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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든쌤 Jul 08. 2024

라때 읽던 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소환하며

 중년의 나는 몇 개의 가면을 쓰고 있나요? 


여고시절 김용 작가의 무협소설과 오우삼 감독의 누아르 액션 영화를 섭렵했다. 용돈을 받으면 고려원 출판사의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로 이어지는 영웅문 시리즈를 사기 위해 지금은 사라진 신림동 남강 서점으로 달려갔다. 무협소설을 사 모으고 탐독하는 행위는 십 대를 온통 교실에 저당 잡혔다는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한 시발 비용이었다. 친구 집에 삼삼오오 모여서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등 주윤발이나 적룡이 나오는 액션 영화를 보고 장국영이 부른 OST인 當年情(당년정)을 흥얼거리곤 했다. 지금처럼 극장이 흔치 않던 때라 그나마 허용된 소소한 문화생활이자 스트레스 배출구였다. 


가만히 보니 거장에게는 자신의 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 주인공이 한 명씩 존재했다. 김용에게는 영웅문의 주인공 곽정이, 오우삼 감독에게는 주윤발이 분신이자 페르소나였다. 작가주의 감독들에게는 오랫동안 작업을 해서 감독의 세계관을 연기로 구현하는 페르소나가 한 두 명씩은 꼭 있기 마련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로버트 드 니로가 팀 버튼 감독에겐 조니 뎁이 그렇다. 우리에게 감독과 주연배우의 관계를 지칭하는 말로 익숙한 페르소나는 '가면', ‘외적 인격’을 뜻하는 라틴어로 개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기도 하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가면서 쓴 채 역할극을 한다. 누군가의 자식이자 부모, 아내, 며느리, 직장상사, 부하직원 등 역할에 맞게 사회적 얼굴인 페르소나를 갖춘다. 그리곤 무의식 중에 각각의 역할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자신의 가치를 매겨가며 아등바등 살아간다. 역할 하나 해내는 것도 만만찮은데 1인 다역을 능숙하게 해내느라 과부하가 걸린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런...  거울 속의 나는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다. 반복되는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데 이젠 체력마저 예전 같지 않아서 사는 힘들게만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상황과 환경에 맞는 사회적 자아가 필요하지만 문제는 남들 시선에 맞추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고 사는 동안 진짜 내가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며 원하는 게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는, '나는 나인데 내가 아닌 것 같은 나'라고나 할까? 역할에 짓눌려 진짜 나는 꾸깃꾸깃한 종이처럼 작아져 버렸다. 

이쯤 되니 공자에게 사십이 정말 유혹에 흔들리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불혹(不惑), 오십이 하늘의 명을 안다는 지천명(命)이 맞는 건지 되묻고 싶다. 저 옛날 CF 속에서 들리던 넥스트 노래의 한 구절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는 느닷없이 중년을 맞닥뜨린 우리들 자신에게 던져야 할 화두이다.


                                                                                                                            


그림책 <줄무늬가 생겼어요>에서 주인공 카밀라는 아욱 콩을 좋아했지만 절대 먹지 않는다. 친구들이 모두 아욱 콩을 싫어했기 때문. 카밀라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을 쓴다. 학교 가는 첫날 친구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옷을 마흔두 번이나 갈아입지만 아무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갑자기 온몸이 줄무늬로 바뀌는 바람에 학교를 못 가게 됐을 때도 다른 아이들이 뭐라고 할지가 걱정이다. 간신히 학교에 가지만 친구들은 줄무늬가 된 카밀라를 보고 웃는다. 아이들이 부르는 모양과 색깔에 따라 카밀라의 몸은 계속 바뀐다. 카밀라는 더 이상 학교에 못 가게 되지만 의사나 과학자 등 누구의 치료법도 듣지 않고 카밀라의 모습은 점점 더 이상해진다. 


그러다 집에 방문한 할머니 덕분에 카밀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욱 콩을 먹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카밀라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카밀라가 이상해졌다고 했지만 카밀라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아욱 콩을 먹었다. 


페르소나에만 충실한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배경이나 타인은 선명한데 나만 점점 흐려지는 사진과도 같다. 잠시라도 사회적 가면을 벗고 사진 속 주인공인 '나'라는 피사체를 선명하게 만드는 여정을 함께 떠나보자.






<중년여성을 위한 마음 PT>

요즘 나는 무엇을 제일 행복한가요?




나를 색깔에 비유한다면 무슨 색일까요? 해당 색깔을 고른 이유를 적어보세요.




나는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제일 생기가 있고 나답다고 느끼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근에 가장 편안함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어떤 상황이었는지와 편안함을 느낄 때 내 몸의 반응은 어땠는지 떠올려 보세요.




위에 적은 글들을 재료 삼아 인적사항/학력·경력·직업/맡고 있는 역할/성취한 것/소유한 것을 제외한 자기소개서를 간략하게 작성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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