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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지않는새 May 27. 2018

9화  자 존 감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9화에 들어서기에 앞서, 

 나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여러 번 나의 글이 이기적인 글쓰기가 될 거라고 밝혀왔다. 이 글들은 거식증을 이겨낸 경험이나 의사로서 전문적 지식을 나열하는 글이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써 내려가는 글이다. 현역 환자의 글. 섭식장애와 기타 정신질환과 동행하며 사는 한 사람의 두려움과 사색, 노력의 흔적을 기록한 글이다. 내가 좌절의 글로 결론을 맺는다면 브런치에 존재하는 나의 이야기는 좌절로 끝날 것이다. 수치심을 품은 나의 고백들이 다른 섭식장애인들에게 비교의 대상이 되어 그들을 더 채찍질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계속해서 밝힌다. 나의 글이 이기적이라고.

 

 그동안 몇 개의 짧은 거식증 사례를 소개하였다. 사례를 소개하면서 나는 거식증 환자들의 사연은 각각 다르지만 공통점이 존재한다고 말하였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적어도 내가 아는 환자들은)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했다. 엄마의 관심, 아버지의 사랑, 주변인들의 걱정을 필요로 했다. 혹은 그 사랑이 떠나가는 것이 두려워 거식행위를 선택했다. 내 가슴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가족 치료학 교수님의 말씀이 있다. 

모든 신경증 치료의 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약물? 심리 상담? 정신 요법? 이 모든 걸 뛰어넘는 것은 사랑입니다. 


 먹지도 않고 도움의 손길도 거부하는 환자. '도대체 옆에서 어떻게 해줘야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정해진 답은 없겠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수용'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존재 자체만으로도 경이롭고 충분히 사랑스럽다는 걸 환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주변에서 먼저 환자를 수용해주는 것이다. 걱정의 마음이 답답함을 넘어 분노로 치닫는 걸 이해한다. 날 걱정하는 지인들의 마음을 내가 이해하려 하는 것처럼 나 역시 간절히 이해받고 싶다. 


 건강검진을 위해 하루를 굶는 것도 힘들지 않은가? 만약 수술을 받아 삼일 동안 금식하게 된다면 어떠할 것 같은가? 사일째가 되어 겨우 미음을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누군가 그 앞에서 소갈비를 뜯는 다면 어떠할 것 같은가? 미치게 먹고 싶지 않을까?                                                                그렇지만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채소들과 낮은 칼로리의 음식들을 찾아 먹는 걸 비난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라도 먹는 것에 우선은 감사해주기를. 그런 모습도 우선은 수용해 주기를. 기다려 주기를. 더 옳은 선택을 할 거라는 걸 믿어주기를. 너무 먹고 싶지만 관심을 잃을지도 모른다는(말도 안 되는) 불안에 먹지 못하는 그 슬픈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조금은 답이 보이지 않을까? 


 나는 현재 42킬로까지 살을 찌웠다. 5개월간 6킬로를 찌운 것이다. 나의 노력이 가장 컸겠지만 지인들의 도움도 정말 컸다. 내가 먹고 토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먹겠다고 하는 것들은 전부 구해다 주거나 함께 먹어주었다. (토할 건데 돈 들여 왜 먹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토해도 섭취되는 부분이 크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라도 날 먹게 하였다. 그런 식으로 나마 입에 음식을 넣고 씹는 행동을 하다 보니 먹는 행위에 익숙해졌고 점차 늘려갈 수 있었다. 토하는 모습 조차 나는 수용받은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지인들은 예쁜 말들로 나를 도와주었다. 뚱뚱하고 살쪘냐는 나의 질문에 그들은 언제나 그렇지 않다고 답해주었다. 수십수백 번을 말이다. 더불어 희망의 말도 늘 덧붙여주었다. 

오늘은 무리 말자. 힘들면 그만 먹어. 여기 두고 갈 테니 마음 내킬 때 먹어. 지금은 토하지만 내일은 하지 말자. 지금은 이것밖에 못 먹지만 내일은 조금 더 먹자. 그럴 수 있어. 그렇게 될 거야. 네가 너를 믿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널 믿어.
'너는 우주의 아이야. 이 세상 나무들과 하늘의 별들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라고. (석가모니 인용)'
지금도 너는 예쁘지만 거기서 조금만 더 살이 찐다면 더욱 예쁠 거야.

그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의 이 믿음에 보답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어서 밥을 먹지 않는다.라고 정의 내린다면 많은 거식증 환자들은 분노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정의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하나의 이유로 거식증이 발병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질 좋은 사랑과 관심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과거였든 현재든 미래이든 양질의 사랑이 정신건강에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다. 나는 그렇다.

 지인들의 애정과 관심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지만 타인의 사랑으로 결핍된 마음을 다 채우기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이제와 누구에게 마음의 빈 부분을 채워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나이에 부모를 찾아가 원하는 만큼 사랑해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연인에게 그런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이자 상대에게 짐을 지어주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진부하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답이다. 이 고통에서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인 것이다. 


 나는 얼마나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을까? 내게 자존감이란 무엇일까? 나는 왜 자존감 낮은 사람이 되었고 그것이 내게 미치는 영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화에서 말한 것처럼 대학생 때는 43킬로를 유지하려 애썼고 성적은 올 A+가 목표였으며 청약과 보험, 각종 적금을 예치하면서 내 생활비까지 모두 감당해야 했다. 첫 등록금과 입학금은 외국인 노동자 생활로 마련했고 2학기부터는 성적 장학금으로 충당했다. 몸매를 만들고 성적 유지를 하고, 각종 예금과 방세, 공과금,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했다. 솔직히. 정말. 힘들었다. 파릇하고 상큼한 여대생이고 싶었지만 늘 공부와 일에 지쳐있었고 외로웠다. 월세 10만 원의 집에는 바퀴벌레와 개미가 함께 살았고 주어온 박스로 만든 옷장에는 쥐가 똥오줌을 싸고 가곤 했다. 여름에는 창문에 말벌집이 생겨 119를 불렀고 겨울에는 집안에서도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기름보일러의 집들을 전전하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기름을 사지 않았다. 그러면서 적금을 붓고 보험금을 냈다. 빚이 아닌 잔액이 든 통장을 들고 대학을 졸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 친구에게 물려받은 옷을 입고 구천 원짜리 신발을 고쳐가며 신었다. 각종 아르바이트는 물론이었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타 대학교 앞, 아파트, PC방,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팔았다. 그래도 생활비가 부족하여 후에는 내가 재학 중인 대학교의 동기와 선배들, 믿지도 않는 교회에 다니며 신자들에게까지 팔았다. 

 혼자 살아왔다고 여자가 고생했다고 무시받기 싫었다. 공부도 일도 잘하는 예쁘고 싹싹한 사람이고 싶었다. 무엇하나 모자란 것 없이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이런 생활의 결론은 부와 명예가 아니었다. 열등감과 오기는 나를 부러트렸을 뿐이었다. 아득바득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았지만 그러했기 때문에 공허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자격지심은 더 많아지고 자존감은 더욱 낮아졌는데 자존심만 높아졌다. 나는 MUST만 많은 강박적이고 여유 없는 꼬일 대로 꼬인 못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정말 실속 있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주위 시선에 휘둘리지 않았을 거였다. 나는 의미 없는 타인의 시선과 잣대를 신경 쓰며 내 그림자를 키워나갔을 뿐이었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술로 스트레스를 풀고 이성을 만났다. 현실에선 10만 원짜리 집에 사는 궁상맞은 여자애지만 이성 앞에서는 공주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나를 외모에 더 집착하게 만들었다. 문제가 발생한 걸 알았음에도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 역시 잘못된 방향이었던 것이다. 


사진출처: jtbc '한끼줍쇼' 프로그램 캡쳐.

 

 나는 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르게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간극은 당연히 크다. 자연스럽게 자존감을 탑재한 사람과 그것을 배워서 알아가야 하는 사람 사이에는 더 많은 간극이 있다.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본인을 아낄 수 있지만 나는 그것도 배워야 한다. 어떤 행동과 사고가 나를 존중하고 아끼는 일인지 나는 모른다. 모른다고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배우고 부딪치고 나아갈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가 받아들일 것이다. 누구도 나만큼 나를 이해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누구도 나만큼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사진출처: jtbc '효리네 민박' 프로그램 캡쳐.


  평생 나를 아껴본 적이 없었기에 규칙을 정하고 경계를 정하는 작업을 먼저 하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깨닫고 마음먹은 일들도 매번 상황과 사람들에게 휘둘리기 때문이다. 거창한 것이 아닌 아주 간단한 것들부터 시작하고 있다. 빗질을 하는 것이 그런 것 중 하나이다. 긴 생머리를 갖고 있음에도 브러시를 장만한 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요즘 나는 시간을 들여 머리를 빗는다. 마치 엄마가 어린 딸의 머리를 정성 들여 빗겨주듯이. 


 지금까지 정해진 규칙들을 조금이나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적은 양의 음식을 먹더라도 예쁘게 차려놓고 먹기. 고개를 들고 바른 자세로 걷기. 저렴한 물건이 아닌, 내게 필요하고 알맞은 제품을 구매하기. 여전히 자주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거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유연하게 의지하기. 하루에 한 장씩 자화상 그리기. 도움이 필요할 땐 요청하기.
그리고 언제나 나는 내 생각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잊지 않기.

 

 나는 내가 나를 위해 점점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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