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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진 Jan 19. 2023

조합원의 생각을 모으기 위한 워크숍 실행하기

희년은행 조합원 모임 준비에서 실행까지(2)

1편 목적과 조건을 고려한 워크숍 설계에서 3가지 지점을 강조했습니다. 


1. 친밀감과 유대가 형성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2. 함께하는 활동이 시각적으로 확인되기 

3. 아이디어에서 끝나지 않을 방법을 생각해 보기 


이번 편에서는 이런 강조점을 바탕으로 기획한 워크숍의 내용과 실행 결과에 대한 간단한 리뷰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1. Check In!


체크인은 워크숍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외부에서 하던 활동이나 생각에서 벗어나서 지금 여기의 시간, 현장, 사람에 집중하기 위해 워밍업을 하는 활동입니다. 진행방법은 간단합니다. 


A. 모든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원형으로 빙 둘러섭니다. 이때 간격은 너무 벌어지지 않게 최대한 좁혀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도록 합니다. 
B. 진행자가 준비한 질문을 바탕으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합니다. 질문은 이 자리에 참석한 자신의 상태를 잠시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을 준비하면 좋습니다. 저는 주로 자신을 무엇과 비유할 수 있는 질문들을 준비하곤 하는데요. "오늘의 기분을 날씨에 비유" 한다거나 "오늘 나의 상태를 어떤 동물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C. 질문을 공개하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 소개를 시작합니다. 이때 한 사람이 너무 길게 말을 이어가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자신의 이름과 질문에 대한 대답, 그 외 짧은 자기 이야기를 하되 이 시간이 최대 1분을 넘어가지 않도록 합니다. 
D. 한 사람이 소개를 끝내면 'check in'이라고 말하고 순서를 다음 사람에게 넘깁니다. 규모가 클 경우 마이크를 사용하면 마이크를 돌려도 되고 혹은 작은 아이템들을 이용해서 다음 사람에게 건네 줌으로써 순서를 넘겨준다는 상징으로 활용하셔도 좋습니다. 

이번 워크숍에서 사용한 체크인 장표 (동물 이미지 출처는 Pixa bay)


제가 생각하는 체크인 활동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워크숍은 참여자 간의 협력과 협력을 통한 창의적 활동이 중심이 됩니다. 바로 주제로 뛰어드는 것보다 이렇게 소소한 질문을 통해서 생각을 전환해 보고 모두 앞에서 쉽게 입을 떼어 이야기하는 활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 워크숍 진행자의 입장에서 참여자들의 마음가짐, 현재 상태, 성향 등을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짧은 단서들을 통해서도 어떤 성향들을 체크해 볼 수 있다면 진행에 큰 도움이 됩니다. 


- 정시에 시작하기 좋은 활동입니다! 워크숍을 소개하고 진행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우선 모인 사람들이 원형으로 서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고 늦게 오는 사람들은 오는 대로 원에 합류해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30명 정도 참여하는 체크인은 20분 정도 걸립니다. 그 정도 시간이면 모두가 모여 워크숍의 논의 내용에 대한 소개를 모두 함께 들으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희년은행 워크숍에 참석해 참여자들을 기다리다 보니 대부분의 참석자가 남성들인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30여 명 중에 25명 이상이 남성인 남초 워크숍을 진행해 본 경험은 저도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이런 워크숍 자리 나 자기소개 자리를 남성참여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어서 약간 긴장을 했는데요. 체크인을 진행하면서 이러한 걱정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사실 위 장표의 사례들은 다른 곳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비유들인데 이곳에서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들어보지 못한 창의적인 비유가 쏟아졌습니다. 


"운전자와 마주친 고라니 같은 심정"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달팽이"
"함께 온 사람을 지켜주는 캥거루의 마음"


이런 자리가 운영되면 많은 분들이 워크숍 참여에 대한 부담이나 어색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런 마음들을 유쾌하게 풀어 냄으로써 다른 사람도 같은 마음이구나, 나만 어색한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고 공감하면서 서서히 마음도 풀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 로우 테크 소셜 네트워크


로우 테크 소셜 네트워크는 함께 모인 사람들 간의 공통점을 찾으면서 자신을 소개하고 이 관계를 시각화해보는 활동입니다. 종이와 펜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만드는 소셜 네트워크 지도이기에 '로우-테크'라는 말을 붙입니다. 자기소개를 위해 명함을 만들거나 쓰리-키워드처럼 자기를 나타내는 키워드를 적어서 테이블 별로 소개하고, 혹은 돌아다니며 인사하고 소개하는 활동은 많이 경험해 보셨을 텐데요. 이 활동은 거기에 더해서 만난 사람과의 인연을 시각화하여 표현함으로써 참여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상호 연결성에 대한 시각적 효과도 얻을 수 있는 활동입니다. 


A. 포스트잇에 네임펜으로 자신을 닮은 아바타 (인물화도 좋고, 상징, 동물 등으로 표현해도 괜찮습니다.)를 그리고 그 밑에 자신을 소개할 키워드를 적게 합니다. (2-3개 정도) 
B. 2장에 포스트잇에 같은 내용을 그리고 적은 후 한 장은 미리 준비된 벽(전지를 붙여놓습니다) 위에 붙이고, 한 장은 가지고 있습니다. 
C. 진행자에 안내에 따라 포스트잇을 들고 다니면서 만난 사람과 자신을 소개합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공통점을 찾으면 전지가 붙은 벽에 가서 내 아바타와 상대의 아바타를 찾아 연결하고 그 위에 공통점을 적습니다. 
D.  진행자가 멈출 때까지 사람들과 인사를 계속 진행합니다.(약 10-15분 정도) 소개를 종료하고 벽에 만들어진 서로의 네트워크를 확인합니다. 진행자는 네트워크에 쓰인 공통점 중에 특이하거나 재밌는 내용을 짚어주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혹은 정말 소개하고 싶은 우리의 공통점 같은 것을 스스로 발표하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이번 워크숍에서 만든 소셜 네트워크 지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활동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 앞으로 진행할 워크숍은 펜을 들고 쓰고, 그리는 활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격적인 논의에서 바로 이런 활동을 하게 하면 펜을 아예 손에 잡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먼저 모두가 참여해 진행하는 이 활동을 통해서 포스트잇을 집고, 펜을 잡고, 그리고 쓰는 활동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시각화의 장점을 확인합니다 :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는 작업이 지닌 장점을 체험합니다. 인사만 하고 끝났다면 날아가버렸을 우리의 관계가 시각적으로 펼쳐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앞으로의 논의도 이렇게 쓰고 남기는 과정을 통해서 더 풍성해질 것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재밌습니다 : 멀리 떨어진 서로의 아바타를 연결하면서 일부러 꾸불꾸불한 선을 긋는다던지, 서로의 장점을 간단히 소개할 키워드를 찾으면서 고민한다던지 하는 과정들 자체가 단순한 자기소개 시간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워크숍의 분위기와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요?


예외는 없습니다 : 막상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벌써 부담을 가지고, 뒤로 빠지려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모두의 참여를 전제한 워크숍의 원칙을 학습하기 위해서라도 수준을 낮추더라도 참여 안 하는 사람은 없도록 합니다. 사람그림이 부담스러우면 앞에 놓인 컵을 그려도 됩니다. 


한 사람과 너무 오래 소개하고 머무르지 않도록 조율합니다 :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는데 사회문제를 토론하는 메이트와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한 사람과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은 활동의 취지와는 맞지 않고 인사하는 활동의 적체가 생기기도 하므로 적절하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계속 독려하고 필요하다면 종소리 같은 것으로 신호를 주기도 합니다. 


꼭 회고의 시간을 가집니다 : 서로 소개하고 만들어진 그림을 보고 와 이렇게 되었네. 하고 끝내지 않습니다. 진행자는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며 참여한 사람들과 그 내용을 살펴보는 활동을 진행합니다. 궁금한 것은 묻기도 하고 발표도 유도하면서 작업물이 가진 의미를 참여자들이 재 확인해 갈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여기까지 진행하자 초반의 어색함도 많이 사라지고, 참여자들 간에 대화의 데시벨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체크인과 로우테크 소셜 네트워크까지 진행했을 때 5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정해진 워크숍이 2시간이니 서로 인사하고 몸 푸는데만 50분을 사용하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대화의 활동은 양만큼 질이 중요합니다. 짧게 이야기하더라도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과 상황에 던져지듯 대화에 밀어 넣어지는 것은 다릅니다. 특히 서로 낯선 상대인 경우, 전문가 집단에서 FGI나 연구등의 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일수록 흔히 '아이스 브레이킹'이라고 말하는 활동의 중요성이 높습니다. (사실 모두에게 중요한데.. 전문가 집단에서는 이런 활동을 하면 저 깊은 곳에서부터 거부감을 표현하여서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그리고 50분이 지난 시점에서 오늘 이야기의 본론이 이야기되었습니다. 희년은행의 김재광 센터장이 오늘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며 본격적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으면 좋겠는가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저도 희년은행이 단순이 돈이 있어서 운영되는 단체가 아니라 조합원이라는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단체라는 것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5분 간의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워크숍에서 쉬는 시간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어떤 타이밍에 쉬게 할지, 얼마나 쉴지, 쉬지 않고 쭉 진행해야 할 때 (쉬는 것은 알아서 쉬어도 된다고 하고)는 언제인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날은 원래 2시간이 빡빡하게 진행되어야 해서 쉬지 않고 쭉 진행하려 했지만 앞의 아이스브레이킹의 시간이 좀 길기도 했고, 이후의 논의 시간과는 템포가 달라지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서 짧더라도 5분의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3. 테이블 논의


이 워크숍은 희년은행의 청년조합원들이 보다 주도적으로 조직의 활동에 참여하고 23년에 해볼 수 있는 새로운 활동 아이템을 찾아보기 위한 자리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바로 아이데이션을 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3년 조합원들이 스스로 해볼 수 있는 활동 아이디어 내보기"라고 하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활동의 아이디어를 실행해야 하는 주체 역시 조합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생각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조합원으로서 느껴왔던 필요, 자신의 욕구와 결합된 생각들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대화의 질문을 3가지로 구성해서 흐름대로 이야기하도록 제안했습니다. 


 

포스트잇 뒤에 가려진 전지에는 배 모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희년은행을 '배'에 비유하고 함께 타고 있는 우리가 바라는 바를 이루어 가기 위해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생각들을 위 그림과 같이 세 가지로 제시했습니다. 우선 나는 어떻게 조합원이 되었는가를 생각하면서 그 처음의 동기와 기대를 안고 참여한 조합활동에서 느낀 아쉬움을 표현해 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쉬움을 해소해 보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이나 활동을 제안하는 흐름으로 이야기를 진행했습니다. 


흐름은 그렇게 짜보았지만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야기를 3가지 카테고리로 딱 잘라 이야기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아쉬움이 바로 기대이기도 하고 기대가 하고 싶은 일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일단은 말하기 전에 모두가 3가지 질문에 대한 포스트잇을 쓰고 붙인 후(침묵하며 생각하고 쓰는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 보고 쪼개서 생각도 해보면서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이날 논의는 테이블 별로 전문적인 퍼실리테이터가 참여하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메인진행자가 모든 테이블을 단계별로 제어하면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각 테이블 별로 진행자를 정해주었습니다. 진행자는 "오늘 이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으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대화시간은 약 35분 정도 가졌는데요. 테이블 별로 5명 정도가 참여한 테이블 대화이기에 사실 상당히 짧은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각 테이블에서 밀도 있는 대화가 이뤄졌는데요. 워크숍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올려놓고, 테이블 안에서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도 주효했고.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단체의 조합원으로 지내면서 가졌던 평소의 생각도 깊었고 애정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대화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대화 이후에는 각테이블에서 나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전체 내용을 전달하기보다는 테이블 별 발표자가 자신의 기준에서 마음에 남고, 인상적이었던 것을 중심으로 공유하도록 했습니다. 사실 워크숍을 진행하면 이런 공유의 시간이 시간에 쫓겨 급하게 마무리될 때가 많습니다. 이날도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인상 깊은 쪽에 집중하게 하여서 조금이라도 서로의 마음에 남긴 임팩트를 확인하려고 노력해 봤습니다. 



4. 참여의 원


전체 공유까지 진행하니 2시간 중 5분이 남아있었습니다. 참여자들의 동의를 받아서 10분의 시간을 더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논의가 말로만 끝나지 않도록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워킹그룹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각 테이블별로 나왔던 활동 아이디어 중 한 가지씩. 이건 정말 꼭 해봤으면 좋겠다 싶은 것을 정해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정한 내용들을 아래 그림과 같은 동심원 가운데 붙였습니다. 보시다시피 각 주제별로 자신이 참여하고 싶은 정도 대로 이름을 써서 붙이도록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워크숍을 종료했습니다. 모두에게 시간을 주고 생각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더 독려해서 최소한 한 개씩은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었지만 2시간의 워크숍을 통해 그 정도까지 참여도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워크숍은 종료되었고, 집에 가시면서 쓱~ 이름 붙이고 가셔도 된다고 안내드렸습니다.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 내 시간과 의지가 허용하는 만큼 말이죠. 


희년은행의 청년 조합원 모임을 사례로 워크숍의 설계에서 프로그램의 내용과 실행까지 쭉 안내를 드려보았습니다. 저도 오랜만의 워크숍이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참여했는데 함께하시는 분들의 모습들을 보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조직, 공동체에서도 이런 방식을 활용해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구조화된 방법들이 기존에 가졌던 관성적 생각이나 무기력함 그리고 기울어진 권력관계 같은 것을 바로잡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1,2월이 그런 일들을 하기에 좋은 시기인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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