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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Jul 04. 2018

11화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 ALCOHOL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11화를 쓰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에 부담이 느껴져 마음을 다잡는데 용기가 필요했다. 누구나 아픔은 있겠지만 그 아픔의 사연과 깊이는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런 수많은 세상의 아픔들 중에서 내 글을 구독해주는 사람들은 크든 작든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적어도 섭식장애나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의 문장들이 그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게 된다. 이것이 독자의 선택과 감상에 대한 나의 주제넘은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매번 긍정적인 방향으로 글을 끝맺고 싶은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희망적이고 발전 적인 글을 애써 쓰려고 하다 보니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고 비극적인 글이 써지면 자책하고 불안해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하기 싫은 일이 되어 있었다. 날 것 그대로의 거식증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던 초심과 수치스러울 정도의 진솔한 고백을 통해 나를 구원해보겠다던 다짐들이 온데간데 없어진 것이다.

 마음을 재정비하고 이십여 일 만에 키보드 앞에 앉았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의 힘으로 나를 마주하는 것. 익명의 힘을 빌린 고백을 목격당하는 것. 그것이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나의 목적이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 신형철


 폭식/제거형 거식증은 알코올 남용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2화에서 언급한 바텐더 언니처럼 술에 취해 폭식을 한 후 제거 행동을 하는 유형이 많다. 평상시에는 먹는 것을 절제하다가 술에 취해 자제력을 상실하면서 폭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폭식/제거형 거식증은 알코올 사용장애와의 공병률이 높다. 나 역시 그렇다.

 폭식/제거형의 거식증이 폭식증과 구분되는 것은 현저한 저체중이다. 저체중을 만들고 유지하며 억압해온 욕구들이 알코올을 만나 폭발하는 것이다. 식욕 자체를 부정했지만 내 몸과 무의식은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게 증명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각각의 정신병리가 심화될수록 음식 섭취 욕구가 먼저였는지 알코올에 대한 갈망이 먼저였는지 분간이 어렵게 된다.

 나는 현재 42킬로 까지 체중이 증가하였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지인들의 관심과 스스로의 노력 덕도 있었지만 체중 증가 하나만 두고 본다면 단연코 술의 힘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술에 취해서가 아니면 여전히 충분한 음식을 먹는 게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술에 취해서긴 하지만 그렇게라도 먹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다시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42킬로의 몸무게가 절대 건강한 방법으로만 만들어낸 몸이 아니란 것도 이제는 인정해야 만한다.


 최근 2년간 거식증이 악화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술과 함께 일명 '폭토' (폭식하고 토하는 것)를 일삼아 왔다. 현재는 술이라도 마셔야 음식을 섭취하기 때문이라지만, 예전에는 외로움 때문에 술자리를 주도적으로 이끌거나 참석해왔다. 2년 전에는 내 삶에서 음식보다 술의 가중치가 더 컸던 것이다. 9화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실에서는 10만 원짜리 집에 사는 궁상맞은 여자애였지만 술자리에서는 공주가 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달콤한 유혹이었겠는가.


 술은 텅 빈 열량이란 뜻의 Empty calorie에 해당한다. 칼로리가 높지만 영양소는 없고 빠른 속도로 분해되어 체내에 흡수된다. 무엇보다 우선적인 에너지로 사용되는 것이다. 하여 함께 섭취한 안주의 칼로리는 소모되지 못하고 그대로 몸에 저장될 수밖에 없다. 술자리를 끊어낼 수 없던 나는 술을 마시기 때문에 일반식을 더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마시는 날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전혀 하지 않거나 최소화해야 했다. 늘 하루 칼로리를 계산하며 음식을 섭취했기 때문에 계획에 없던 술자리가 생기면 너무 괴로웠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 수록 안주의 필요성이 절실해져 언제까지고 츄팝츕스를 안주로 술을 마실수는 없었다. 그렇게 먹게 된 안주마저 토해내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으로 이어졌다.

 어느새 내 모든 생활 패턴이 술에 맞춰져 있었다. 그날 그날의 할 일을 모두 마치면 보상처럼 술을 마시고 싶어 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안주와 술을 마실지에 대한 생각을 늘 하게 되었고 약속이 없어도 술을 마시기 위해 약속을 잡으려고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술을 마시는 순간을 위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술로 인한 이익이나 즐거움 때문이 아닌 그저 술 자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알코올에 대한 의존이 정도를 넘어섰다고 느낄 때쯤 나는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술만 끊으면 일반식도 먹을 수 있고 건강하고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술이 문제야. 술만 끊으면 돼.
-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누군가 내게 술을 얼마나 자주 마시는지 질문하면 나는 일주일에 아홉 번을 마신다고 답하곤 했다. 그만큼 자주 마시며 의존하던 술을 작년 9월부터 올 1월까지 약 4개월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술을 마실 칼로리로 밥을 먹고 싶었다. 일반식을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밥을 먹지 못했다. 술은 끊었지만 살찌는 것에 대한 공포는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술만 끊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입원을 해야 할 만큼 건강이 악화된 것엔 금주의 영향이 지대했다. 술 마저 마시지 않자 체중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현재, 술과 함께 먹는 안주의 칼로리와 영양소로 버텨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고백한다. 42킬로까지 살을 찌울 수 있었던 것에 술의 도움이 컸다. 이성을 잃을 정도가 되어서야 음식을 먹곤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먹다 보니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줄어들었다. 술자리는 언제나 1차로 끝내곤 했지만 2차 3차를 전전하며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려는 노력도 해보게 되었다. 먹다 보니 맛있는 걸 풍족하게 먹고 싶다는 욕구를 인정할 수 있게도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다.




 빡빡한 재수학원의 일정과 고된 알바를 마친 밤이면 나는 종종 소주를 사 가지고 집에 들어가곤 했다. 소주 한 병이 몇백 원이던 시절이었다. 소주가 들어있는 검정 봉지를 덜렁거리며 집으로 향하자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지곤 했다. 당시엔 소주 한 병이면 만취하던 나였다. "이모. 국물 많이 주세요." 집 앞 골목의 포장마차 이모는 푸짐한 국물 서비스를 바라는 내게 늘 소리 없는 미소로 답하던 분이셨다. 고작 어묵 두 개, 혹은 염통 꼬치 천 원어치를 사가는 나에게 넉넉한 어묵 국물은 물론 술을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는 잔소리까지 아낌없던 분. 그분 얼굴을 뵙는 것만으로도 고향집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푸근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지지직거리는 브라운관 TV를 무의미하게 틀어둔 채 어묵 국물에 소주 한 병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풀곤 했다. 때때로는 울기도 했으리라.

 처음 술이 맛있다고 느낀 건 소주 한 병에 어묵 국물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던 그 시절이었다. 이천 원이면 맛볼 수 있는, 어쩌면 그 당시 내게 유일했던 사치이자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에는 이성들의 대시와 관심이 무엇보다 자극적이었다. 그런 구애 행동은 술자리에서 특히 강렬했다. 브라운관 TV가 아닌 나와 눈 맞추고 대화하며 함께 건배를 해주는 사람들, 내게 친절하다 못해 떠받들어 주기까지 하는 자리, 그래서 못난 내 자존감을 높여주는 자리,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내가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또 네가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나눌 수 있는 시간, 내 돈으로 사 먹기 부담스러운 음식들과 접해보지 못한 요리들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 이 모든 것이 변명이지만 나는 이런 부가적 이익에 길들여지고 중독되어 갔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정말 자존감이 높고 어려서부터 사랑받으며 고귀하게 자라온 여성이 이런저런 남자들을 만나는 술자리를 전전하겠는가? 그럴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러고 싶은 욕구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녀들은 이런 술자리를 위험한 자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 조차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호감이 없고 관심이 없는 이성을 단지 나의 외로움과 술자리에서의 이득을 위해 만남을 이어가는 일. 내가 그렇게 관계를 이어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게 술을 사주는 사람들을 지켜본 지인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불쌍한 남자들에게 더 불쌍한 취급받는 거야. 너.
-


 금주에 성공했을 때 내가 여짓 살면서 이룬 그 어떤 성공적 경험보다 강렬한 성취감을 느꼈었다. 알코올에 대한 의존의 강도가 세서 단 일주일을 견뎌내는 것도 힘들었었다. 정확히 2개월 내내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금주를 시작한 2주 동안, ( 중독 문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면 최소 2주를 폐쇄병동에서 보낸다. 몸의 독소를 빼내기 위함이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빠지는데 최소 삼일이 걸린다지만 모든 독을 빼내고 금단 현상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워지기 위한 통계적 기간은 2주이다. )  내 몸속의 알코올 성분을 전부 몰아내는 과정에서 심한 감정 기복과 분노, 절망, 신체적 금단 증세를 이겨내야 했다. 2주가 지나서도 술에 대한 유혹은 끝나지 않았고 매 순간 흔들리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나는 어떤 약물이나 전문가의 도움없이 혼자만의 의지로 금주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술을 마신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아는 내 주위 사람들은 누구도 쉽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지 못한다. 이제와 술과 거식증. 두 개의 정신병리를 놓고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더 중대하다 비교하기 모호하지만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섭식장애가 먼저였다. 그렇다. 나는 거식증 환자인 것이다. 술을 끊고 마주하게 된 것은 폭식증이 아닌 거식증의 내 모습이었다.




 폭토를 반복하곤 했지만 나는 폭식증이 아닌 거식증 환자다. 온전한 내 정신으로는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거식증 환자가 바로 나인 것이다.

 그렇다고 술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다. 어묵 국물에 소주를 마실 때만 해도 나는 술을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술이 나를 이기고 정복하게 두고 있다. 그렇게 어렵게 술을 끊어 놓고서, 가진 변명을 늘어놓으며 다시 술을 마신다. 전혀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술을 마셔서 살을 찌운다는 건 적장의 목을 치기 위해 내 두 팔을 내어주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포기 하지 않는다. 내가 폭풍의 눈일 때, 즉 문제의 한 가운데  있을 땐 정리된 문장이 쓰여지긴 커녕 말로도 아무것 표현하지 못한다. 글로 쓰여질 수 있었다는 것에 나는 희망을 느낀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나아갈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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