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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아빠, 30대 아들의 페로제도 여행 21밤 11

8/18 흐리고 잠깐 맑고 비

by 페로 제도 연구소
11일 차 동선
선착장 > 페리 탑승 > 버스 탑승 > [마을] Trollanes > [트레킹] 칼루르(Klallur) 등대 > 버스 탑승> 선착장 복귀 > 숙소 > [식당] Reyoleyk Klaksvik 피자 테이크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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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북부 트레킹의 정수인 칼소이섬의 칼루르(Kallur) 등대 트레킹을 가는 날이다. 다행히도 흐리지만 비는 거의 안 오고 있다. 원래 가장 이상적인 루트는 [페리 > 섬 도착 > 자차로 트레킹 코스까지 이동 > 트롤리네스(Trollanes) 마을 > 선착장 > 페리 탑승]이다. 그런데 페리에 차를 7대밖에 실을 수가 없는데다가 그마저도 예약에 실패해 칼소이에 도착한 뒤 버스를 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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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 도착해 뱃삯을 지불하고 페리에 탑승했다. 그 뒤를 이어 차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그렇게 나의 부러움을 잔뜩 실은 페리는 지독한 매연 냄새를 뿜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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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정도 걸려 칼소이 섬에 도착했다. 여기서 트레킹 코스까지 가려면 30여분 정도 걸리는 버스를 타야 한다. 전기 자전거가 새로 생겨 이걸 타볼까 했는데, 날씨도 안 좋고 좀 위험하고 힘들 것 같아 그냥 버스를 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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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에서 내리니 버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버스비는 편도 20 DKK, 약 4천 원으로 차 안에서 카드나 현금으로 낼 수 있다. 차 내에서 물 외 음식물은 섭취 금지이고, 좌석이 가득 찰 경우 입석으로 가야 해 페리에서 빨리 내려 버스에 올라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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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칼루르 트레킹은 날씨가 중요한데 날씨 예보를 보니 곧 비가 올 것이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달려 버스는 트롤리네스(Trollanes)에 도착했다. 이 트레킹의 시작은 트레킹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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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네스와 쇠그보그스바튼 호수처럼 입장료를 받는 페로의 명소는 평점이 대략 3점 후반~4점 초반대로 낮은 편이다. 역시 이곳도 입장료가 있고 비용은 1인당 200 DKK(약 4만 원)인데 이만큼 돈을 받아가면서 트레킹 코스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아 구글 리뷰에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한 곳이다. 게다가 돈을 받는 사람이 완전 무표정해 그게 한몫 더 하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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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예보는 있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목적지쪽 방향의 하늘이 맑아 기대가 된다. 칼루르 등대 트레킹 코스의 가장 큰 난관인 초입 부분에 도착했다. 앞을 보니 먼저 출발한 사람들이 산비탈을 거의 타고 올라가는 수준으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전날 밤에 온 비때문에 안그래도 가파른 코스가 미끄럽기까지 해 올라가는 데 큰 고초를 겪었다. 꺾어질 듯한 발목을 이끌고 첫 고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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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에서 날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양의 배설물! 페로의 유명 트레킹 코스 중에서도 그 정도가 심한 편이라 바닥을 항상 잘 보고 걸어야 한다. 그래도 역시 풍경 하나는 일품이고, 양들이 들판에 널브러져 있어 분위기도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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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상까지 가는 길이 싫지만은 않은 건, 몇 번이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게 하는 이 풍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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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바닥을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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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시간 정도 걸려 정상에 도착했다. 여기서 세 가지 뷰포인트를 갈 수 있는데, 첫 번째 뷰포인트는 등대 뒤쪽으로 가는 길이다. 길이 좁고 바로 절벽이라 바람이 강한 날에는 상당히 조심해야 하는데, 작년에 아내와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안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만큼 끝내주는 뷰를 자랑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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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영화 007의 제임스 본드가 작중에서 죽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기리는 묘비가 있는 포인트다. 007 무덤에는 별 큰 감흥이 없어 아빠만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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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뷰포인트는 산봉우리를 좀 더 앞에서 바라볼 수 있는 뷰인데, 완만한 평지로 상대적으로 걸어가기 쉽다. 물론 길이 좁아 마주오는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옆으로 비켜야 하는 구조라 조심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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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뷰포인트까지 보고 나니 시간이 좀 애매했다. 원래는 섬에서 더 늦게 나가려고 했는데, 날씨도 안 좋아질 것 같고 세 시간이나 더 있기엔 너무 길어 보여 빨리 내려가면 버스를 타고 선착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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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에 조심한다고 했는데 길이 미끄러워 기어코 한 번 미끄러져 엉덩이부터 말끝까지 바지가 전부 젖어버렸다. 너무 찜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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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이 날씨에 아이를 업고 온 아빠도 보여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도 엉덩이쪽을 보니 진흙이 묻어있어 한번 넘어졌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나중에 본 거지만, 버스에도 엉덩이가 젖어있는 사람들이 두셋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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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를 타고 다시 클락스비크로 돌아가는 길에 내 머리속엔 온통 빨리 집에 가서 바지를 세탁할 생각뿐이었다. 갈수록 찜찜한 기운이 강해져 다른 생각을 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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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아빠는 피곤했는지 잔다고 했다. 저녁도 안 먹는다고 해 나는 뭘 먹지 하다가 근처에 있는 피자 가게에 가보기로 했다. 페로에서 저녁에 영업하는 식당은 피자집나 코스요리하는 곳이 가장 보편적인 것 같다. 의외로 햄버거는 저녁 늦게까진 안 하더라. 페퍼로니 피자 하나를 포장해서 집으로 왔다. 맛은 뭐... 우리가 생각하는 그 피자라 큰 감흥은 없었지만, 아는 맛이 나오니 그건 그거대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페로의 열한 번째 밤이 진다.




페로 제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airspace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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