑은 부분이 남아있지만, 페로의 날씨는 너무 변화무쌍해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운동화를 벗고 트레킹화를 신고, 물과 과자, 돗자리를 챙겨 입구로 갔다. 트레킹은 사진에 보이는 사다리를 넘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 아내가 넘었던 그 사다리를 아빠가 넘는 걸 보고 있자니 아내 생각이 많이 난다. 작년에 아내와 왔을 때는 땅이 단단하고 날씨가 맑아 걷기가 굉장히 쉬웠는데, 어제 온 비 때문에 땅이 젖어 질퍽거리고 양똥이 섞여 있어 분간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작년에 아내와는 더 좋은 걷기 조건에서도 올라가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아빠랑은 안 좋은 조건에서도 휙휙 올라가서 아내가 정말 여유를 사랑하고 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흐비타마르 트레킹 코스의 백미는 '코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트레킹의 목적 중 하나는 엔드 포인트에 도달하는 것이지만, 가는 길이 너무 이뻐 더 올라가기가 싫게 만든다. 정상에 가면 또 좋은 뷰가 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올라올 때 봤던 그 길이 너무 이뻐 빨리 내려가고 싶게 만든다. 이것이 내가 이 장소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다.
올라가는 풍광에 매료되어 가다 멈추고 둘러보고, 사진 찍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중간 지점쯤에 왔다. 사실 기분이 엄청 좋지는 않았다. 진흙 때문에 걷기가 정말 쉽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것보다는 눈앞의 이 좋은 풍경을 두고 배설물을 피하느라 바닥만 보고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페로의 유명 트레킹 코스에는 이런 지점들이 꽤 있다.). 그런데 뭐 밟고 갈 용기가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어쨌든 아빠랑 잘 걷고 있잖아?
아, 페로에 취한다 취해...
작년에 아내와 왔을 때 여기서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과자를 먹었던 게 기억이 나 중턱의 평평하고 양 똥이 없는 곳을 골라 돗자리를 폈다. 아빠는 돗자리를 펼 때까지만 해도 좀 멋쩍하더니, 막상 자리가 깔리자 세상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간만의 휴식을 즐기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엄마와 아내에게 화상통화로 현재의 상황을 공유한 뒤,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페로의 경고 표지판은 전부 이렇게 생겼다. 짧고 강하게 얘기하자면 '죽을 수도 있으니 알아서 조심하십쇼.'라는 뉘앙스다. 자연에 펜스를 치는 것보다 인명손실의 리스크를 택한(?) 페로인의 선택을 보며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인지 고민을 잠시 해봤다.
(강아지 시점 캠 아님)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심해진다.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조금 후달리는 곳이다. 지금은 이건 앞으로 걸어가니까 발목에 부담이 덜 한 편인데, 나중엔 옆으로 걸어가야 하는 곳이 있어 페로에서는 발목을 잡아주는 등산화가 꼭 필요하다.
그래, 이거지.
정상에 도착하니 기적같이 날이 갰다. 이때의 기쁨을 위해 그간의 고난이 찾아온 것인가! 간단한 인증샷을 남기고, 각자 시간을 보냈다. 아빠의 뿌듯한 모습을 보니 정상까지 가서 아빠는 굉장히 만족했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누군가의 여행에 도움이 되는 그 순간이 가장 기쁜 것 같다. 울타리를 따라 더 멀리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리 봐도 정규 루트는 아닌 것 같아 그냥 내려오기로 했다.
그런데 분명 우리가 온 지 한 시간 정도 됐을 때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아빠와 아들 한 팀이 정상까지 올라왔다. 간단한 눈인사를 하고 우리는 온 길로 내려갔는데, 막상 하산을 완료하니 우리보다 더 빨리 내려와 있었다. 뭔가 이상해서 보니 올라갈 땐 몰랐던 직진 루트가 있던 걸 발견했다. 나는 내려올 때 진흙과 양똥이 너무 심해 좀 빨리 내려오고 싶었는데, 아빠는 '경치는 우리가 더 좋았다.'면서 좀 늦게 내려와도 상관없다고 했다.
내려와 보니 이제 9시다. 차가 한두 대씩 들어오는 걸 보니, 여기서 5분 거리의 괵브/교그브(Gjógv) 마을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이동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우리는 온 김에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차피 모레 여기서 숙박할 거지만, 날씨가 이렇게 좋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온 김에 보는 게 맞지.
마을에 도착하자 자연이 생성한 항구가 우릴 반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런 작은 것엔 별 관심이 없어, 후다닥 아빠랑 사진을 찍고 근처 뷰포인트로 향했다.
페로인의 별장 같은 도시라 여행자 말고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김에, 아직 10시니까 트레킹을 한 차례 더 하기로 했다. 코스는 마을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는데, 20분 정도는 무료로 갈 수 있는 곳이고 그 위로는 유료라 이번에도 50 DKK, 만 원을 내야 한다. 그런데 트레킹 코스로 향하던 중, 한 무리의 사람이 무료 코스 초입에 멈춰있는 게 보여서 '여기 이렇게 난이도 있는 코스가 아닌데 뭐지?'하고 카메라로 확대해 봤다.
'아, 이거 딱 봐도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페로에 두 번 와봤다고, 엄청난 진흙구간임을 직감한다. '어젯밤 온 비 때문에 미끄러워 걷기가 힘든 게지. 그래도 트레킹 초입인데 저 정도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가까이 가서야 그 생각이 나의 오만임을 깨달았다.
구덩이는 깊게 파져 있는데, 잡을 곳은 없다. 옆의 울타리는 잡으라고 만들어놓은 게 아니라서, 잡고 이동하다가 뾰족한 철사 때문에 손에 상처만 입었다. 올라가는 영상을 제대로 찍고 싶었는데, 생명의 위협을 느껴 잠시 카메라를 껐다.
우여곡절 끝에 유료 트레킹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더 갈지 말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인데, 날씨가 좋으니 유료 트레일 위로 올라가 보기로 한다. 여기서부터는 나도 처음이라, 위에 뭐가 있을지 모르고 일단 가보기로 한다.
올라가기 전에 마을 뷰 한 컷. 나는 조금씩 숨이 차오르는데, 아빠는 벌써 저 멀리 올라가 있다. 언젠가 등산 갈 때 '제일 쌩쌩한 게 은퇴하고 새 삶을 살아보려는 5060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농담은 아닌 것 같다. 근데, 내가 히말라야 갔을 때는 체감상 7080이 정말 많았다. 그럼 한국인은 언제 평온해지는 거지...?
중간에 올라가다 또 한 컷. 페로 제도,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같은 여행지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목적지보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더 시선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말이 정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뷰 뒤에는 내 신발의 크나큰 희생이 있었다. 잊지 않을게, 고어텍스!
올라와보니 드넓은 평지와 양, 배설물이 보인다. 처음 올라와봤는데, 그래도 올라올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으면 여기서 퍼핀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8월에 갔기 때문에 애초에 퍼핀 자체를 보기 어려운 계절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한 가족을 만났는데, 들판을 여유롭게 같이 걷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이뻤고, 부러웠다. 가족이라는 가치가 점점 희미해지는 시기에, 마음속 작은 평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어쩌면 '함께 걷기'와 같이 별 거 아니어 보이는 이런 행동과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마지막으로 내려가기 전에 한 컷.
내려와서 덴마크 콜라인 'Jolly' 콜라를 마셨다. 나는 그냥 졸리 콜라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빠는 그새 호기심이 동했는지 이게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다가 번역기를 켰다. 그러더니, '덴마크어로 졸리는 Enjoy라는 뜻 이래~' 하면서 나에게 말해준다. 구글 렌즈를 알려 드린 게 뿌듯한 순간이었다. 게다가, 반대편에 보이는 섬 위에는 구름이 일자로 껴있어 이런 장관이 또 없다. 아빠와 콜라, 좋은 풍경과 바람이 있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로 기억됐다.
마을에서 나와 토르스하운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마을 초입은 이렇게 편도 1차선으로 되어있는데, 중간중간 비켜줄 수 있는 구간이 있어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비켜줘야 한다. 사람이 없어 편할 것 같은 페로의 운전은 의외로 이렇게 인내와 양보를 요구한다.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뭘 먹을까 하다가, 내가 토르스하운 최고의 맛집 중 하나로 생각하는 햅스 버거(Haps burger)로 갔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약간 이상한 행색의 차림의 사람이 쳐다보길래, 느낌이 이상해 뒷좌석에 있던 귀중품 가방을 트렁크로 옮겼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인데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빠는 더블패티 버거를 시켰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다고 감자튀김은 다 남겼다. 아빠는 밥을 먹으며 내게 아빠가 영업 사원일 때 일화를 얘기해 줬다. 미국에 출장을 갔는데 직원이 키를 놓고 내려 문이 잠기고(옛날 자동차는 그랬나 보다), 근처 술집인지 클럽인지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했더니 철사 하나면 되는데 엄청 큰 공구를 가져와서 200불을 받아간 나이트직원 얘기. 아빠는 그게 일종의 쇼맨쉽이었을 것 같다고 했다. 차를 갖고 어딘가에 방문했다가 기름이 다 떨어져 지나가는 차에 사례하고 기름을 받은 이야기 등 아빠가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아왔는지를 얘기해 줬다. 들으며 존경심도 들었지만 역시 어느 만화에서 본 대사가 생각난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이다." 아, 음식 값은 492 DKK, 10만 원 조금 안 나왔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콜라가 한 컵에 만 원, 케첩이 1,600 원이었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나서는 소른펠리(Sornfelli)로 향했다. 해발 약 725m 높이로, 1961년 덴마크의 레이더 기지가 들어섰으나 2007년에 폐쇄됐다고 한다. 소른펠리로 올라가는 길 역시 편도 1차선인데, 운전 초보가 가면 좀 무서울 수 있는 길이다. 이런 곳에 가드레일도 별로 없고, 무엇보다 이런 도로를 편도 1차선으로 만들어? 솔직히, 여기는 눈이 오거나 안개가 짙게 끼면 올라가지 않을 것 같다. 가다가 큰 캠핑카 한 대를 만났는데, 장판파에서 장비를 본 조조군의 심정이 저랬을까?
페로에서 가장 중요한 자동차 옵션은 분명 후방 카메라일 거야.
소른펠리는 작년에 묵었던 에어비앤비의 호스트 John이 알려준 곳인데, 본인이 페로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했다. 원래 몰랐던 곳이지만 현지인이 추천해 준 곳이라 한번 가본 건데, 그때는 안개가 가득 끼어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오늘은 반쯤 맑은 날씨여서 페로의 수많은 섬들이 보였다. 그래, 이게 내가 원하던 페로지.
한참을 페로의 풍광에 넋을 놓고 있다가 슬슬 안개가 몰려오고 날이 추워져 숙소로 복귀하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티그야라 폭포(Tyggjara falls)를 봤지만, 아이슬란드의 폭포로 단련된 내게 페로의 폭포는 큰 감흥을 주진 못했다. 저녁으로는 SMS에서 초밥을 테이크아웃해서 먹었는데, 흑인 셰프가 작은 롤 몇 개를 서비스로 줬다. 가격은 대략 연어 니기리 10pc에 3만 5천 원이니까 받을만했지(주룩). 예전에 남아공에서 초밥집을 갔을 때 흑인 주방장이 초밥을 만드는 모습을 느낌이 되게 묘했는데, 오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저녁을 먹고, 아빠가 잠든 틈을 타 혼자 호텔 프로야르 근처로 가서 차를 세우고 멍하니 토르스하운을 바라봤다. 아빠와 같이 안 오고 싶다기 보다는, 일단 한시간 이상 찬 바람을 맞으며 서있을 수 없을 것 같고, 2016년에 혼자 왔을 때 기억을 되살리며 추억에 잠겨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도 그만두고 마음 상태도 편하지 않다 보니 마음만 더 복잡해지고 내가 왜 여행을 왔는지만 다시 되묻는 시간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지도 못하는 오후 9시의 토르스하운은 여전히 고요하고, 이쁘기만 하다.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다 안개가 섬에서 생겨나 신기해서 타임랩스를 찍으며 안개와 구름은 무슨 차인지, 왜 땅에서 구름이 생기는지에 대해 찾아봤다. 그렇게 30분 동안 멍하니 저 장소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달도 지고, 안개도 많이 생기는 걸 보다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져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페로에서의 세 번째 밤이 진다.
페로 제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