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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아영 Oct 21. 2024

[장편소설] 원더랜드와 초록색 꽃(5)

*


오후 다섯시 즈음이 되자 아저씨가 돌아왔다. 아주머니가 도착한 건 그보다 삼십분 정도 지난 후였다. 아저씨의 손에는 뭔가가 잔뜩 들려있었다.


"자, 오늘 선물을 좀 가져왔어.“


아저씨가 가져온 쇼핑백 안에는 고급스럽게 생긴 상자들이 가득했다.


"지난 추석에 직원들한테 주고 남은 것들이래. 버려야하는데 처리를 못한 채로 깜빡 잊었다고 해서 내가 가져왔지.“


아저씨는 자랑스레 웃으며 상자들을 하나 하나 꺼냈다. 스팸과 식용유, 참치 통조림들이 가득 들어있는 상자들. 또 다른 상자에는 고급스럽게 포장된 곶감들이 들어있었다. 곶감은 맑고 선명한 주황색이었다. 아저씨는 내가 곶감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상자를 열어 곶감을 하나 꺼내 내게 내밀었다.


"맛있어 보이지?"

"아… 감사합니다.“


먹고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저씨의 성의를 거절할 수 없어 곶감을 받아들었다. 나는 곶감의 표면을 계속 쳐다봤다. 유난히 밝고 선명한 색이었다.


"원래 곶감색이 이렇게 예뻐요? 애기때 먹었던 거에는 하얀색이 있었는데…."

"에이, 색소 입히는 거지. 전부."

"이걸 전부요?"

"그럼. 색소도 입히고 기계로 다 깎지. 모양도 예쁘게 만들려고. 이런건 공장 안에서 다 말리는 거야. 네가 먹었던 건 시골에서 마당이나 마루 위에 걸어놓고 말린 곶감이었지?."

"근데 색소를 먹어도 되는 거예요?"

"당연하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걸로 만드는 건데." 아저씨는 뭉툭한 손으로 양말을 벗어던졌다. "사실 맛은 그냥 그래. 자연적으로 말린 것보다는….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드물고 귀하니까.“


나는 잠시 곶감을 쳐다보다 한 입 베어물었다. 곶감에서는 떫은 단맛이 났다. 단맛은 생각처럼 강하지 않았고, 씹히는 질감이 꽤 질겼다. 곶감 덩어리들은 한참동안 입 안에서 맴돌다가 목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아빠, 이 칩들 볼 수 있어요?"

"칩?“


내가 남은 곶감을 입에 쑤셔 넣고 억지로 씹는 동안, 나무는 내가 아까전에 건네준 칩들을 살피고 있었다. 아저씨가 가까이오자 나무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칩들은 매우 작은 크기였다.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뒤로 빼고 나무의 손바닥을 살폈다.


"마이크로 칩이네."

"이거 컴퓨터로 볼 수 있어요?"

"리더기가 있어야돼."

"그럼 못 봐요? 리더기는 어디서 구하는데요?“


아저씨는 나무의 손바닥에서 칩 하나를 집어들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나무를 흘깃 쳐다봤다.


"아빠 친구가 가지고 있을거야. 이거 볼 수 있는 리더기. 리더기를 컴퓨터에다가 연결해서 보면 돼."

"그렇구나."

"이 칩이 뭔데?"

"아이가 가져온 거예요. …이걸 좀 살펴봐야해요.“


나는 왠지 아저씨의 눈치가 보여 아무 말 없이 나무의 옆에 가 서서 아저씨를 곁눈질했다. 아저씨 역시 나를 한번 무심하게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아저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아주머니는 커다란 수레에 짐을 담기 시작했다. 어제 봤던 인형탈과 인형옷이 있었다. 내가 아주머니를 가만히 보고 있자, 나무가 내게 말했다.


"연극 준비하러 가는 거야."

"나도 가도 돼?"

"가도 되지, 근데 오늘은 좀 쉬는게 낫지 않아?"

"혼자 있으면 좀 무서울 것 같아."

"그럼 같이 가자.“


그들은 전부 저녁도 먹지 않고 모든 걸 준비해서 소극장으로 향했다. 나는 말없이 그들을 쫓아갔다. 나무의 가족은 말이 없지만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연극이 끝나고, 그들은 어제와 다름 없이 땀에 젖은 얼굴로 다시 짐을 챙겨 소극장을 나섰다.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익숙하게 저녁 밥을 준비했다. 나무는 구석에서 무언가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그런 나무의 근처에 가서 나무를 힐끔 쳐다보더니,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어, 마이크로 SSF 칩인 거 같은데. 리더기 있어? 응, 아, 그래?“


아저씨는 알 수 없는 누군가와 복잡한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 전화를 했다. 아주머니는 밥을 준비하다 말고 전화를 하는 아저씨가 못마땅했는지 후라이팬에 담긴 요리에 집중하다가도 한번씩 아저씨를 노려봤다.


"이 녀석이 바빠서 원. 우리가 가야겠는데."

"어디에 계신데요?" 나무가 물었다.

"아빠가 일하는 공장에 있어.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야."

"그럼 같이 가서 봐요.“


나무의 말에 아주머니가 국자를 내려놓고 아빠와 나무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 눈빛은 매우 날카로웠다.


"어딜 데려가려고."

"…그래. 너희가 가기에는 좀, 위험한 곳이야. 맞아. 그… 기계도 많고 그러니까, 아저씨가 대신 가서 보고 올게. 아마 다른 디스크에 넣어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확실하진 않잖아요." 내가 말했다.

"옮겨올 수 없으면 아저씨가 휴대폰으로 촬영이라도 해오든지 하면…."

"가야돼요.“


나의 단호한 말투에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절대 안 된다는 눈빛을 보내던 아주머니도 잠시 누그러진 표정으로 나와 아저씨를 번갈아 봤다.


"제가 꼭 봐야만 하는 게 있어요. 제가 직접 확인해야 돼요. 그 칩에 들어있는 파일 형식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고, 그걸 옮겨올 수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제가 가야해요. 도와주세요, 아저씨."

내가 간절히 부탁하자 아저씨는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잠시 쳐다보다 아주머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런 아저씨의 시선을 따라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아주머니의 표정에서 경계심이 점점 더 풀리는 게 보였다.


"그럼 같이 갔다 와."

"저도 같이 갈게요.“


나무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아주머니는 나무를 잠시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저씨가 나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


나무와 나는 네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가게에서 출발했다. 아주머니는 나무에게 주소를 알려주며 주소를 바로 지도앱에 검색해줬다. 아저씨가 일하는 공장까지 가려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가장 빠른 길로 가도 40분은 걸리는 거리였다.


지하철을 타고 여러개의 역을 거쳐가는 동안 아저씨는 나무와 계속 메신저를 통해 연락했다.


"아저씨가 일하는 곳 말이야. 너는 안 가봤어?“

"응. 아빠도 웬만하면 못 오게 하고 엄마가 가는 걸 싫어하셔. 아빠가 거기서 일한 지 엄청 오래 됐는데도 가본 적 없어.“


아저씨는 나무에게 공장이 후미진 곳에 있으니 길을 못 찾겠으면 바로 연락하라고 메신저로 신신당부를 했다. 나무는 알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대답했지만, 아저씨는 결국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전화하라는 답을 보냈다.


우리가 타야할 버스는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도착했다. 출발한 버스의 창문 밖 풍경은 어색하고 생경했다. 생전 가본 적 없는 길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인적이 드문, 포장조차 거의 되지 않은 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도시의 흔적이 남은 건 우리가 탄 버스가 밟고 지나가는 도로가 유일했다. 정류장은 꽤 많았지만 버스에 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간중간 내리는 사람들도 얼마 없었기 때문에 버스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쭉 달렸다. 고요함에 한번씩 눈이 감겼지만 곧 우리가 내려야할 정류장의 이름이 안내 음성으로 들려왔다.


"오면서 멀미 안 했어?"

"멀미는 안 했어요. 졸리긴 했지만."

"그래? 매일 출근하는 직원들 중에 멀미약 먹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다니까.“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주변은 문을 닫은 공장들과 폐 건물로 가득했고, 텅빈 공터도 몇 군데 있었다.


"오래전에 공장들이 엄청 많았던 곳이지. 옛날에 산업 단지들이 있었던 곳이니까."

대낮이었는데도 왠지 분위기가 으스스했다.


공장 앞에 다다르자 깔끔하게 정돈된 도로가 보였고, 그 도로의 끝에는 거대하고 대단해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눈짓을 하고는 더욱 빠르게 앞서서 걸어갔다. 나무와 나는 그곳이 아저씨가 매일 출근하는 곳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아저씨가 재빠르게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입구에 카드를 가져다대자 문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휙 열렸다. 열리는 속도만큼 닫히는 속도도 빠를 것 같아 나무의 뒤를 따라 열린 입구의 틈을 빠르게 통과했다. 건물에서는 은은한 플라스틱의 냄새가 났다. 기분 나쁜 두통을 유발하는 냄새였다.


입구를 통과하고 몇 발자국 걷자마자 눈 앞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아저씨가 화살표가 아래로 향해있는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지하 10층?“


나무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아저씨를 향해 외쳤다. 아저씨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작게 웃고는 나무에게 대답했다.


"아빠가 일하는 곳이 지하 10층이야. 거기에 아빠가 얘기한 친구도 있어.“


'B10'이라고 적힌 버튼을 누르자 체감이 불가능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엘리베이터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단 몇 초만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이 엘리베이터는 마치 우주에서 떠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 긴 복도가 펼쳐졌다. 복도는 전체적으로 어두웠지만 대략 십미터 정도의 길이마다 조명이 들어와있어서 발걸음 정도는 충분히 분간할 수 있는 어두움이었다. 버스를 오랫동안 탔는데도 멀쩡했던 속이 겨우 몇 초간 엘리베이터에서 꽤 심하게 요동쳤는지 뒤늦게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가슴을 주먹으로 몇 번 치고는 침을 연이어 삼키며 아저씨를 뒤따라갔다. 아저씨는 얼마나 오랫동안 걸어 들어가야 하는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나무와 나도 굳이 그에 대해 묻지 않았다.


"어, 왔어?“


복도로 쭉 이어지던 길이 끝나고 불투명한 유리문이 하나 열리자 막막한 어둠으로 가득찬 커다란 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서 형체 없이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나무와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발을 헛디뎠다. 하마터면 넘어질뻔 했지만 아저씨가 나무의 팔뚝을 잡아챈 덕분에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 있었다.


"불 좀 켜봐!“


앞으로 걸어가려고 했지만 뭐가 자꾸만 몸에 턱 걸렸다. 묵직한 질감이 반복적으로 몸에 부딪히니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아저씨도 똑같은 걸 느끼고 있었는지 어둠 속 누군가에게 불을 키라는 말을 반복해서 외쳤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꽤 오랫동안 대답이 없었고, 우리는 선 자리에서 잠자코 기다렸다.


곧이어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불은 한번에 공간을 다 밝히지 못하고 멀리에 있는 곳부터 차례대로 하나하나 켜졌다. 그걸 보고 이곳이 엄청나게 큰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 나무가 비명을 질렀고 거의 동시에 나 역시 소리를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나무의 다리와 내 다리가 엉켜서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왜 그래?“


아저씨가 놀라 우리를 쳐다봤지만 곧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무를 쳐다보자 나무도 나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동시에 시선을 돌린 곳에는 마치 시체처럼 보이는 밀랍 인형이 천장의 줄에 걸린채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성인 남자와 똑같은 크기였다.


처음에는 정말 사람인 줄 알고, 사람이 죽어있는 것 같아서 놀라 뒤로 나가떨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그 인형은 나체였는데 피부의 촉감이 마치 진짜 사람의 것처럼 물렁하고 약간 거칠었다. 우리의 근처에 있던 조명들이 켜지자 그 인형과 비슷한 형태의 인형들이 일렬로 걸려있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전부 똑같은 인형들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다 다르게 생긴 인형들이었다.


"아빠 …이게 다 뭐예요?"

"어, 음… 인형 같은 거야.“


아저씨는 왠지 난감해보이는 얼굴로 말을 얼버무리고 우리를 잡아 끌었다. 아저씨를 따라서 인형 사이를 헤치고 나가자 작은 길이 있었다. 길이라기보다는 인형들이 걸려있는 사이로 만들어진 틈새에 가까웠다. 아마도 작업자들이 드나들기 위한 길인 것 같았다. 아저씨는 아주 빠른 속도로 앞으로 걸어갔다. 나무가 넘어질 것처럼 보폭을 벌리며 아저씨를 뒤쫓아갔다. 나는 그들을 쫓아가면서도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아까 부딪혔던 인형의 촉감이 피부에서 사라지지 않아, 공포감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쳐다보게 되었다.


"아이야, 얼른 와.“


나는 문득 멈춰 섰다. 무수히 걸려있는 줄 알았던 성인 남자 모양의 인형들 뒤로 여성의 형태를 한 인형들이 보였다. 여성 인형들은 셀 수 없을만큼 여러개의 열로 이어졌다.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인형들이 여성 인형이었다. 그 인형들 역시 나체인 채로 걸려있었는데, 전부 다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인형들은 전부 가슴의 크기가 달랐고 허리가 들어간 정도가 달랐으며, 키도 달랐다. 한 마디로 엄청나게 다양한 몸매의 인형들이 가득했다.


왜지? 그런 질문이 떠오르자 발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내가 계속 멈춰서있자 아저씨가 다가와 나를 끌고 갔다. 내 손목을 잡은 아저씨의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중학생 아이의 손목을 잡는 것 치고 너무 강한 힘이었다.


그 공간을 겨우 빠져나가자 레일과 기계들이 가득한 공간이 이어졌다. 본 것중에 가장 거대한 레일이 달린 기계의 가장자리 쪽에서 아까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목소리에 점점 가까워지자 작은 간이 사무실이 보였다. 가벽을 세워서 대충 공간을 나눠 놓은 곳에 책상이 몇 개 있었고, 가장 중간 자리에서 목소리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아저씨는 그를 보고 손을 들며 살짝 웃었다.


"네가 나무니?“


그는 나를 향해 물었다. 눈을 겨우 덮을 정도의 작은 안경을 끼고, 양 팔에 두툼한 토시를 한 나이 든 남자였다. 눈썹이 짙고 표정이 딱딱해서 조금 무섭게 느껴지는 인상이었지만 말투는 부드러운 편이었다. 내가 고개를 젓자마자 아저씨가 나무를 가리키며 웃었다.


"얘가 나무야. 얘는 나무 친구.“


나는 괜히 짧은 머리칼의 끝을 만지작거렸다. 내 머리카락이 너무 짧아서 그런가. 아니면 나무와 내가 좀 닮은 구석이 있나. 나무를 슬쩍 쳐다봤다. 어딘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저씨와 그는 한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무와 나는 이곳의 분위기에 괜히 움츠러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주변을 계속 살피기만 했다. 어느 순간 나무가 내 손목의 옷깃을 꼭 잡았다.


"그래서 그 칩이 어디 있는데?"

"아이야, 줘봐.“


나는 나무가 빌려준 작은 크로스백에서 칩 세 개를 꺼냈다. 손가락 표면으로 몇 번 문지른 칩을 아저씨에게 건넸다. 그는 칩을 받아들기도 전에 아저씨의 손바닥을 한 번 슥 보고는 책상 및 서랍장을 뒤적거렸다.


"마이크로 SSF칩이구만. 그나저나 이런 칩은 비싸서 애들이 쉽게 구할 수가 없을 텐데. 어디서 난 거냐?“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나무를 쳐다봤다. 내가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자 나무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훔친거 아니니까 걱정 말어.“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자 그가 잠시 의심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힐끗 쳐다보더니 서랍장에서 꺼낸 무언가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긴 선이 컴퓨터의 복잡한 여러 개의 구멍 중 하나에 꽂혀있었다. 그 끝에는 역시 여러 개의 작고 얇은 구멍이 파인 것이 있었다.


아저씨가 말한 칩 리더기인 모양이었다. 아저씨의 친구는 두툼한 손가락으로 잘못하면 금방 부서질 것처럼 작은 칩을 리더기의 구멍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몇 초 후, 컴퓨터에서 알림음이 들리며 작은 창이 화면의 중앙에 켜졌다. '메모리칩이 연결되었습니다.' 아저씨의 친구가 확인 버튼을 누르자 새로운 창이 열리며 몇 개의 폴더들이 나열되어있는 게 보였다.


나는 자연스레 그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컴퓨터 화면을 자세히 쳐다봤다. 폴더의 개수는 여러 개였지만 알아볼 수 있는 말로 적힌 폴더는 단 하나였다.


"하나 제외하고 나머지는 시스템 폴더인 거 같은데.“


나무 아저씨의 친구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그와 눈을 마주치며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앉으라는 듯 고개를 움직였다. 나는 꾸벅 인사하고 의자에 앉았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폴더. 그 폴더의 이름은 엄마의 이름이었다. 집에서 나오기 전, 아빠의 서재의 컴퓨터에서 봤던 것이 떠오르며 기분 나쁜 익숙함이 느껴졌다. 곧이어 엄마의 이름 세 글자가 적힌 곳으로 마우스 커서를 가져갔다. 터치패드에 올라가있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폴더를 더블 클릭하자 두 개의 파일이 보였다. 하나는 PDF 파일, 다른 하나는 처음 보는 확장자 파일이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먼저 PDF 파일을 열었다. 파일은 백 장이 넘는 페이지로 채워져있었다. 터치패드를 만지작거리자 빠르게 페이지가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초반의 몇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내 손이 멈춰선 곳에는 엄마의 얼굴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사진이나 동영상이 아니었다. 일종의 3D 설계도였다. 단지 얼굴 뿐만이 아니라 신체에 관한 설계도도 있었다. 페이지 속 엄마는 머리카락이 없었고 나체였다. 그러나 그것이 불쾌하거나 이상해보이진 않았다. 엄마의 모습은 지나치게 정교한 신호들로 그려져 있었다. 그 모습 속에는 인간적이라고 느껴질만한 비대칭이나 자연스러운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화면을 터치해 페이지를 쭉 아래로 내린 후 화면에 보인 엄마의 모습은 한결 더 나았다. 없던 머리카락이 생겨 더 익숙한 모습이었고, 옷도 내가 자주봤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위쪽으로 손가락을 올리자 조금 더 젋어진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각각의 페이지는 엄마의 성장 과정과 노화의 과정을 전부 담고 있었다. 페이지를 아래쪽으로 쉼없이 넘기자 내가 전혀 보지 못했던 엄마의 아주 나이 든 모습이 설계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나는 주름살이 가득하고 머리가 하얗게 센 엄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거 칩 동시에 여러 개 꽂아볼 수 있나요?"

"두 개까지는 가능해.“


모두들 옆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다들 내게 궁금한 게 많아보였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 역시 그들에게 아무런 설명을 해줄 수가 없었다. 나조차도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나는 나무 아저씨의 친구가 알려준 또 다른 접합부에 다른 칩을 꽂았다. 컴퓨터가 칩을 인식하자 엄마에 관한 칩을 열었을때와 거의 동일해보이는 폴더가 화면에 떴다. 역시 내가 알아볼 수 있는 폴더는 단 하나였다. 아빠의 이름 세글자로 만들어진 폴더였다. 그걸 한참 들여다보다가 손가락으로 누르자 엄마의 것과 동일한 파일들이 보였다.


모든 것들이 이상하리만치 유사했다. 아니, 똑같았다. 강 우 석. 차 지 혜. 아빠의 서재에서 봤던 것과도 똑같은 유형의 것들이었다.


특정 파일에는 내가 모르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내가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모습. 엄마와 아빠가 어렸을 때. 엄마와 아빠가 설계되기 전. 엄마와 아빠가 작은 칩에 불과했을 때.


엉뚱한 걸 가리킨다고 생각했던 가장 첫 페이지에 그려진 의문스러운 작은 기계는 엄마와 아빠의 태초의 얼굴이었다.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저렇게 태어났다.


그건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되고 만들어진 인공물이었다. 그때서야 아빠를 칼로 찔렀을 때의 감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손가락 끝의 작은 결들 사이로 칼을 쥐고 있던 촉감. 어깨와 쇄골뼈, 그리고 얼굴의 미세한 솜털의 몇몇 부위에 튀었던 초록색 피의 소름돋았던 질감이 느껴졌다.


온 몸을 전율하며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날로부터 나는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 없었다. 두려움 때문에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머리를 양손으로 감싼 나의 어깨에 나무 아저씨 친구의 손이 올라와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측은지심으로 가득해보였다. 나는 마치 전기 코드가 뽑힌 기계처럼 머릿속이 한순간에 멈춰버려 그대로 굳은 상태였다. 그러나 차례차례, 나를 바라보는 나무와 나무 아저씨를 바라보자 현실감이 빠른 속도로 머릿속을 지배했다.


알 수 없는 확장자 파일을 열자 검은 화면이 열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이 새까만 화면이었지만 곧 커서가 깜빡이며 셀 수 없는 양의 글자들이 빠른 속도로 입력되었다. 글자가 화면을 가득 채우기까지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건 해석하려면 프로그램이 따로 있어야 해."

"그 프로그램은 어디 있어요?"

"잠깐만, 이 피씨에는 없는데, 설치는 할 수 있거든.“


나무 아저씨의 친구는 나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곧바로 자리에서 잠시 비켜달라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확인하지 못한 칩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만지작거렸다.


이 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이것이 나에 관한 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 칩의 모서리 부분이 연약한 손바닥의 살을 이따금씩 자극했다. 문득 속이 역했다. 온 몸에 가득 튀었던 초록색 액체의 낯선 냄새가 떠올랐다.


"프로그램 지금 설치중.“


나무 아저씨의 친구는 다시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는 초조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며 허공을 바라봤다. 나무는 여태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처음으로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나무가 잡은 내 손에는 칩이 들려있었다. 나무의 손가락이 내 손바닥을 파고 들면서 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무와 나는 놀라며 곧장 바닥으로 고개를 숙이고 주위를 둘러봤다. 어두운 패턴의 타일 바닥이라서 칩의 모양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어, 저기.“


지이잉. 나무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자마자 꽤 큰 진동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나무 아저씨의 주머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우리는 전부 예상치 못한 소리에 깜짝 놀라 서로만을 쳐다보다가, 나무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자 그때서야 안도했다. 나무 아저씨는 전화를 받았고 프로그램은 반 정도 다운로드가 된 상태였다.


"경찰서요?“


나무 아저씨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단어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러나 나무 아저씨는 그런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귀에 휴대폰을 더 힘껏 밀착했다.


"네, …네. 지금 바로 가야하는 거죠? 네네. 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우리는 나무 아저씨가 무언가를 먼저 말해주길 기다렸지만 아저씨는 거의 일분이 넘는 시간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멈춰있었다. 나무가 참지 못하고 아저씨에게 다가가 아저씨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아저씨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나무를 쳐다봤다.


"엄마가 경찰서에 끌려갔단다."

"뭐?“


나무와 내가 놀라기도 전에 나무 아저씨의 친구가 큰소리로 대꾸하며 나무 아저씨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뭐 때문에 경찰서에 끌려가? 니네 혹시 도둑질하면서 사냐?"

"그런거 아니야."

"그럼 뭔데!"

"…우리 집. 아니, 우리 사는 곳 말이야. …불법으로 거주했다고.“


나무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몸을 한 번 떨었다. 그런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럼 지금 당장 가야지!"

"응, 응. 맞아.“


나무 아저씨와 친구는 급하게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 상황이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프로그램을 다운받고 있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화면에 떠 있는 다운로드 퍼센트를 가리키는 바가 거의 끝까지 차올라있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튀어나왔고, 모두가 날 바라봤다.


"이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고 가면 안 될까요?“


나는 방금 바닥에서 집어올린 칩을 손가락으로 들어올려보였다. 날 보더니 나무 아저씨와 그의 친구가 서로 눈빛을 나누고 다시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았다.


"그거 하나 보는 건 얼마 안 걸리니까.“


나무 아저씨가 나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에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무 아저씨의 친구는 한숨을 쉬며 말없이 컴퓨터에서 장치를 해제시키고 꽂혀있던 두 개의 칩 중 하나를 뽑아냈다. 나는 그의 손짓을 가만히 관찰하다가 필요할 것 같은 순간에 바로 들고있던 칩을 건넸다. 어쩌면 이 칩이 가장 중요한 정보를 담고있는 칩인지도 모른다.


숨이 조금씩 가빠졌다.


나무 아저씨 친구의 굳은살 낀 두꺼운 손 안에서 칩은 자꾸만 힘없이 빠져나갔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에 힘을 줬고 그대로 조심스럽게 리더기의 접합부에 칩을 가져갔다.

"거기 누구야?“


순간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낯선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공간으로 퍼졌다.


나무 아저씨의 친구는 재빠르게 나와 나무의 어깨를 아래로 밀었고, 우리는 그대로 책상 밑으로 주저앉았다. 어깨가 얼얼할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그러나 그 손길에서 다급함이 느껴져서 나무와 나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잔업중입니다.“


책상 쪽에서 보이는 나무 아저씨가 어딘가를 쳐다보며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침을 삼켰고, 나무와도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곧 작은 전자음들이 연이어 들렸다.


"오늘 잔업은 없는 걸로 나오는데?“

"아… 그게 대리님이 개인적으로 뭘 좀 시키셨어요. 그…자, 작업 보고서를 날짜별로 나눠야하는데 한 파일에 구분없이 적어두셨다고 하셔서….“


스읍-하는 낯선 사람의 못미더운 숨소리가 들렸다. 나무와 나는 그때서야 서로를 바라봤다.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 들킬까 두려워 제멋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뭐, 그래. 근데 앞으로는 그런 일 있으면 얘기하고 남으라고."

"네, 알겠습니다."

"문단속 잘 하고."

"네.“


나무 아저씨와 친구가 동시에 대답했다.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철문 바깥에서 새어 나오는 발걸음 소리는 빠르게 멀어졌다. 발걸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자 나무 아저씨의 친구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여기서 빨리 나가야돼."

"왜요?"

"경비원인데, 외부인이 들어와있는 걸 알면 큰일나.“


나무 아저씨와 그의 친구는 다시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나마 저 양반이 씨씨티비를 웬만하면 안 보는 양반이라 니네도 데려올 수 있었던 거다.“


바쁘게 짐을 챙기는 그들을 보고 천장에 시선을 돌렸다. 천장에는 일정한 구역마다 씨씨티비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마치 벌레 때가 일렬로 서서 붙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 한 번씩 검은 카메라의 단면에 빨간 불빛이 눈 모양으로 켜질 때면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그럼 이건 어떡하죠?“


나는 손으로 책상 위 컴퓨터를 가리켰다. 다급한 마음에 목소리가 떨리자 나무 아저씨의 친구가 급하게 리더기와 칩을 연결 해제한 후 케이스에 담았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있을 거야. 이걸 빌려줄 테니까.“


그는 케이스를 내게 한 번 보여주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어느새 짐을 다 챙긴 나무 아저씨와 아저씨의 친구는 우리 손을 붙잡고 빠른 걸음으로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씨씨티비가 많은데 왜 씨씨티비를 안 보는 거예요?“


나무가 묻자 나무 아저씨가 대답했다.


"이렇게 많으니까 안 보는 거지. 아니, 사실 못 보는 거야."

"못 본다고요?"

"그래. 구역마다 몇 십개의 씨씨티비들이 24시간 쉬지않고 모든 공간을 촬영하거든. 여기에 사각지대는 없어. 웃긴 건 뭔 줄 알아? 저 양반 눈이 사각지대야. 봐야할 화면이 너무 많으니까 못 보는 거지. 사람의 눈으로 이걸 다 어떻게 보겠어.“


그러고보니 빠져나가는 공간마다 천장에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씨씨티비가 달려있었다. 그 카메라의 어둑한 렌즈들이 매 순간 우리를 촬영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나무 아저씨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걱정마. 용량 문제 때문에 씨씨티비 촬영본은 이틀이면 자동으로 삭제돼. 저 양반이 이틀 안에 다시 녹화본들을 하나 하나 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

"너무 무서울 것 같아요."

"뭐가?"

"씨씨티비가 저렇게 많이 달려있는 곳에서 하루종일 일해야한다면요.“


우리는 어둑한 비상 계단을 한참 걸어올라 공장 건물을 빠져나왔다. 숨이 막혀 쓰러질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1층을 가리키는 층 표시등이 보였고, 나는 겨우 그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었다. 바깥은 공장에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더 어둑했다. 우리는 발걸음 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걸어갔다. 나무 아저씨와 친구가 우리를 끌고간 곳은 커다란 차가 주차된 공터였다. 나무 아저씨의 친구는 자신의 차라며 뒷문과 앞문을 전부 열어주고 운전석에 올랐다. 나무 아저씨는 조수석에 탔고, 나무와 나는 뒷좌석에 올라갔다.


"생각해보면 숨 막히는 일이긴 해. 우리야 이제 익숙해져서 조금 무뎌졌지만."

나무 아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자 나무 아저씨의 친구가 앞좌석의 거울을 통해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뎌지긴. 난 아직도 업무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온몸의 근육이 다 뭉쳐있어. 이번 주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씨씨티비를 감시하는 로봇이 고장이 나서 저 양반이 저러고 지키고 있는거야. 평소에는 로봇이 아주 작은 티끌까지 잡아내거든. 우리는 눈동자만 겨우 굴릴 수 있어.“


천장에 달린 수많은 씨씨티비들이 다시 생각났다. 마치 사람의 눈 같은, 아니, 결코 사람의 눈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의 눈과 아주 비슷하게 만들어져 불쾌감을 주는 기계의 눈이 매 시간 나를 지켜보고 있는 상상. 그것만으로도 멀미가 나고 두통이 생기는 것 같았다.


"니네 아빠는 아마 더 힘들 거야. 저 소름 돋는 인형들을 하루종일 만지작거리고 있어야 하니.“


나무 아저씨 친구의 말을 듣고 나무 아저씨가 쉿, 하며 그의 어깨를 쳤다. 운전대를 잡은 아저씨의 친구는 몸을 휘청하면서도 눈 앞의 도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저씨는 무슨 일을 하세요?"

"나는…."

"우리 아빠는 아까 그 인형들의 피부를 만드는 일을 해."

"…맞아. 내가 전부 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일은 기계가 하긴 해도, 내가 제일 중요한 작업을 하거든.“


아저씨는 잠시동안 피부를 만드는 작업에 대해서 설명했다. 마치 알려줘서는 안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중요한 단어나 문장을 몇 개 빼놓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저씨의 그런 성의없는 설명에도 모든 걸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기계에서 일차적으로 살의 윤곽을 입혀 나오면 아저씨는 거기에 핏줄을 하나하나 집어넣는 섬세한 작업을 한다. 그리고 다시 기계에 인형들을 집어넣으면 그 위에 얇은 살이 덧입혀지고 표면에 미세한 광이나 모공, 털을 넣는 작업까지 한다. 그렇게 완성된 인형들이 공장 안에 모두 쌓여있다. 똑같은 눈동자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전부 다른 생김새의 것들이. 아주 빼곡하게.


눈을 감았다. 아저씨 친구의 차는 아주 오래된 차였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기름의 매캐한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곧이어 차 바퀴에 자갈들이 부딪히는 게 느껴졌고, 그 울렁거리는 진동 탓에 나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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