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꿀잠을 자고 싶은 시간이다. 그러나 다급한 엄마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야만 했다. 소변이 마려우시다는 거다. 엄마가 누구를 부르는지 막내인지 막둥이인지 아니면 안네인지 이제는 그 호칭이 중요하지 않다. 그저 부르면 어디에서건 재빠르게 엄마 곁으로 가야만 한다는 거다.
엄마를 침대 옆 변기통에 앉혀 드렸다. 그러나 엄마의 소변 마려움은 가짜였다. 요실금이라는 병이다. 쥐어짜도 안 나오면 소변 구멍을 파서라도 오줌 한 방울을 파내야만 직성이 풀릴 정도가 되었다.
엄마는 가짜 오줌을 누고 침대에 눕혀 드리자 다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나도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하자 엄마의 입 벌리고 숨 쉬는 소리 코 고는 소리가 들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머리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묵직한 것이 짓누르는 듯해 개운함이 없다. 단잠을 자고 일어나야 어느 정도 안개는 걷힐 것 같은데 말이다.
오늘은 새벽 6시 목욕차가 오기로 되어있다. 어차피 얼마 안 있어 일어나야 하지만 남은 시간이라도 꿀잠이 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클릭 몇 번에 새벽시간은 훅 지나가버렸다. 55분에 현관문을 살짝 열어 놓자마자 엄마를 목욕시키기 위해 요양보호사님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엄마 일어나?"
"누구냐"
잠결에 엄마는 어리둥절이다.
"목욕하러 가야 해"
"오줌 누고"
휠체어에 앉혀드리려고 하자 소변 통으로 손을 가리키신다. 엄마의 요의는 아직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오줌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휠체어에 앉은 엄마는 요양보호사의 인사에 요양보호사의 엄마의 문안을 묻는다.
"엄마는 잘 계시고?"
"네 잘 계세요"
패딩을 입고 이불로 다리를 감사로 수건 가방을 무릎에 올려드리고 엄마의 휠체어가 현관문으로 나갔다. 엄마를 데리러 온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한 채 무턱대고 나가신 것이다.
아마 가끔 집에 방문하는 담양 동생으로 생각하신 것 같다. 그 동생의 엄마는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말이다.
이 새벽은 지난주 목욕을 하고 난 뒤부터 기다리던 시간이다. 요즘 머리가 간지러우신지 계속 머리를 긁어 대시며 목욕은 언제 하냐 질문을 하셨다.
"내가 시켜드릴게"라며 화장실에서 목욕을 시켜드렸는데 휠체어가 화장실에 들어가지 않아 엄마를 목욕의자에까지 앉히는데 힘이 들었다. 엄마도 위험을 인지하고 더 이상 집에서 목욕하자는 내 말에 대꾸를 하지 않는다. 머리도 마찬가지다.
"엄마 머리 감을란가?"
"뭘로 머리 감길라고?"
"샴푸 있어 집에"
"있냐~"
샴푸가 집에 있다는 것을 이제 아신 듯하다.
샴푸가 집에는 없다고 생각하신 것일까?
엄마의 목욕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요양보호사님이 집으로 엄마를 모시고 들어오셨다. 머리를 말리고 다시 엄마는 오줌이 마렵다고 하신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자셨다. 엄마의 이번주 대 숙원사업 같은 목욕이 끝났다. 다음 목욕시간을 기다리며 한주를 사실 것이다.
요양보호사 한 분이 이번 주로 그만두신다고 한다. 그동안 엄마를 잘 돌봐 주셨는데 아쉽다.
"새벽 6시부터 목욕을 시작하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시는 거예요. "
"다섯 시에는 일어나야죠"
"하긴 어르신들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신 분들이 많으니까"
"일찍 일어나서 기다리는 분도 계시고, 가서 깨우기도 해요"
"힘들지 않으세요"
"처음에만 그렇지 괜찮아요"
"하루가 너무 길지 않아요?"
"하루가 길어서 좋아요"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일하며 긴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에 반해 나의 하루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최대한 늦게 일어나는 하루를 보낸다. 나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아쉽게도. 말이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할 힘든 목욕을 이들처럼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 있어 가정에서 편하게 돌봄의 편리를 받고 있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 고립되고 외로운 이들에게 집으로 찾아와 주는 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