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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Oct 16. 2015

A4. 영혼으로 갚겠다, 테오야

반 고흐 미술관 - 그의 삶을 따라가는 한 시간의 여정


끝 모를 무기력과 우울감을 견디기 힘들었던 고흐는 1889년 5월 생레미의 요양병원으로 스스로 입원합니다. 다시 자신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죠. 미술관을 걷던 저는 희망을 노래하는 아를의 그림이 끝나간다는 사실에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슬픔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덜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층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기분 탓일까요. 그림 속 하늘은 점차 어두워져 갔고, 왠지 모를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점차 이 여정의 끝이 예상되기에, 마지막 층을 오르는 발걸음은 조금씩 무거워져 갔습니다. 


그렇게 3층에 오르자마자 만난 그림은 ‘밀밭’이었습니다. 환한 태양을 감싸 안은 연두색 하늘 아래 회색, 보랏빛의 산이 보이는 넓디넓은 밀밭. 나선으로 휘몰아치는 밀밭은 작열하는 태양에 의해 순수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수확의 기쁨만을 보고자 한다면 이 그림은 금빛 희망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고흐가 이 그림에 투영한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수확하는 사람이 있는 밀밭>,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9월, 캔버스에 유채, 73 x 92 cm, 반 고흐 미술관


"수확하느라 뙤약볕에서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있는 흐릿한 인물에서 나는 죽음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건 그가 베어 들이는 밀이 바로 인류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이 죽음 속에 슬픔은 없다. 태양이 모든 것을 순수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환한 대낮에 발생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그리며 쓴 편지에서 밀밭이 고흐에게 어떤 의미인지, 병원 창가를 통해 바라본 풍경을 어떤 마음으로 화폭에 담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동생에게 갚지 못할 빚을 지고 있는 것에 대한 끝 모를 죄책감과 계속되는 발작증세로 정신은 파편처럼 흩어져 버렸지만,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은 희망의 끈이었습니다. 죽음의 이미지가 이 그림을 휘덮고 있지만, 고흐가 이 그림에서 진정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이제 막 미소를 지으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밀밭을 휘감고 있는 서클은 여전히 금빛으로 빛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생레미의 정신 병원도 고흐의 발작은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고흐도 이제 부지불식간 찾아오는 발작을 피하기보다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을 정합니다. 공포를 이기기 위해 그만큼 더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오히려 머리는 명료해지고 집중력이 살아나 평소보다 더 많은 그림을 그려냈죠. 


1889년 가을이 병원 정원에 찾아왔고, 떨어지는 낙엽은 고흐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갔습니다. 화창한 봄과 여름 햇살을 노래하던 아를의 그림과 달리, 차가운 바람에 흩날리는 쓸쓸함이 가득한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즈음, 문득 고흐는 자신의 유년기를 보냈던 고향이 미치도록 그리워지기 시작합니다.

<성 바울 병원의 정원 - 낙엽>,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캔버스에 유채, 73.5 x 60.5 cm, 반 고흐 미술관


고흐는 다른 빛을 찾기 위해 이 곳 남프랑스에 왔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그림에 던졌습니다. 그 모든 것이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들라크루아는 고흐가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던 화가였습니다. 고흐가 자신의 그림을 채워줄 새로운 빛을 갈구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낭만주의를 이끌었던 이 프랑스 화가의 감각적인 작품들을 접하고 난 후부터였죠. 이러한 그의 경외심은 테오가 보내준 들라크루아의 판화 한 점을 모작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고흐는 원작에 없던 새로운 색채를 입혀 자신만의 그림으로 완성해 냅니다.


이 그림은 고흐가 그린 얼마 되지 않은 성화(聖畫)다. 사실 그동안 많은 화가들이 주제로 다뤘던 성경의 한 장면은 고흐에게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고 많은 실망감을 느꼈던 그였기에, 그의 눈은 늘 인간과 정물 그리고 자연에만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때 성직자를 꿈꿨던 그였기에 구원에 대한 믿음마저 포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피에타>,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9월, 캔버스에 유채, 73 x 60.5 cm, 반 고흐 미술관

피에타. 이 그림과 바티칸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조각이 마음속에서 교차했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한 한 남자와 그의 어미의 절규가 내 몸에 난 상처처럼 전해져 왔습니다. 고흐는 아들의 주검을 부여안은 어미의 눈에서 초점을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절망과 고통을 채워 넣었습니다.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이.




테오야. 이번 달에 보내준 생활비와 물감, 캔버스들 잘 받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뭐라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주 새 물감을 보내달라고 해서 참 미안하구나. 내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상당히 많은 물감을 쓴다는 것 잘 알고 있단다. 생계를 의지하면서 이런 부분까지 짐을 주게 되어 마음이 참 무겁다. 혹시 네게 부담이 된다면 알려다오. 물감이 많이 드는 유채보다 한동안은 드로잉 위주로 작업을 해도 괜찮을 것 같구나. 


이곳에서 꽤 많은 그림을 그려왔지만 아직도 네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붓을 든 내 선택이 가끔은 후회스럽기도 하구나. 그동안 내가 쓴 돈을 보상하려면 내 그림이 팔려야 할 텐데. 하지만, 언젠가 내 그림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비싸게 팔릴 것이라 믿는다. 


네게 진 빚은 꼭 갚겠다. 지금보다 그림을 더 많이 그려서라도.
그래도 부족하면 내 영혼으로 갚겠다. 테오야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너와 제수씨에게 드디어 아이가 생겼다고? 진심으로 축하한다, 테오야. 제수씨가 참 고생이 많았겠구나. 수고 많았다고 전해주렴. 내게도 조카가 생기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몹시 보고 싶구나. 조카 이름을 내 이름을 따서 지었다니 고맙구나. 하지만, 이름 때문에 조카가 못난 삼촌의 운명을 닮을까 걱정이다. 부디 내 기구한 팔자는 따르지 말아야 할 텐데.


<꽃이 핀 아몬드 나무>, 빈센트 반 고흐, 1890년, 캔버스에 유채, 73.5 x 92 cm, 반 고흐 미술관


너와 제수씨, 그리고 새로 태어난 조카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꽃이 피어나는 아몬드 나무 한 그루란다. 가족을 위해 그리는 그림이라 더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하늘색 바탕에 연두색과 초록색으로 가지를 그리고 분홍의 꽃잎을 그려 넣었다. 피어나는 새 생명을 축복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네 가족 침실 벽에 걸어 놓으면 좋을 것 같다. 너와 제수씨 그리고 우리 사랑스러운 조카가 이 그림 밑에서 평화스럽게 잠이 든 모습을 상상하면서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단다. 부디 우리 빈센트를 빠른 시일 내에 만나 품에 안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고 고귀한 우리 빈센트.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내 영혼의 바닥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테오야.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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