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길이 만들어지기 전에 내 기억 속에 이 길은 없던 길이었다.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나 가본 적이 없다. 아마 바닷길로 가는 길이 아버지의 논으로 가는 길 보다 더 멀어서였을 것이다. 햇빛이 잦아든 시간 늦은 오후 산책을 바닷길로 향해 나서보았다. 관산포에서 득암항까지 가는 해변로를 한번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명이서 나서려고 했던 것이 네 명이 되었다.
관산호까지 차를 타고 나와 주차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바다 냄새가 약간 역겹게 목구멍으로 스며들었다. 그 언젠가 아버지가 바다에서 생선을 잡아와 마당에 내려놓던 날 맡았던 냄새 같았다. 엄마는 바로 옆 수돗가에서 생선을 손질하셨고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반찬으로 생선탕을 먹을 수 있었다.
섬마을의 바다는 추운 겨울 아버지의 바다다. 김을 하던 시절 아버지는 언제나 새벽이면 바다에 나가셨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김을 하기 위한 바다는 이제는 전복을 키우는 바다로 변했다. 신지면과 맞닿아 있는 호수 같은 바다를 바라보니 전복을 키우는 가두리가 가득 차 있었다. 배가 다니는 바닷길과 어업을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가두리들로 가득해 꽉 찬 느낌의 바다다.
전복을 키우는 공장 앞바다에는 먹을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인지 목긴 새들의 날아와 전복 공장의 시끄러운 모습과는 반대로 평화로운 모습을 자아낸다. 이 시간 바다낚시를 나선 사람들도 있었다.
이 길은 형제들이 함께 걸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소환해 내기는 충분한 길이었다. 지금은 꾸들바 한옥마을이 들어서있는 곳을 지나가기 전에 아버지의 논이 있었다. 엄마의 심부름을 가거나, 풀을 베기 위해서, 논농사 일을 돕기 위해 가거나, 소나 염소의 풀을 먹이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어린시절 우리집은 소와 염소를 여러 마리 키우고 있었다. 모든 형제들은 염소와 소의 꼴을 베는 작업에 동원되었다. 오빠들은 먼 곳까지 나가서 꼴을 베와야만 했다. 그때는 그렇게도 귀한 풀들이 지금은 지천이다. 사람이 걸어 다니지 않는 길은 허리만큼 풀들이 자라 있다. 길을 걷는 동안 무성한 풀들을 바라보며 요즘 파란색 세줄 무늬 운동화에 꽂혔다는 풀좀 베러 다닌 분은 낫으로 풀을 베는 시연을 했다.
"내가 어렸을 때였다면 이 풀 다 베버렸어 "
멀리 고금도까지 풀을 베러 가기도 하고, 경운기에 가득 싫은 풀을 득암리 고개를 넘어오다 꼬라 박기도 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베지 않는 풀이 있다면 그 시절 어디든 풀을 베러 다녔기 때문이다. 부지런했던 아버지는 자식들도 부지런한 삶을 살기 원하셨다.
나무도 열대우림의 남쪽나라를 방불케 하는 잎사귀가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칡덩굴은 섬을 뚫고 나가 바다를 건너 온 지구를 덮을 것 마냥 뻗어 나가고 있다. 길을 걷는 동안 무슨 나무인지 궁금해 검색창을 열였지만 다른 나무들만 알려주어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당목항까지 걸어가 다시 돌아오는 길 이제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한다. 노을이 바다를 비취고 있는 시간 그 노을을 바라보면 걷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노을이 내린 바다에 물고기가 튀어 올랐다.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낚시꾼들이 왜 이바다로 찾아오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새들이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것을 알았는지 바다 위로 낮은 비상을 한다. 물새들의 울음소리가 경쾌한 시간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바다를 추억하며 걷는 바닷길 산책이었다. 노을과 바다 왜가리가 튀어 오르는 것을 구경하며 관산포에 도착했다. 밤이 내려앉은 시간 물이 서서히 나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드디어 고동잡기 가장 좋은 시간이 되었다. 어두워서 고동을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올해 여름은 시골집에 바닷 고동 잡기 헌터들이 모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