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미술관 - 그의 삶을 따라가는 한 시간의 여정
남프랑스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말년의 고흐에게 참 특별했는가 봅니다. 하늘을 향해 휘몰아 뻗은 이 검고 푸른 나무는 '별이 빛 나는 밤'과 '파란 밀밭'에서도 등장해 풍경을 더욱 풍성하게 했으니 말이죠. 푸른 하늘과 전경을 이어주는 크고 검은 나무들은 아름다운 선과 균형미를 갖춰 고흐에게 큰 흥미를 안겨주었습니. 마치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불타오릅니다. 여름날 지면에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하늘도, 구름도, 밀밭, 그림의 반을 채우고 있는 검은 나무 한 그루, 그리고 저 멀리의 풍경까지. 정신병과 사투를 벌이던 고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이글거리며 불타올랐습니다. 사물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서로를 휘감아 주변의 색깔을 빨아들였습니다. 고흐의 광기가 기화제가 되어 자신의 그림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곧 꺼져 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불꽃이었습니다. 미술관 출구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보아야 할 그의 그림이, 따라 걸어왔던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습니다.
생레미의 요양병원도 결국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했습니다. 병원생활에 지친 고흐는 테오 가족이 무척 그리웠습니다. 결국 주치의의 도움을 받아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아즈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약 2개월. 짧은 기간이나마 그는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병세로 쇠약해진 심신이었지만, 더욱 작업에 몰두하였고 이 곳에서만 70여 점의 그림을 그려 내었습니다.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없는 것을 알았을까? 틈날 때마다 오베르 쉬아즈 곳곳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열심히 담았습니다.
이른 여름, 자홍과 초록의 관목과 희고 분홍의 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뒤쪽에는 울타리와 담장이, 담장 위에는 보랏빛 가지의 호두나무가 있고, 라일락과 참나무가 아름답게 줄지어 늘어져 있습니다. 이 곳은 고흐가 무척 좋아했던 정원입니다. 프랑스의 화가 ‘도비니(Daubigny)’가 살던 저택과 그에 딸린 정원이죠. 이곳의 꽃과 나무를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고된 작업의 피로도 쉬이 잊을 수 있었습니다.
빠르고 거친 붓질로 대담하게 그렸습니다. 정원 가득하게 난 풀잎을 그리는 것은 아를의 과수원을 표현하던 그 붓놀림 그대로였습니다. 아를에서 그랬듯, 자연은 고흐에게 잠시나마 안식을 주고 있었습니다. 이젤과 함께 자연에 마주설 때가 가장 고흐다운 모습이었던 것이었습니다.
- 예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