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 늦깎이 임산부이야기
임신 6주차, 산부인과 검진일이다. 몸살을 핑계로 퇴근 시간 30분 일찍 조퇴를 냈다. 누구도 내가 임산부일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동갑 동료의 큰 아이가 벌써 초등학생이니 말이다.
본심은 행동에서 드러나기 마련. 마음을 내려놓는다면서도 30분이나 차를 타야하는 산부인과로 향했다. 인기 많은 산부인과다.
어두운 화면에 아기집이 보였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큰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의사 선생님이 나보다 더 기뻐하셨다. 유일하게 비밀을 아는 한 사람. 가족 말고 아기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이가 있음에 감사했다. 기쁜 내색 없는 내가 마음 쓰이셨던 걸까. 연신 괜찮을 거라며 걱정말라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스피린을 처방하셨다. 임산부가 약을 먹는다고? 놀란 내 눈을 보며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 먹는 거라시며 안심시키셨다.
진료실을 빠져나와 부랴부랴 아스피린을 검색했다.
'만병통치약'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그것도 뉴스 기사. 굳게 믿고 싶었다.
임신 6주 차, 나는 만병통치약을 얻었다.
진심은 행동에서 드러난다고 했잖냐.
"일주일치 밖에 처방 안 해주시던가요?"
병원 옆 약국 약사님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보통 한 달분씩 처방받는 모양이었다. 왜 일주일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30분 동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주 오라는 뜻인가. 일주일만 먹어도 된다는 걸까. 한 달분이 필요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유산되면 먹지 않아도 될 약일테니. 굳이 오랜 기간 처방받을 이유가 없었던 거다.
의사 선생님은 끝을 준비하셨던 걸까....
아스피린이 한 알 한 알 줄어들 때마다 끝에 다다르는 기분이 들었다. 만병통치약을 다시 받지 못하면 어쩌지..
두 번째 일주일분의 아스피린을 다 먹은 날, 드디어 한 달분의 아스피린을 처방받았다. 아기가 무사하다는 소식만큼이나 기뻤다. 계약직에서 정규직이된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의사 선생님께선 괜찮다는 말끝에 진단서를 써줄 테니 직장은 잠시 쉬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진단명은 절박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