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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지않는새 Jun 10. 2018

10화 달라지고 있는 것들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숲 속의 버터라고 불리는 아보카도를 나는 지금까지 딱 세 번 먹어 보았다. 그 첫 경험은 기약 없이 길어지기만 하던 입원 생활에 지쳐 간신히 외출을 허락받은 날이었다. 마음 따듯한 지인이 나를 부축해가며 광화문의 맛집을 데려가 주었던 것이다. 거리는 연말 분위기로 온통 반짝이고 있었는데 나는 옷을 잔뜩 껴입고 핫팩을 몇 개씩 가지고 있으면서도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다. 빌딩 5층에 위치한 맛집까지 몇 개나 되는 유리문들을 열어야 했고 북적이는 인파를 헤쳐야 했다. 자리에 앉았을 때는 이미 녹초가 되어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한 인테리어를 감상할 여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지인은 고심 끝에 아보카도 샐러드를 시켜주었는데 당시의 나는 아보카도가 과일 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애써주는 지인이 그저 감사해 뭔지도 모르는 그것을 어떻게든 먹어 보겠노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멕시코가 원산지라는 낯선 이름의 그 과일은 먹는 방법도 남다를거라 생각 되어서 지인이 먼저 먹는 걸 보고서야 입안에 넣을 수 있었다. 혀 끝에 닿은 아보카도는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워서 입안에 넣자마자 녹아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굳이 씹지 않아도 고소한 풍미를 남기며 내 속으로 스며들었다. 식당 안에서도 외투를 벗지 못할 만큼 추워서 마음까지 얼어있던 내게 아보카도가 세상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준 것이다. 그제야 크리스마스 전구가 눈에 들어왔다. 주황 불빛을 받은 아보카도가 반짝이며 빛났다. 그렇게 아보카도는 '외롭지 않은 연말'의 맛으로 내게 기억되었다.


 해가 바뀌고 나는 아보카도 샐러드를 한 번 더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렇게 두 번 정도 먹고 나니 떠오르는 슈퍼푸드라는 광고 문구와 아보카도 요리를 포스팅한 블로그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나는 직접 마트에서 아보카도를 사 왔다. 그것이 세 번째로 마주한 아보카도였다.

앵두 전구 맛의 아보카도

 이 경험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먹는 거 자체를 거부하던 내가 나 스스로 먹고 싶은 과일을 사 와서 먹었다는 것이 신기할 만큼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내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단지 먹지 못해서 먹고 싶었던 과자나 햄버거 같은 음식이 아닌 영양도 좋고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먹.고.싶.은 과일을 직접 사와 온전히 섭취했다는 것이 그렇게 기뻤다. 칼로리가 낮은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 고민하며 장을 보는 것이 아닌 먹고 싶은 것을 그대로 사 와서 먹는 것. 이 간단하고 당연한 일이 내게는 눈물 나게 대단한 일이었다. 이 경험을 기쁘게 느낄 수 있는 나 자신에게 감사했다. 이 얼마나 눈부신 성장인가.



 요즘 나는 육아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많은 TV 프로그램이 음식을 주제로 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식사 장면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육아 프로그램 역시 그러하다. 내가 육아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이유는 어린아이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이다. 아이를 먹이는 일이 부모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기쁨이라는 게 내게 남다르게 다가왔던 것이다. 아이에게 식사란 중요한 하루 일과로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자라 있는 어린아이들은 잘 먹는 것이 하루를 보람 있게 보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양섭취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이 당연함을 공부하는 학생처럼 지켜보곤 하는 것이다.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 먹고 더 달라고 혹은 먹을 것을 빨리 달라고 보채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내 머릿속의 잘못된 인지들을 재구조화한다. 밥을 먹어야만 하는것이 비단 아이들에게만 해당 되는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사람은 당연히 식사를 해야 하고 외부에서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없음을. 잘 먹는 것 자체가 저렇게 칭찬받을 일임을.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잘못이 아니라고.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기름을 두르고 조리한 계란 후라이를 먹게 되었다. 당도가 높아 멀리했던 딸기를 한 접시나 먹고 토하지 않았다. 채소와 옥수수를 먹고 낫또를 더 먹었음에도 토하지 않았다.


 나는 기계가 아니다. 먹는다고 해서 원하는 부위에만 살이 찌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정상 체중이 되는 것도 아니다. 매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음식이 더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 장기를 모두 꺼내 세척하고 싶어 괴로워하기도 하며 피를 토할 만큼 게어낸 후 자괴감에 몸부림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기계가 아니니까. 작심삼일이더라도 그 작심을 매일 새로 하는 것이다. 어제 보다 오늘. 조금 더. 잘 해보자고. 아침마다 다시 다짐한다.


 자존감을 향상하고 내가 나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행동들을 적기 시작했다. 나의 의견을 주변 상황에 맞춰 바꾸지 않았던 일. 작지만 갖고 싶었던 것을 내게 선물한 일. 햇빛을 맞으며 산책한 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거절한 일. 상처를 치료하고 잘 돌 본 일. 정성 들여 머리를 빗는 일.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다 더 구체적인 목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일은 너무 거창하고 모호해서 어떻게 해야 나를 아끼는 일인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하여 나는 나에게 칭찬받을 만한 일들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를 아끼는 일에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누구한테 관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한테 칭찬받을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니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인지 더 명확히 보였다. 아보카도를 사 먹은 일같이 말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마음껏 나를 칭찬한다. 그러면 내일은 더 많이 칭찬받고 싶어 지고 반대로 내게 미안했던 일은 다시 안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식사를 거르던 내가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심지어 그 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데친 오징어 / 소지섭에게 배운 토마토 양파 스프 / 낙지와 부추


난 치아가 완벽하지 않아요. 깡마르지도 않았어요. 나는 자기 몸에 대해 좋은 기분을 느끼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어떤 것도 바꾸길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엠마 왓슨


 아보카도를 아침마다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먹고 싶은 것이 생기고 그것을 매일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다니, 정말이지 거룩한 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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