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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아영 Sep 12. 2023

우리,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것

영화 <아들>, 다르덴 형제

영화 속 불안한 눈동자를 가진 남자.
누군가의 이름을 알아보고는
시종일관 가만히 있질 못하고 어딘가로 걸어간다.
걸음걸이는 거칠고, 시선은 자꾸만 어디를 향해있다. 

관객들은 이 남자가 누군지, 왜 저렇게 불안해하는 건지 알 수 없다. 허리에 고정된 복대와 능숙한 솜씨가 그가 목공업자임을 알려줄 뿐이다.


 

영화의 초반부,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들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특별한 장치나 촬영 기법을 통해 남자에 대한 정보를 극대화해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관에 들어서자마자(혹은 영화를 재생시키자마자) 무방비 상태에서 남자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남자의 행동을 끊임없이 비춰주는 카메라의 시선에도 남자에 대한 정보를 온전히 얻어내기가 힘들다. 


그러나 다시, 앞으로 돌아가면 남자의 사소한 행동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올리비에. 올리비에는 한 목공소에서 소년들에게 목공업을 가르치는 듯하다. 그가 불안한 눈빛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 뭉치 때문인 것 같다. 그는 몇 번이나 종이에 쓰인 무언가를 읽어본다. 맞은편에 서 있는 여자가 “그 애를 맡아볼래요?”라고 묻자, 올리비에는 고개를 젓는다.



그 뒤의 장면에서 올리비에는 누군가를 훔쳐보고 있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얼굴은 아까 봤던 맞은편의 여자이지만,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손이 둘이나 더 있다. 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펜을 쥐고 무언가를 적고 있는 작은 주먹뿐. 


역시 여자를 훔쳐보는 걸까, 생각하게 될 때쯤, 카메라는 그 작은 주먹을 꽤 오래,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잡아낸다. 관객들이 그 시선에 함께 동요하게 되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올리비에는 빠르게 어딘가로 도망친다. 그리고 그의 시선의 끝에는 역시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어떤 소년이 있다. 어떤 소년. 이때서야 관객들은 올리비에가 훔쳐보던 이가 어떤 소년임을 알아챈다. 



종이에서 본 그 이름은 그 소년의 이름인 걸까.

올리비에의 투박하고 퉁명스러운 행동과 말투와 상반되는 흔들리는 눈빛은 그를 자꾸만 관찰하게 만든다. 카메라의 시선과 연출의 방식이 다소 지루하고 거칠어 관객들을 단번에 사로잡기 힘든 영화임에도 영화를 계속 보게 되는 건 궁금증 때문이다. 나는 이 남자가, 올리비에가 궁금해진다. 무슨 이유 때문에 저런 불안한 얼굴로 내내 눈치를 보는 건지 알고 싶어 진다.


어떤 소년은 곧 정체를 드러낸다. 살짝 풀린 눈에 미숙한 행동과 말투를 가진 소년은 함께 일을 배우는 다른 소년들보다도 훨씬 어리숙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올리비에는 유독 그 소년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러나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어른들이, 특히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보여야 할 애정이나 측은함이 올리비에의 눈에는 없다. 그 눈에 담긴 건 뜻밖에도 의심과 꽉 눌린 분노, 그걸 넘어선 혐오감이다. 혐오감. 아마도 올리비에의 눈빛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소년은 아직 어려서인지 올리비에의 날이 선 혐오감을 눈치채지 못하지만
관객들은 그 감정을 먼저 눈치챈다. 


후반부, 벌목원으로 소년을 데려가는 올리비에의 행동에서 혐오감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조수석에서 잠에 든 소년을 반복해서 힐끗거리며 쳐다보던 올리비에는 일부러 갑작스레 브레이크를 밟아 소년을 잠에서 깨운다. 


소년은 무방비 상태에서 앞쪽으로 몸이 쏠려 괴로워하며 잠에서 깬다. 올리비에는 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소년을 보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함께 밥을 먹으러 들어간 곳에서 올리비에는 소년에게 음식을 사주지 않는다. “함께 계산하시나요?”라는 직원의 질문에 “아니요.”하고 먼저 돌아서는 올리비에의 행동은 소년에 대한 적대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네가 죽인 그 아이가 바로 내 아들이다.


차 안에서 주고받았던, 소년이 저질렀던 범죄에 대한 불편한 대화는 벌목원에서 끝맺어진다. 올리비에는 소년과 이미 꽤 가까운 사이가 되고 나서 소년에게 고백한다. 겁을 먹은 소년은 쌓인 목재들 사이로 달려간다. 올리비에는 해치지 않겠다고, 돌아오라고 하지만 소년은 계속해서 도망친다. 그러나 결코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일정한 경계 안에서 맴도는 소년의 모습은 혐오스러우면서도 측은하다. 


올리비에와 마주칠 때마다 그는 멀리 도망치려고 하지만, 결국 다시 올리비에와 마주치고 만다. 그것은 소년의 운명이다. 범죄자의 경력을 가진 데다 아직 턱없이 어린 소년은 그 어디에서도 온전히 도망칠 수가 없다. 게다가 소년은 살면서 자꾸만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주해야 하는 건 올리비에 쪽도 마찬가지다. 그는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 상처인 데다가 우연을 통해 다가온 가해자의 얼굴은 올리비에에게 끔찍하도록 잔인하다. 게다가 그 얼굴이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전혀 모르는, 사악하기 이전에 순수한, 아니, 너무나도 순수해서 사악한 얼굴일 때 올리비에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처량한 술래잡기를 보고 나면 지나쳐 왔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소년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어 하면서도 그를 자꾸만 밀어내는 올리비에의 모순된 행동. 눈빛에 명백한 혐오감을 드러내면서도 소년을 도와주겠다고 하며 소년의 곁에 머무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소년은 어떤가. 소년에 대해 되돌아보면, 마음이 무방비 상태로 무참해진다. 죄를 저질렀지만 그 책임을 묻기 힘들 정도로 어린 나이인 데다가 누군가가 돌봐주고 가르쳐줄 환경이 없는 소년은 홀로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다. 올리비에의 혐오감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그의 미숙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년에게 동정심이 천천히 쌓아 올려질 때쯤, 그는 단번에 그 마음을 배반한다. 벌목원으로 가는 차량에서 올리비에에게 “그것 때문에 5년이나 감옥에서 썩었다”라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걸 후회한다고 말하는 소년의 얼굴은 너무나도 잔인하다. 올리비에가 혹시나 소년을 용서하고 그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무너뜨리는 순간이다.



영화의 마지막, 진흙 투성이가 된 올리비에와 소년. 소년은 올리비에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느끼지만 끝내 올리비에의 곁으로 돌아온다. 올리비에는 소년이 무얼 할지 몰라 불안한 눈빛으로 소년을 관찰한다. 머뭇거리며 다가온 소년은 목재에 손을 올린다. 그리고 올리비에와 소년은 말없이 함께 목재를 옮긴다. 방금의 일이 없었던 일인 것처럼 둘은 조용히 다시 사제지간으로 되돌아간다.


올리비에는 소년을 용서한 걸까? 결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소년은 올리비에에게 속죄하는 걸까? 이것도 결코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소년을 혐오하면서도 끝까지 시선을 놓지 못하는 올리비에의 모습과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지만 올리비에에게 되돌아온 소년의 모습이다.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그들의 의지를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이자 범죄자이기 전에 자신의 아들과도 같은 미숙함을 가진 어린 소년을 방치할 수 없는 올리비에의 마음. 자신이 죽인 아이의 아버지를 만났지만 그에게서 기술을 배워야만 살아갈 수 있는 소년의 마음. 그들의 이런 마음은 별 수 없이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그들의 마음을 ‘삶에 대한 의지’라고 해석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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