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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지않는새 Jul 08. 2018

12화  BODY  IMAGE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서른이 넘으면서야 겨우 깨닫기 시작한 것이 있다. 내가 나 자신을 제3의 개체로 생각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서 '네 일인데 왜 남 일 말하 듯하느냐'는 피드백을 종종 받아왔다. 주로 내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나 몸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듣던 이야기였다. 이런 피드백을 듣는다고 해서 곧바로 나의 그런 행동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기는 어려웠다.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땐 '내가 정말 그런가? 에이, 어쩌다 말이 그렇게 나왔나 보지.' 싶었다. 몇 해에 걸쳐 여러 번 지적받고 나서야 겨우 내가 그런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못했다. 막연히, 내가 힘들어하는 부분들을 바로 보지 않고 회피하려나 보다 했을 뿐이었다.


 나를 제3의 개체로 생각한다는 것은 나를 타자화 시킨다는 것이다. 나를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나를 대해왔다. 이런 태도의 문제는 꽤 심각하다. 나를 사랑하는 일을 그토록 어려워하는 여러 이유 중에서 나를 타자화 시키는 이 태도가 지대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된 것에는 3.5화에서 이야기한 어려서 받은 신체적 학대가 큰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10살의 나는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일 조차 포기할 만큼 무력감에 잠식당해 있었다. 몸을 웅크리거나 근육에 힘을 주기보다는 시체처럼 널브러진 채 맞는 것이 더 피해가 적고 빨리 끝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도망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어는 감각을 상실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물리적 고통은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통증에 대한 기준을 남들과는 현저하게 다르게 만들었다. 신체는 물론이고 정서적 감각에 대해서도 나는 많은 것을 상실해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역경을 곧잘 이겨내는 내게 지인들이 대단하다고 할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해왔다.  

겨우 이 정도에 마음을 아파했다면 나는 진즉 죽었을 거야.


 나는 전신에 수많은 흉터를 가지고 있다. 언젠가 피부를 봉합한 바늘 자국을 세어 본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명확히 보이지 않는 그 실밥의 흔적들은 500개가 넘어 있었다.

 작은 생체기에도 사람들은 걱정하고 곧바로 치료한다. 흉이 남지 않도록 성형외과나 피부과에 방문하기도 하고 치료 연고는 물론 재생 크림도 끊임없이 바른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아왔다. 지금은 의도적으로 노력하려 하지만 일반인들의 처치에 비하면 아직도 한참이나 부족한 상태이다.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아야 한다는 개념도 없었고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으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미 망가지고 더럽혀진 몸에 흉이 한 두 개 더 생긴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마음이 아픈 거보다 몸이 아픈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왔다.




 5년 전, 종아리에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나름 상처를 돌본다고 돌보았지만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았다. 연고를 바르긴 했지만 여름의 높은 온도와 뜨거운 자외선에서 상처를 보호할 정도로 나는 섬세하지 못했다. 상처는 곪아갔고 썩는 냄새에 파리가 꼬일정도가 되었다. 자가 치료가 아닌 병원을 가야 될 지경이었지만 나는 약을 바르는 것도 그만두었다. 더 적극적으로 치료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나는 치료를 포기한 것이다. '언젠간 낫겠지'하는 안일한 태도로 '진물이 흘러 불편하니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정도로만 생각했다. 심지어 그렇게 상처가 곪은 상태로 강에서 수영까지 강행하였다. 뛰어들어간 물속에서 나는 물고기들에게 상처를 물어 뜯겼다. 썩은 냄새가 얼마나 지독했으면 물고기들이 내 살을 밥으로 알고 뜯어먹었을까.

 

 현재 내 집은 옥탑이다. 옥상에서 각종 채소와 고양이를 키우며 소소하게 산지 2년 정도 되었다. 올해는 여름을 맞아 옥상에 텐트를 쳐 두었다. 비가 오거나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저녁에 지인들과 옥상에서 맥주라도 한잔 할 요량으로 펴둔 텐트였다. 몇 주 전, 내 대인관계를 통틀어 내게 가장 중요한 W를 집으로 초대하였다. 옥탑으로 이사한 뒤 처음으로 내 집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옥상에 도착했을 때 W는 신음하듯 나를 부르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이 꿇려진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W를 바라보았는데 괜찮냐는 말을 건넬 수 조차 없을 만큼 W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W는 그날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숨 쉬거나 훌쩍이며 밤을 지새웠다.

 얘기를 들어보니 W는 옥상에 펴 둔 텐트가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인 줄 알았단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바로 알았지만 W가 밤새 괴로워했던 것은 내가 텐트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인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W는 내가 텐트에서 거주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게 그토록 한탄스럽고 화날 만큼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텐트를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그리는 W가 그동안 내 옆에서 얼마나 가슴 졸이며 걱정해왔을지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W는 참담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한 채 옥탑을 떠났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네가 하는 일들을 하지 않는 건 못 해서가 아니라 안 하는 거야. 네가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성취하는 것들은 전혀 칭찬받을 만한 일들이 아니야. 너는 가장 중요한 너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는 감각이 상실되어있다고.

  30센티는 되는 흉터를 사람들에게 자랑하듯 내보이며 살이 찢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피부 아래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근육과 지방을 어떻게 봉합하는지, 소독할 때는 마취를 왜 할 수 없는지 따위를 싱글벙글 웃으며 설명해주곤 했었다. 지금의 나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고 배워서, 더 이상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행동이 왜 이상한지 지금도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다. 단지 평범한 사람들에겐 그런 내 행동이 기괴하게 보인다는 걸 머리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이 정도 발전하게 되기까지 나보다 고생한 건 내게 마음을 주며 나를 아껴주셨던 W와 같은 분들이다. 나는 그들을 애태우다 못해 분노케 했고 더 나아가 절망을 느끼게까지 하였다.

"나는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신호를 보내면 며칠간 조심하며 원래의 컨디션을 회복하려고 하는데 너는 그러지 않아."
"네 몸은 네 것이야. 네 몸이 네 것 같지가 않아?"
"몸이 어딘가 불편하고 안 좋은 건 당연한 게 아니고 병원을 가라는 신호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을 때 몸에 이질감이 없어야 하는 겁니다."
"병원을 가야 하는 건 너 자신을 위한 일인 건데 내가 화내니까 병원을 가지 않아 미안하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지금이야 젊어서 버티는 거지. 앞으로 점점 못 버틸 거야. 지금도 멍 하나도 빠지는 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제대로 먹지도 않고..."
 "그렇게 평생 네 몸 안 돌보고, 그런 널 주변 사람들도 포기해서 야, 재는 원래 아파도 저래. 정말 아픈 건지 아닌지도 몰라. 그냥 내버려두어. 이런 대접받고 살고 싶어?"

 이토록 답답한 내게 포기하지 않고 화를 내주었던,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나를 일깨워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진심으로 죄송하다.




 자존감이 낮으면 본인의 감정과 욕구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타인의 감정과 욕구에 먼저 집중하게 된다. 타인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본인의 욕구인 줄 오인하기도 하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걸 삶의 목표로 두기도 한다. 어려서는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는 것, 커서는 주변 지인들이나 세상의 여러 잣대에 휘둘리며 과하게 집착하는 것들이 그러한 예 들이다.


 칭찬을 받는 것은 내가 잘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지고 좋지 못한 평가를 받으면 스스로를 비난하게 되곤 했던 것이다. 내 감정과 욕구는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칭찬은 확실한 '보상'이 되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칭찬할 일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나와 상관없는 내 외부의 기준을 달성하는 것에만 급급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5화-  지금 먹지 않으면 안 돼'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가난해서 찐 살들임에도 사람들이 나를 건강히 잘 지내는 것으로 본다는 것에 상처받았었다. 상처받을 일이 전혀 아닌데 나는 주위의 관심과 사랑을 잃었다며 불어난 살을 원망했다. 그런 스쳐 지나가는 의미 없는 말들도 애정이라고 느끼며 절실히 필요로 했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내 곁에 있어주기만 한다면 몸을 팔아도 좋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제는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었다. 친구는 오전에 감기 기운이 있다고 했었는데 저녁에 만나니 꽤나 멀쩡한 모습이었다. 친구는 오전 내내 '나는 감기 따위에 지지 않아. 금세 괜찮아질 거야!'라고 수십 번 되뇌며 최면을 걸었더니 정말 감기 기운이 달아났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나는 감기에 걸려도 대중교통을 뒤로하고 몇 시간씩 걸어 다니거나 술을 마시기도 하며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찾아서 하곤 했다. 방치를 넘어 내 몸을 더 학대하곤 했던 나는 감기에서 빨리 해방되어 건강한 컨디션을 되찾으려는 친구의 노력이 신기했다.

 나는 감기가 더 심해지길, 더 오래 아프길 바라 왔다. 내가 아프면, 정말 많이 아프면 그래도 한 번은 누군가 날 돌아봐주니까. '괜찮아?'라는 그 한 마디를 한 번이라도 더 듣고 싶었다. 사랑을 받을 수만 있다면 살이 썩는 고통이든 고열에 환청이 들리든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러니 그리 가혹하게 살을 뺄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이런 행동의 결과는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미의 기준에 집착하는 병든 마음,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 그리고 스스로 아끼지 않아 남들에게도 천대받는 현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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