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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아빠, 30대 아들의 페로제도 여행 21밤 10

8/17 흐리고 비

by 페로 제도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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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비다~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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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숙소 최대의 장점은 마트, 관광지, 터미널이 전부 근처에 있다는 점인데, 이 장점을 십분 활용해 오늘은 축제, 교회, 마트 등 한 큐에 일을 처리하러 집을 나선다. 먼저 집 근처에 있는 클락스비크 교회 내부를 구경하러 갔다. 교회 지붕에는 배 모형의 특이한 조형물이 있다. 저 조형물은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북섬에서 실종된 세 척의 배 중 해안에 떠내려온 배를 활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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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 '유전'에 나올 것 같은 이 삼각형 구조는 종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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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까지는 멀지 않아 슬슬 걸어갔는데 가는 길에 술집을 발견했다. 아침이라 열진 않았지만, 문 앞의 담배꽁초를 보고 '페로도 꽁초를 바닥에 버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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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까지 가는 길에 계속 차들이 줄지어 들어가는 것을 보니 꽤 큰 규모의 축제인가 보다. 가까워질수록 차가 많아졌는데, 페로에서 이 정도 규모의 차를 본 건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축제의 이름은 'Fisherman's day(Foroya Sjomannadagur)'다. 축제의 특징으로는

-빵, 도넛, 커피, 음료(콜라, 물, 초코우유) 무한 공짜

-군함, 어선 오픈 및 탑승 기회 제공

-올해의 어린이상(추측) 시상식

-수색용 헬기(추측) 시승식

-클락스비크배 퀴즈왕 뽑기

-팔씨름대회, 줄다리기 등 힘자랑

-현장에서 손질하고 튀긴 연어 피시앤칩스 무료 배분

-동네 사람들과의 만담

-어린이 대상 보트 운영

-헬기 시승(추정)

정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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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진 않았다. 먼저 첫 번째 보이는 천막 같은 데 들어갔는데, 안에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며 과자, 음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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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있고 사회자로 이는 사람이 마이크로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올해의 클락스비크 어린이 상'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봉지를 한가득 들고 있었는데, 아마 경품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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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천막에 들어가 물을 하나 챙기러 갔는데 한편에 디저트류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렇게 부스나 천막에서 음료수를 나누거나 안에 쌓아두고 자율적으로 가져가도록 했는데, 나도 이런 행사를 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봤는데 소문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 음료를 박스째로 갖고 갈 것 같아 금방 꿈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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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가 오는 와중에도 우산 하나 쓴 사람 없이 이런 행사를 하는 걸 보니 페로답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전광판을 보니 무슨 게임 대회를 하는 것 같은데, 주변엔 성인들 뿐이라 약간 플래시 느낌 나는 게임으로 지역 축제를 하는 게 흥미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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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군함을 타고 싶어 했는데 14시 이후에 연다고 해서 점심을 먹고 다시 나오기로 했다. 페퍼론치노와 다진 마늘을 올리브 오일에 졸인 파스타를 해 먹으려고 페퍼론치로를 찾으러 마트에 갔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알바한테 물어봤는데 그런 건 없다고 해서 이 대신 잇몸으로 칠리를 집었다. 페로 마트에서는 뒤에 사람이 있으면 앞사람이 이 막대를 놔주는 문화? 매너? 가 있는 것 같아서, 내 뒤에 사람이 있길래 칠리 병 하나지만 상품분리바를 벨트 위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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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파스타를 만들었는데 진짜 맛이 없는 파스타가 탄생했다. 게다가 내가 치킨스톡인 줄 알고 넣었던 건 치킨스톡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뭔진 모르겠는데, 일단 짠맛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텁텁한 밀가루맛 같은 게 났다. 내가 요리를 잘못한 걸진 몰라도 칠리는 페퍼론치노처럼 매콤한 맛이 안 났다. 그리고 면의 유통기한이 1년 정도 지났기도 했고. 그래도 아빠는 이게 맛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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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쉬다가 며칠 전 갔던 클라쿠르(Klakkur) 트레킹 코스에 다시 가고 싶어 아빠에게 같이 갈 건지 물어봤다. 지금은 혼자 가고 싶었지만 아빠가 서운해할까 봐 같이 갈 거냐고 물어봤는데, 슬쩍 밖을 보더니 날씨도 안 좋고 한 번 다녀온 곳이니까 굳이 안 가겠다고 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아마 아빠는 군함을 타보고 싶은 것 같다. 나는 차를 몰고 트레킹 코스로, 아빠는 축제 장소로 다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역시 날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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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비가 온 터라 정상까지 가는 길 상태가 나빠 진흙에 발을 잘못 디뎌 신발이 엉망이 되었고 바지도 흙이 엄청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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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스비크 시내에서 이곳 정상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쉽게 식별이 되는데, 정상까지 올라가 아빠한테 전화하니 아빠는 내가 보인다고 했다. 정상에 도착해 사방을 둘러보니 하늘에 파란 하늘 구멍이 조금 보이길래 왠지 무지개가 뜰 것 같아 한참을 서성였다. 하지만 멀리서 몰려오는 먹구름과 굵어지는 빗발을 보고 체념하기로 했다. 페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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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차로 내려가는 건 언제나 짜릿하다. 올라갈 때가 좀 더 짜릿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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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장소로 돌아가 보니 사람이 아까보다 훨씬 많다. 천막에 들어가니 갖가지 디저트와 음식을 나눠주고 있어 먹어보았다. 나는 이런 디저트류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생크림과 커스터드 같은 것이 부드럽게 섞여있어 꽤 맛있게 먹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연어, 연어알, 그리고 매시드 포테이토를 주길래 그것도 한 접시 집어왔는데 생선이 정말 쫄깃하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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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군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있었는데, 전부 덴마크 국기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소속 자체는 덴마크인 것 같다(페로는 덴마크의 자치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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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충격적이었던 건 한쪽에 머리만 남은 돌고래 사체가 있었는데 그 주변에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와 그것을 함께 보고 있거나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이 근처에서 노는 광경이었다. 이게 그들 삶의 방식이겠지.


내일은 북부의 백미 칼소이(Kalsoy)섬에 트레킹을 가는 날인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릴 수도 있어 마트에 도넛을 사러 갔는데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도넛이 정가의 반값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빠 가방을 체크했는데 너무 무거워 내가 짐을 다시 풀었다. 대일밴드를 한 100개는 넣어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칼소이 섬이 좀 위험하고 힘들다는 얘기를 해서 그런 것 같다. 밴드 같은 걸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서 몇 개만 놔두고 전부 빼버렸다. 그 외에도 우산, 노트, 필기구 같은 게 있어 이걸 빼니 1kg 정도 줄은 것 같다. 그래도 아빠는 이것저것 다 챙기고 싶어 하는 눈치여서 너무 빼면 또 걱정을 할까 봐 적당히 물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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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아빠는 아침식사가 필요해 숙소 근처 마트에 빵을 사러 갔는데, 원하던 샌드위치 수준의 빵은 없어서 햄치즈 토스트 두 개를 달라고 종업원에게 얘기했다. 계산 후 영수증에 사인을 해야 하는데, 펜이 없는 것 같아 그냥 손톱으로 해줬다. 들어와 짐을 싸고 넷플릭스 영화를 보는데 어제 그 오토바이 친구들이 또 나타났다. 자정 넘게 계속 소음을 일으키길래 '누가 신고 안 하나?'라고 생각해 봤는데, '신고하면 출동할 경찰은 있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어 헛웃음이 났다.


그렇게 페로의 열 번째 밤이 진다.




페로 제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airspace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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