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 늦깎이 임산부 이야기
"피검사 결과, 임신입니다. 축하합니다."
하이톤인 간호사가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떨떠름한 내 반응에 하이톤은 사라지고 전화를 급히 끊었다. 임신이 끝이 아님을 두번의 유산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번이 세번째 임신이다.
두번째 임신을 확인했던 날, 남편의 첫 마디가 생생하다.
"우리끼리만 알고 있자."
섭섭했다. 이번엔 다를 수 있잖아. 두번이나 그럴리는 없잖아. 첫 임신처럼 꽃다발도 받고 케이크 촛불도 불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는 어른들 말씀이 이해가 될 때 즈음 40세를 맞았다. 결국 유산이었다.
남편의 말이 맞았다. 우리끼리만 알고 있어야 했다. 다른 이에게 슬픔을 설명하기가 괴로웠다. 일주일의 특별 휴가를 받고 엄마에게 바로 달려갔다. 그렇게 매서운 겨울을 지나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 번째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남편에게 전화했다.
"우리끼리만 알고 있자."
섭섭했던 그 말을 이제는 내가 먼저 했다. 꽃다발도 축하도 받고 싶지 않았다.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살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또다시 슬픔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당장 달려갈 엄마도 이제 계시지 않는다. 후에 있을 슬픔에 담담하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해야 한다.
나는 모든 게 늦었다. 30대가 되어서야 겨우 교원 임용 시험에 합격했고, 부랴부랴 결혼했다. 늦어도 조급하지는 않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기에. 나를 믿었다.
임신은 달랐다. 노력의 값이 반영되지 않았다.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무엇보다 임신은 곧 유산이라는 나에게만 적용되는 공식을 인정해야 했다.
사람들에게 임신을 알릴 수 있는 날이 올 수나 있을까.
하늘에서 엄마가 보낸 천사일까.
어쨌거나 내 갑상선은 이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