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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Jan 23. 2020

#31.

-평범의 범주



 친하게 지내는 딩크 부부가 있다. 아내 분은 의존도가 매우 높은 성향이었다. 결혼 후 몇 년 간은 신혼집 거실에 이불을 펴고, 특별한 활동 없이 아이 마냥 누워만 지냈다고 한다. 현재는 활발히 화가로 활동 중이신 그분의 말씀으로는 지금의 이 삶의 질은 모두 남편 덕이라고 한다.  


 남편은 반대로 자신에게 아내가 너무도 안성맞춤인 여자였다고 말한다. 그에겐 일찍이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여동생이 있었다. 십 년도 채 살지 못하고 떠난 그 여동생을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남편. 그런 그에겐 자신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챙겨주고 보살펴 줄 어떤 존재가 절실히 필요했다고 한다. 


남편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아이처럼 사랑받은 아내는 충분한 휴식 끝에 과거를 털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되찾았다. 남편은 두 발로 일어서는 아내를 지켜보며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확인받았다. 

 그 둘의 신혼생활은 그렇게 서로의 원트를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충족시켜주는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의지를 넘어 의존해야 했던 사람과 보호를 넘어 집착이 필요했던 사람의 만남. 사회에서는 이를 평범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뭐. 그 두 분이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주며 행복하시다는데 감히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평범과 보통의 범주는 어디까지이고 누가 정의 내리는 것일까. 평범한 것이 가장 행복한 거라는 일반적인 말. 그렇다면 반대로 평범하지 않은 것은 모두 사나운 팔자고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백로가 어울리지도 말아야 하는 까마귀들인 것일까?


 내가 수두룩이 선고받은 그 진단들 역시 더 편리하기 위해
신이 아닌. 나와 같은. 평범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하나의 범주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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