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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아빠, 30대 아들의 페로제도 여행 21밤 5

8/12 흐리고 비

by 페로 제도 연구소

이번 글은 실수로 5일차가 먼저 업로드되었습니다. 일 단위의 기록이라 이 글 먼저 읽으셔도 뒤의 글을 읽으시는데 지장은 없지만, 순서대로 보시고 싶다면 3일차(https://brunch.co.kr/@airspace2010/36)로 이동하시면 시간 순서대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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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반, 잠시 눈을 떴는데 밖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문의 상태로 보아하니 오늘도 공쳤다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해도 이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2주 중, 10일 정도는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보며 잠에서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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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 원래 날씨는 왼쪽 사진과 같았다. 8일에 도착해 28일에 떠나는 여정이었으니, 이 정도면 페로 치고는 상당히 선방한 것이다. 특히 둘째 주를 가장 기대하며 교그브와 주요 스팟을 넣어두었는데, 지금 날씨는 오른쪽과 같다. 심지어 오른쪽 사진은 저게 좋아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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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숙박비에 조식이 포함돼 있고, 그 퀄리티가 상당히 훌륭하다는 것이다. 페로에서의 한 끼 식사가 최소 3만 원부터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조식 가격이 얼마일진 모르겠으나 숙박비가 그렇게 아깝진 않다. 창가자리는 이미 일찍 나온 사람들이 자리해 우리는 중간에 자리 잡았다. 인테리어 좋고, 분위기 좋고, 음식 맛있고. 식사를 하다가 문득 옆을 봤는데 녹슨 쇠를 인테리어 조형물로 활용한 것 같았다. 지저분해 보이진 않았는데, 밥 먹는 자리 옆에 녹슨 쇠라니 그걸 알고 나서부터는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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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와보니 날씨가 한결 좋아졌다. 그래서 한 컷. 이걸 좋아졌다고 말하는 게 웃기긴 한데, 진짜로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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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 한숨 더 자기로 했다. 자기 전, 아내가 알려준 발가락 운동을 잠시 해봤다.ㅋ 그런데 갑자기 잘 나오던 넷플릭스가 안 나와 체크인 데스크에 가서 이유를 물어봤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 숙소에서 넷플릭스 계정은 제공 안 하는데?'였다. 아마 누군가 여기서 넷플릭스를 보고, 로그아웃을 안 하고 간 모양이다. 그래서 돌아와 내 넷플릭스 계정으로 로그인을 해드렸다. 아빠는 하루종일 넷플릭스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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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빗발이 줄어들 생각을 안 한다. 뭘 하기 힘든 날씨이기도 하고 근처에 있는 곳도 한 곳 빼곤 다 가봤으니 숙소에 머물기로 했다. 할 게 있는 마을도 아니라서 타임랩스나 찍기로 했다. 그런데 결국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삼각대와 고프로가 전부 쓰러져 원하는 타임랩스 길이를 얻진 못했다. 넘어져서 부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욕심을 버리고 장비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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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나는 항구 쪽 뷰포인트로 나가 또 바람맞기 놀이를 했다. (움짤 배속 아님) 나는 강한 바람이 정말 좋다. 한국이었으면 간판이라도 날아왔을까 봐 좀 무서웠을 텐데, 여기는 평지고 날아올 건 새똥밖에 없으니 그저 안심하고 바람을 맞으면 되는 거지. 물론 평지니까 가능한 얘기지, 트레킹 코스였으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정도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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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는 한국에서 가져온 볶음김치 통조림을 까 육개장과 끓여 먹었다. 아빠는 유튜브를 안 보는데, 간단히 볼 수 있는 슈카월드를 틀어드렸지만 아빠는 육개장을 5분 컷 하고서는 자리를 일어나셨다. 아무래도 슈카월드엔 별 흥미가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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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돌아다닌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아빠는 다시 낮잠을 좀 자겠다고 한다. 아빠는 밖을 보다가 잠들겠다고 머리를 발 쪽으로 향하고 거꾸로 잠. 하얗게 센 머리와 팔짱 낀 뒷모습에서 여행뿐 아니라 그동안 삶의 노곤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살짝 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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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자고 일어나니 날이 조금 갰다. 내일은 희망적이려나!? 페로에선 먹구름 사이로 조금 보이는 저 적은 면적의 파란 하늘이 정말 사람의 애간장을 태운다. '날씨가 혹시 맑아지려나?' 하는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유일한 식당은 우리가 묵는 게스트하우스에 있다. 미리 예약을 해야만 입장이 가능한데, 작년에는 안 했다가 입장을 못해 올해는 예약을 했다. 무슨 메뉴가 있는지 모르고 들어갔는데 뷔페식으로 소고기, 양고기, 감자, 대구 요리가 메인이었다. 그 외에는 조식에도 나오는 토마토, 연어 등이 있었고, 페로에서 소고기를 보통 식당에서 보기가 힘들어 배부르게 저녁을 해결했다. 계산은 체크아웃할 때 지불하는 방식인데, 그래도 얼마에 먹었는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물어보니 7만 원이란다. 알았으면... 먹었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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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당히 강력한 바람이 불었는데, 나와보니 밥을 먹기 전엔 분명 서있었던 국기 게양대가 땅에 누워있었다. 근데 그 와중에 아빠는 또 바람이 쌔서 신났는지, 셀프로 동영상을 찍으며 신나 했다. 아빠가 이렇게 신나 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또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으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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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그쳤고, 소화도 할 겸 어제의 뷰포인트로까지 한 바퀴를 걸었다. 내일은 비 예보가 있지만, 오후부터는 서서히 맑아졌다가 다시 구름이 낄 거라고 해서 한껏 기대를 품고 밀린 일기를 쓰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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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페로에서의 다섯 번째 밤이 진다.




페로 제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airspace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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