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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Apr 24. 2018

7화 서러운 순간들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거식증은 영양 불균형은 물론 전해질 이상 등의 문제로 사망률이 10%가 넘는다. 100명의 거식증 환자 중에 10명 이상이 사망한다는 뜻이다. 인체는 외부에서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전신의 근육에서 에너지를 끌어 쓴다. 그렇게 신체 모든 기관에서 에너지를 충당하다가 결국에는 심장의 근육에서 에너지를 구한다. 그로 인해 심장판막증, 부정맥,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 체내 리듬이 깨져 심근증이나 심부전이 생길 수도 있다. 반복적인 구토로 전해질 농도에 이상이와 사망하는 비율도 높다. 식도에 난 상처로 침투한 세균이 뇌까지 번식하여 사망하는 사례들도 있다. 거식증은 우울증 및 강박증과 높은 공병률을 보이는데 이런 여러 정신질환을 함께 앓으며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망한 거식증 환자 5명 중 한 명이 자살 일정도로 그 비중 또한 절대 낮지 않다. 


 마냥 방치하면 죽음으로 가게 되는 위험한 정신질환 거식증. 환자 본인이나 거식증 환자를 곁에 둔 사람들이나 이토록 위험한 정신질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밥을 먹지 못하는 병, 인간으로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생존에 최우선시되는 식사를 거부하는 일. 그걸 지켜보는 환자의 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심지어 청소년기에 거식증을 앓게 되면 뼈의 질량이 25~50% 줄어든다고 한다. 나만하더라도 매일 넘어져 멍이 들고 지난 1월에는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어 한동안 제대로 걷지 못하였다.


 무월경과 골절, 골다공증, 면역력 저하로 인한 수많은 합병증 등을 걱정하며 매일 시들어가는 환자를 지켜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식사를 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며 답답해한다는 것도 안다. 긴 병마에 가족도 지쳐서 등을 돌리는데 주변 지인들은 더 쉽게 지쳐서 멀어진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 가장 힘든 건 환자 본인이 아닐까. 본인이 가장 답답하고 절망하고 자괴하지 않을까. 나를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 돕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상처되는 순간들은 존재한다. 7화에서는 거식증 환자로서 서러웠던 순간들과 상처됐던 말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나의 이 고백이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겐 공감의 위로가 되고 그 주변인들에게는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고픈 것은 내 배다.

 사람들은 내게 밥을 먹으라고 한다. 대체 왜 그걸 먹지 못하느냐고 답답해한다. 그런데 정말, 정말, 진심으로, 나도 밥을 먹고 싶다. 내가 먹고 싶다. 내가 가장 먹고 싶다. 하루 종일 생각하고 꿈도 꾼다. 구수한 된장찌개에 흰쌀밥을, 포슬포슬하게 말린 계란말이를, 초등학생 때 먹던 문방구 떡볶이를, 양념치킨을, 비 오는 날의 수제비와 뼈 해장국을, 간장 계란밥을, 통 팥이 들어간 찹쌀떡, 딸기가 올라간 케이크를 매일 생각한다. 먹고 싶고 그리워서 밤낮으로 상상하고 먹방과 사진들을 찾아보지만 정작 내 눈앞에 음식이 마련되면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음식을 앞에 두고 울어버릴 정도로 나도 답답한데 먹을 수가 없다. 아니 내가 제일 답답하다.


 퇴원하고 거식증을 이겨내기 위해 내가 처음 세운 계획은 누군가와 계속 함께 있는 거였다. 나의 병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식사자리를 함께하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공허감은 강박행동을 부추기는 가장 좋은 먹이이기에 누군가와 함께 함으로 외로움을 차단하고 식사자리에 억지로라도 나를 노출시키고자 했다. 당장 내가 같이 먹지 못한다 해도 누군가가 계속 나와 식사해주길 바랬다. 당시 하루 한 끼 정도만 먹던 친구가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평일에는 그 친구와 식사 시간에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끼니를 챙겼다. 그 친구는 나와의 연락으로 하루 2끼를 챙겨 먹게 됐고 때때로 세끼를 다 먹는 날도 생겼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직접 만나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친구도 스스로 챙겨 먹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식사시간이 규칙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먹지 않아도 함께 있을 때 식사를 꼭 챙겼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어느 주말, 친구는 억지로 먹는다고 생색을 내며 푸드코트에서 오므라이스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자 친구는 '다 먹지 않아도 되지?'라고 말한 뒤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비참했다. 

가족도 아닌 친구가 그래도 날 도와주겠다고 곁에 있어주는데 내가 뭐하는 짓인가, 나는 함께 먹지도 못하면서 이런 개방된 곳에서 혼자 밥을 먹게 하는 게 친구에게는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만나기 전에 먹고 나왔다는 빵 때문에 점심시간이 지났어도 배가 고프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함께 식사해주기로 약속했잖아. 내가 과한 걸 요구하는 건가. 

 수많은 생각에 혼란스러워하는데 그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내 배는 연신 꼬르륵 소리를 내뿜었다. 배 고픈데, 나도 배가 고픈데, 나도 먹고 싶은데, 안 되는 건데, 서러웠다. 다 못 먹을 것 같다던 그 친구는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오므라이스를 다 먹었다. 친구가 먹고 난 빈 그릇을 보니 왈칵 눈물이 났다.


 그 뒤로 시험공부를 하는 지인과 도서관에 다녔다. 지인은 집에서 공부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나를 위해 도서관에 나와주었다. 함께 있어주면 내가 꼭 밥을 먹어보겠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시도도 못하는 나에게 화를 냈다. 지인은 먹지 못하는 나와 도서관 식당에 가는 건 그나마 괜찮지만 일반식당에 가는 건 싫다고 했다. 나와 식당에 함께 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라고. 그때 깨달았다. 내가 정말 과한 걸 요구하는 거란 걸. 

 

 '먹는 게 참 그렇게 쉽게 안 되는 건가 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 믿고 의지하던 또 다른 친구 역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친구니까 설명을 했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도 컸다. 전문지식을 동원해가며 변명했지만 돌아온 친구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렇게 잘 알면서 안 먹으니 더 화가 난다.  

 이럴 수가. 알면서도 할 수 없어서 가장 미치겠는 건 나 자신이란 말이다. 화를 내주는 그 친구가 좋은 친구라는 걸 알고 지금도 그 마음이 고맙다. 그럼에도 답답하고 서운함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

  

거식증 자체를 비하하는 말들

 5년 정도 알고 지냈던 남자가 내게 결혼을 제안했다. 누구라도 내 곁에 있어주며 함께 식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그 제안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남자 역시 내가 함께 살며 마음의 안정을 느끼면 분명 밥도 먹게 되고 좋아질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5년 간 한 번도 그 사람을 남자로 느낀 적이 없었다. 나만 건강해진다면 된다던 그 남자는 돌변해 내게 화를 냈다. '가진 것도 가족도 없으면서 데리고 살아준다 할 때 고마워해야지 네까짓 게 뭐라고 튕기냐. 거식증에 우울증에 수면장애를 가진 네가.'

너는 하필이면 왜 그런 병에 걸려서.

술을 마셔야만 밥을 먹을 수 있다니 이상해. 

너랑 같이 다니면 쪽팔려. 너무 말라서. 

개미가 부츠를 신고 있는 것 같아. 


공존하는 인간의 마음 - 동정과 시기

 내가 거식증인걸 아는 사람들은 마른 내 몸을 보고 안쓰러워도 하고 내 손목을 잡아보기도 하고 따듯하게 포옹을 해주기도 한다. 내게 많이 먹으라고, 뭘 먹을 수 있느냐고 물어봐 주기도 하고 살쪄도 괜찮다고, 지금은 너무 마른 거라고 날 격려해주기도 한다. 참 고맙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말들도 듣곤 한다. 

 너와 같이 있으면 내 다이어트에 도움이 돼. 너랑 있음 나조차 먹는 양이 줄어서 참 좋다. 내가 너였으면 좋겠다. 내 살이 다 너한테 갔으면 좋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종류의 말을 동일 인물들에게서 듣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너무 말랐다고 하면서 나처럼 마르길 희망한다. 그들이 내 앞에서 식사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죄가 되지만, 나의 거식 행위가 그들의 다이어트에 이용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내 몸이 부럽다고 하니 역시 살이 찌면 안 되는 거구나 싶어 곤혹스럽다. 이토록 고통스럽게 체중을 감량하고 유지하는데 노력 없이 내 몸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것에 화도 나고 내가 절제해온 음식들을 다 먹어가며 찌워된 그들의 살이 거식증의 고통을 감내하며 사는 내게 덜컥 붙었으면 좋겠다는 말에도 분노를 느낀다.


세상의 모순

 지난주에 아는 아주머니로부터 중매가 들어왔는데 받아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남자가 연봉 6천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데 여자가 들어와 같이 살기만 하면 좋다는 입장이라며 나를 설득했다. 소개받겠다는 여자들이 많을 것 같은데 어찌 내게까지 제안하시는지 여쭙고 싶었는데 아주머니는 쭈뼛 거리며 대신 아이를 빨리 원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차마 생리를 안 한다고 말할 수 없어서 가진 거 없는 저를 소개하면 아주머니 좋은 소리 못 듣는다고 얼버부렸다. 아주머니는 그제야 남자가 깡마른 여자만 찾는다고 덧붙였다.


 취미 모임에서 키가 172센티에 몸무게 90킬로가 넘는 남자를 알게 되었다. 그는 모임에서 만날 때마다 어려서 과체중 때문에 고통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러면서 나처럼 마른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했다. 심지어 평균 몸무게 이거나 날씬한 여자도 싫고 무조건 마른 여자가 좋다고 했다. 자신은 여전히 거구이면서 말이다. 나도 덩치 있는 사람에게 남성적인 매력을 느끼지만 그건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 강인함을 느끼기 때문이지 살에 대한 꼬인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먹고 싶은 것도 나. 먹지 못하는 것도 나. 몸이 아픈 것도 나인데 나를 보며 화내는 지인들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그들이 날 위하는 마음에 답답해하는 것임을 아는데도 속상하고 때때로 분노하기도 한다. 거식증을 앓은 지 약 9년. 주위에 거식증을 대대적으로 밝힌 지 4개월 만에 주변인들이 지쳐 떠난다. 

 그러나 이게 사실인 거다. 나의 무의식은 관심받기 위해 거식증을 이용하고 유지하려 했었다. 내가 건강해지면 아무도 날 봐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었다. 하지만 내가 아프기 때문에 혼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불건강하기 때문에. 가진 것도, 가족도 없다 해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나 돈이 많은 곳으로 팔리듯 시집가야 할 이유는 없다. 내가 건강해지기만 하면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배고픔도 못 느꼈던 시기가 있었다. 음식에 대한 욕구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언제나처럼 나는 이것 또한 이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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