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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Jan 20. 2020

#29.

-부정



 내가 아직 석사생이었을 때 선생님과 찍은 사진. 선생님은 이 찰나의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건 나와의 일이라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라 서다. 3초도 되지 않는 시간. 당시 선생님에겐 함께 찍는 사진보다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셨을 뿐이다.

 나는 이 사진을 특별히 더 좋아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 같아서였다.


 브런치에 <이런 사랑>을 연재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회에서 '아픈 사람'이라고 낙인 찍힌 사람들은 연애조차도 죄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에 반박하고 싶어서였다.

 자기 자신 조차 사랑하는 일을 어려워하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살아가고 그럼에도 이렇게 연애를 하며 그것이 서로에게 안정과 위안, 더 나아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관계가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군가 내게 애인이 있냐고 물으면, 이런 나 조차도 "없다"고 답할 만큼 나는 우리의 관계를 부정해왔었다. 내가 어려서 부터 상상하고 바라던 연인의 형태가 지금과 같은 것은 아니었기에, 좋아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와 내가 함께하는 시간들이 연애인지는 모르겠다고 답하곤 했었다.


 나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쌤에게 "나를 외롭게 두지 마. 당신은 내가 원하는 걸 준 적이 없어!"라며 소리치곤 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연재하기로 결심했을 때의 내 마음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진을 찍는 일 보다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한 그.

 그것이 허한 마음의 소유자인 나에게 서운한 일 일순 있더라도 절대 잘못은 아니다. 틀린일이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에게 더 중요한 자아실현의 목표가 있다고 해왔다. 그럼에도 쌤은 나와 연락했고 그럼에도 가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내가 널 만나고, 널 위해 이렇게 까지 한다는 거. 나 너 좋아해.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사랑>을 연재하고 보니, 내가 드린 마음보다 그에게 내가 받은 사랑이 더 컸다는 걸 깨닫는다.


 단지, 사랑의 형태가 달랐던 것 일뿐.

 그는 언제나 내게 최선의 최선이셨다.


쌤은 늘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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