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 늦깎이 임산부 이야기
절박유산이라는 진단을 뒤로한 채 일주일이 흘렀다. 직장에서는 여전히 아무 일 없는 듯 일상을 보냈다. 서서 수업하는 게 버거웠지만, 이 정도도 못 버티면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다며 아기에게 채찍질하듯 견뎠다.
"이번 주는 토요일에 오세요."
일주일에 한 번씩 오라시던 선생님이 토요일 진료를 잡으셨다. 특별한 주수도 아닌데, 갑자기 왜 주말에 오라고 하셨을까.. 이번에도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괜찮다는 말씀 뒤론 아스피린을 처방하시고 절박유산 진단을 내리셨으니까.
남편이랑 같이 오면 되겠다 싶었다. 주말 부부인 나는, 줄곧 혼자 병원에 왔다. 남편이 멀리 있어서라기보다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히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번뜩 생각이 스쳤다.
'이번 진료는 보호자가 필요하구나.'
주말이 분수령일 것만 같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토요일에 오라시네. 아무래도 같이 가야 할 것 같아."
"그래, 그러자."
담백하게 사실만 전했다. 남편도 더 묻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딱 이맘때였다.
벌써 4년 전이다.
행복한 마음으로 진료를 기다리던 우리 부부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일어났던 날. 아기의 심장박동이 멈췄던 그때.
한참을 진료실에서 울었다. 준비 없는 선고는 가혹하기만 했다.
주말 진료는 역시 대기가 길었다. 아빠, 엄마, 아기 세 명이서 진료를 기다리는 곳. 대기실이 기대로 가득한 병원이 어디 또 있을까.
드디어 내 이름이다. 두 시간 삼십분을 기다렸다.
"잘 계셨어요? 오늘은 아기 심장박동 확인할 거예요. 바로 초음파 볼게요. 아빠도 들어오세요."
짐작이 맞았다.
선생님은 말없이 한참을 아기집을 살피셨다.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자궁에 혹을 보러 갔을 때도 지금보다 길지는 않았을 거다.
"화장실 다녀오세요."
방광이 눌러져서 잘 안보일 거라시며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하셨다. 화장실로 가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몇 주간의 내 만행이 떠올랐다. 정 주지 않겠다며 태명조차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다. 이름조차 없었던 우리 아기.
진료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슬픈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번엔 용기 내서 눈을 뜨고 화면을 봤다. 이번에도 말없이 한참을 찾으셨다.
"여기 숨어있었네."
오른쪽 가장자리에 조그마한 무언가가 보였다. 그리고 우렁찬 심장박동도 들렸다. 남편의 안도하는 큰 숨소리가 들렸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 구석진 곳이 가장 안전했던 걸까. 그동안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마음이 들어 너무나 미안했다. 내 마음 슬플 것만 생각하느라 아기를 생각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환대해주지 못했던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더 이상은 후회하면 안 된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제 직장에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