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0대 아빠, 30대 아들의 페로제도 여행 21밤 2

8/9 흐림, 안개, 옅은 비

by 페로 제도 연구소

이번 글부터는 GIF 파일을 삽입했습니다. 파일이 많아 로딩에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조금만 천천히 보시다 보면 더 몰입하고 생생하게 보실 수 있으니 천천히 스크롤 내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8/9 2일 차 동선
Rentyourcar.fo 사무실 > [유적] Kirkjubøur > [점심] eta 피자 > [카페] Brell cafe > [쇼핑몰] SMS > [전자제품 판매점] Elding > [휴식] 호텔 > [저녁] Thai Style Takeaway




여행을 할 때, 시간 단위로 방문할 장소를 정해두는 편이다. 그런데 페로에서의 활동은 대부분 야외에서 이루어져 날씨의 영향을 너무 크게 받아, 이번에는 장소만 물색해 두고 현지에서 상황을 보며 움직이기로 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번 여행은 상당히 비효율적, 비합리적인 동선이 나왔다.


98A4583A-F963-4FEC-A0A3-35B6B56E2D26_1_102_a.jpeg

아침에 일어나서 날씨를 확인하는데 여전히 짙은 안개와 비 예보가 있어 한숨만 나왔다. 아빠는 일어나더니 체력을 단련한다고 푸시업을 했다. 그 모습을 침대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체력도 체력이지만,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일할 체력을 키우진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면서 아련해진다.


시퀀스 02.gif

여전히 트레킹은 어려운 날씨라, 일단 토르스하운 근교의 마을인 '키르큐보우어(Kirkjubøur)'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잘 되던 애플 카플레이가 갑자기 켜지질 않았다. 카플레이뿐 아니라, 내비게이션이 지도 화면만 보이더니 축소/확대만 되고 어떤 버튼도 먹질 않았다. 예전 아이슬란드에서도 빌린 레니게이드의 전조등이 나가 정비소를 찾아 헤매었던 기억이 오버랩되며 걱정이 슬슬 몰려온다.


렌터카 업체에 전화를 해 "차에 내비게이션이 작동을 안 한다."라고 말했더니, "너 내비게이션 구매 안 했는데?"라고 한다. 아마 차량을 빌릴 때 별도의 내비를 빌리는 옵션이 있는데, 그걸 생각한 것 같다. "아니, 차에 기본적으로로 장착된 내비 있잖아."라고 응답했다. 잠시의 침묵 후, "공항이나 토르스하운 근처에 있어?"라고 물어본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시간을 지체할 일이 생기겠구나'라는 걱정이 절반, '여행기 쓸 소재 생겼다'라는 기쁨이 절반이었다. 구글 맵을 켜 렌터카 사무실을 검색했더니 다행히도 10분 거리에 있어 빠르게 이동했다.

시퀀스 08_1.gif
029AA584-1A1D-49DB-841A-37E81490548E_1_105_c.jpeg

지도에 표시된 장소로 가 보니 2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게 맞는지 반신반의하며 일단 계단을 중간쯤 올라가니, 때마침 덩치 크고 인물 좋은 남자가 성큼성큼 내려오며 인사를 건넨다. 뭔지 모를 듬직함에 '이 남자라면 내 차를 믿고 맡겨도 되겠어.'라는 생각이 든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본인이 차를 보겠다며 센터패시아를 이곳저곳 건드려보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2층으로 올라갔다. 내 마음이라도 아는 건지, '오늘 날씨가 안 좋지?'라고 내게 물어본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인사는 귓등으로도 안 들렸고, 마음속으로는 제발 큰일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고만 있었다.

시퀀스 07_1.gif

오피스에서 공구를 갖고 내려오더니, 가끔 선 접지가 문제가 생겨 잠시 뺐다가 끼면 될 거라고 말하며 접지 플러그를 떼었다가 다시 낀다. 2~3분을 기다리니 진짜로 차가 다시 작동해서, 혹시 내가 잘못해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물어봤는데 그건 아니라고 해 마음이 놓였다. (근데 가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여하튼, 이제 다시 기분 좋게 출발해 보자!


IMG_5695.gif

페로답게 짙은 안개가 끼어있다.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게 되는 도로, 날씨 컨디션이다. 그래도 이런 날씨에 운전을 하다 보면, 은근히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 같아 묘하면서도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물론 아주 잠깐만 즐기는 게 좋지.


시퀀스 01.gif

정비를 마치고 무거운 안개가 내린 길을 따라 교회로 가는 길에 차도를 길을 걷는 오리 커플을 만났다. 그래, 이게 페로지. 사실 이 정도는 양반이다.


DSC00234.JPG
DSC01274.JPG
DSC01279.JPG 2016년의 페로 모습

예전에는 어지간한 도시 한복판이나 숙소 근처에 양이 다녔는데, 그래도 요즘은 많이 현대화(?)가 된 건지, 중심부에 대놓고 양이 있진 않았다.


스크린샷 2024-09-30 오후 1.53.50.png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때쯤, 구글맵이 위 사진의 오른쪽에 있는 길로 나를 안내해 다시 후진을 해서 차를 뺐다. 내가 봤을 땐 도저히 가기 어려운 너비였는데, 다른 차는 잘 가는 걸 보니 아직 운전은 멀었구나.


8.gif
46A38824-9EB5-4A7E-95E7-F433F65E7697_1_102_a.jpeg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빠는 여기 있는 교회가 뭔지 궁금했는지 이것저것 나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나는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없었다. 애초에 유적지나 역사, 건축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공부도 안 하고 그냥 뭐가 있는지만 파악하고 간 거니까. '공부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9.gif
626E048D-2DA1-4A78-8619-5C7B91A9F325_1_105_c.jpeg

입장료를 만 원(50 DKK) 받고 있길래 차에 가서 현금을 가져왔다. 내부는 그냥 오래된 교회 내부,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11.gif
63905B86-2E9E-4978-8DCE-B62553929ACE_1_201_a.heic
B54B1B9C-C522-4833-88AB-632F1B65AC2C_1_105_c.jpeg

성벽 같은 곳까지 대충 한 바퀴 둘러보다가 뒤편에 몰랐던 트레킹 코스가 있어서 조금 걸어보기로 한다. 아빠가 신이 많이 나보여서, 같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아빠랑 사진을 둘이서만 같이 찍은 게 언젠지 기억도 잘 안 나는데, 적어도 앞으로는 '2024년'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43165AF8-E788-4F92-A99D-1A69C19CC299_1_102_a.jpeg
255C6D4C-B882-4457-99F1-14DF36D7FCE0_1_102_a.jpeg
E8E2974E-68FB-4632-B002-5BEDEFF5AA50_1_201_a.heic
IMG_5739.gif

양 5마리가 길 가운데 앉아있었는데 그때부터 배설물 레이더 발동이 시작됐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페로에서 가장 경계하는 첫 번째가 날씨요, 두 번째는 동물의 배설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로에서는 트레킹 할 때 주변보다 바닥을 보고 걸은 기억이 훨씬 많다. 아빠한테 몇 번이나 양 똥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빠가 페로의 트레킹 코스 같은 길을 처음 걸어본 순간이다. 한국에서 내가 고어텍스로 된 신발을 사야 한다고 했을 때, 아빠가 운동화로도 괜찮지 않겠냐는 말을 했었는데 첫 발자국을 내딛자마자 진흙탕과 배설물 범벅이 된 땅, 젖은 잔디 때문에 고어텍스 신발이 필요한 이유를 바로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오늘 제대로 된 트레킹도 없어서 일정이 좀 심심할까 봐 걱정이 앞섰는데, 아빠는 유적지를 좋아해서 하루에 한 곳만이라도 이렇게 보는 게 좋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빠는 페로의 GPD, 주 산업, 인구수 이런 것들을 공부하고 왔다고 했다. 엄마는 여기 왔으면 너무 춥고, 바람이 강해서 엄청 고생했을 거란 얘기도 했다. 여하튼, 200m 정도 걸었을까? 안개가 너무 심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다시 되돌아왔다.


시퀀스 01_2.gif

돌아오는 길에 물이 흐르는 작은 웅덩이가 있어 신발을 씻었다. 페로에서 트레킹 할 때 가장 반가운 게 하나 있다면, 바로 물이 흐르거나 고인 어딘가다. 진흙과 배설물에 절여진 신발을 보고 있자면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데, 맑은 물에 신발을 씻으면 씻겨나가는 그 개운함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물론 몇 초 못 가긴 한다. 여하튼, 이걸 하기 위해서라도 고어텍스 신발은 필수인 게지.


15.gif

주변 구경이 끝나고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들어가니 스팟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적혀있어 힐끔 봤다. 내부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벤치도 마련되어 있다. 페로의 장점 중 하나는 거점마다 잘 관리된 공중 화장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무료라는 거다. 유료 화장실을 써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바로 이해가 되겠지.


16.gif

오늘의 점심으로는 토르스하운 시내에 위치한 'No. 1 pizza'를 먹으려고 했는데 가까이 갈수록 분위기가 싸하다. 앞에 가보니 깨진 유리창과 낙서가 보이는 걸로 보아 폐업을 했다. 토르스하운의 수많은 피자집 중 내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곳인데... 그래서 차선책으로 케밥을 먹으려 했는데, 아빠는 피자가 더 좋대서 근처 보이는 피자가게에 들어갔다.


17.gif

테이블은 2개였지만, 나름 먹을 공간은 있어 자리를 잡고 치즈를 추가한 페퍼로니 피자와 제로 콜라를 시켰다. 근데 문제는 페퍼로니가 소금귀신과 함께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건지 무지막지하게 짜서 아빠는 두 조각밖에 먹지 못했다. 가격은 총 175 DKK로, 3만 5천 원쯤 되겠다. 그래도 이 정도면 페로에서 되게 싸게 먹힌 거다.


밥을 먹고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페로에 오기 전, 아빠한테 보여주고 싶은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Paname Cafe'의 분위기와 바나나 케이크였다. 나무풍의 인테리어와 무규칙 하게 배치된 커피잔, 어둡지만 아늑한 조명 아래 먹는 바나나 케이크가 분위기와 잘 어울리고, 정말 맛있기 때문이다.


C9208870-9C94-46B2-8FA3-02B61A51E681_1_105_c.jpeg
04BF5621-5DE3-4D56-ACE1-ACE44AD58FD5_1_105_c.jpeg
BE204B74-6D81-4B9A-BFF2-F8563CF281B9_1_105_c.jpeg
23년에 아내와 함께 와서 먹은 바나나 케이크

평소에도 자리를 잡기 힘든 곳인데, 운이 좋게 자리를 구했다. 기쁜 마음으로 계산대에 갔는데, 이게 웬 일? 바나나 케이크 진열장이 비어있었다. 아, 진짜 이건 아니죠... 아직 오후 두 시잖아요. 직원에게 바나나 케이크가 언제 다시 구워지냐고 물어보니 1시간 뒤라고 한다. 어쩐지 운이 좋더라. 아빠는 음식점에 줄 서서 기다리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다른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긴다. 여기서 바나나 케이크가 없이 앉아있을 바엔, 차라리 먹지 않겠어.


시퀀스 01_1.gif
20.gif

그리고 아내와의 추억이 가득한 카페 'Brell cafe'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도 자리가 많은 카페는 아닌데, 운이 좋게 우리가 들어갈 때 누군가 나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아내는 여기가 여행의 베이스캠프 같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갔을 때는 온갖 아웃도어를 입은 관광객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위기도 코르크 재질(?)을 곳곳에 사용하다 보니, 약간 히말라야의 롯지 느낌도 나고.


아빠는 드립커피, 나는 프렌치 프레스와 레몬타르트를 시켰다. 일단,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좋아하는 내가 '프렌치 프레스'를 알게 되고, 시키게 된 데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작년의 이야기다. 아내와 왔을 때 점심을 먹을 식당을 찾아 해멜 때, 페로의 카페는 보통 간단한 식당도 겸하니까 여기 들어왔는데 멀리 메뉴판에 'French fries'가 보였다. 페로에서 감자튀김은 굉장히 흔한 음식이니까 옳다구나 하고 자리를 잡은 뒤 주문을 하러 갔다. 그런데...

10B49151-6791-492D-B1FF-29D4FA5FAEDA_1_105_c.jpeg

내가 기대했던 'French fries'가 아니고, 'French press'였다. 하... 이게 뭔지도 모르지만 일단 감자튀김이 아닌 건 확실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새로운 시도 한번 해보자 하며 시킨 게 나와 프렌치 프레스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이때 요깃거리가 필요해 레몬 타르트를 시켜봤는데, 결론적으로 이때의 사건이 이곳의 레몬 타르트를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1F0BA316-4315-4E65-8660-A51288366DA5_1_201_a.heic

그래서, 이번에도 똑같이 시켰다. 아빠한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드리고 싶어 내 커피도 맛을 보여드렸는데, 드립커피보다 내 것이 더 연해서 낫다고 했다. 아빠는 진한 커피를 안 좋아하나 보다. 아빠한테 더 좋은 기억을 남겨드리고 싶어 내 커피를 드렸다. 레몬 타르트는 정말 부드러우면서도 새콤 달달하고, 위에 올린 살짝 구워진 크림?같은 거에서 감칠맛이 더해져 정말 환상적인 맛이 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프렌치 프레스를 두 잔 정도 먹고 나니 30분 정도가 흘러 테이크 아웃을 해서 나왔다. 여러분, 페로 가시면 이거 꼭 드세요. 두 번 드세요.


시퀀스 01.gif

그다음 우리는 페로의 가장 큰 쇼핑몰 'SMS'로 가 'Elding'이라는 전자제품 매장에 갔다. 페로에서 가장 큰 매장이니 고프로 케이스정도는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있는 거라곤 삼각대, 배터리, 손목 스트랩 정도밖에 없었다.


쇼핑몰을 잠시 둘러본 뒤, 숙소 근처의 나머지 한 개 매장에 갔는데, 포장지에 케이스가 그려져 있어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케이스가 맞다.'라고 한다. 심지어 내 고프로는 7 블랙 모델인데, 케이스에 떡하니 'Hero 7 black'이라고 쓰여있는 게 아닌가! 냉큼 집어 기쁘게 구매해 밖으로 나오며 물품을 확인했는데...


FF93FD28-B996-4FD8-8A4D-F803A03F1C03_1_105_c.jpeg

알고 보니 저 하얗게 그려진 게 상품이 아니고, 주황색만 있는 거였다. 알고 보니 고프로를 물에 빠뜨렸을 때 가라앉지 않게 튜브 역할을 해주는 액세서리다. 직원은 모르는데 왜 맞다고 한겨... 여하튼 바로 환불했는데 오히려 마음은 가벼워졌다. 이번에 챙겨 온 기기가 핸드폰 짐벌, 인스타 360, 고프로까지 총 3개인데, 고프로를 자동차 밖에 부착해서 쓰려면 항상 해야 하는 몇 가지가 있다. 운전 중 배터리 상태를 확인해야 하고, 배터리가 40분 녹화되면 꺼지고, 그때마다 차를 멈출 곳을 찾고, 차에서 내려 케이스를 빼고 배터리를 교체한 뒤 다시 운전해야 한다. 고프로 쓸 때마다 이게 너무 버거웠다고 느꼈는데 이번에는 그걸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5604A1B2-FD87-469F-9097-95DEA0CB5F9E_1_102_a.jpeg

당분간 고프로는 기억에서 잊기로 했다. 그렇게 내 부품 구매 작전은 실패했고, 액세서리는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나와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오후 5시쯤 숙소 앞에 도착한 뒤, 차에서 잠깐 일 보고 들어가려고 아빠를 입구에 먼저 내려드렸는데 로비에서 10분 넘게 기다렸다. 왜 안 들어갔냐고 물어보니까, 나랑 같이 들어가고 싶었다고 한다. 아까 두 번째 Elding 매장에 갈 때, 아빠 먼저 숙소에 들어가 계시라고 했는데 아빠가 싫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기분이 좋기도 했는데, 혼자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이틀차에 벌써 느껴버리다니. 숙소에 들어와 아빠는 잠을 잤고, 나는 고프로에 다시 미련이 생겨 이걸 쓸 방법이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시퀀스 01.gif

고프로를 밖에 다는 것은 포기하고, 궁여지책 끝에 차 내부에 흡착컵을 달아 테이프로 칭칭 감아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고프로를 밖에 달기를 고집한 이유는 앞유리가 있어 화질이 나빠질까 봐였다. 거기다 뭔가 반사가 되고 단단하게 고정이 안 돼서 흔들림은 있겠지만, 손떨림 방지 기능을 믿어봐야지 뭐. 게다가 아예 못 쓰는 것보단 낫잖아? 차로 돌아가 시험해 봤는데 대충 모양이 나온다. 이렇게 해서 뭐라도 찍어가면 좋은 거지.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결과가 썩 나쁘지 않다.


침대에 누워 생각해 보니 한 가지 고민이 떠오른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은데, '여행을 어떻게 바로 기록할 수 있지?'라는 고민이다. 음식의 맛, 장소의 기온과 냄새, 특정 생각 같은 것은 바로 기록해야 정확하게 기억이 나는데, 바로 기록하자니 아빠를 앞에 두고 핸드폰 하기도 좀 그렇고, 녹음을 하자니 나만 알고 싶은 날것의 생각을 아빠와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고민에 대한 답은 여행기를 쓰는 지금도 찾지 못했다.


또, 아빠랑 와서 좋기도 하지만 아내랑 왔을 때가 더 기억나고, 그때 못 가본 곳들이 생각나 '지금 같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혼자 있고 싶어 하는 티를 냈는데, 그것도 미안했고 한국에 가면 같이 꼭 놀이동산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시 눈을 붙였다.


6A413C69-79EF-4264-8A62-B80BDA368218_1_105_c.jpeg

저녁은 태국 음식을 먹기로 했다. 토르스하운에 위치한 유명 테이크아웃 전용 식당인데, 작년에 아내와 함께 오렌지 치킨을 시켰을 때 그 안에 따뜻한 밥이 가득 담겨 있어 두 눈 뒤집혀가며 먹었던 생각에 벌써부터 싱글벙글하다. 그런데 웹사이트가 새로 생겼는지, 웹에서 주문이 가능해 번역기를 돌려가며 주문을 했다. 픽업을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안을 둘러봤는데, 불닭볶음면을 필두로 한국 라면 수출이 늘었다고 하더니 신라면이 보인다. 저걸로는 무슨 메뉴를 만드는지 궁금한데, 테이크 아웃 식당 특성상 라면을 끓여주기는 어려울 거고 볶음면처럼 쓰는 게 아닐까 추측해 봤다.


7B21FA5E-10A4-4B7E-93D4-D9A7D24F9019_1_105_c.jpeg
55E4CDEC-4FC7-497B-8A69-90CB5D780279_1_105_c.jpeg
3525E728-20CB-4E09-908E-36B3AB665674_1_105_c.jpeg

주문한 메뉴는 오렌지 치킨과 팟타이에 새우 추가였다. 숙소로 돌아와 포장을 풀었는데, 나는 식감이 탱탱한 새우를 기대했는데 찐 새우 같아 좀 당황했고, 팟타이 면이 다 떡이 되어버려서 좀 더 실망했다. 아빠는 둘 다 먹어보더니 팟타이가 더 맛있다고 한다. 원래 쌀밥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국수를 선택하다니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페로에서의 두 번째 밤이 진다.




페로 제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airspace2010/14


아이슬란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airspace2010/1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