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어로위츠에서 조각가인 해롤드(더스틴 호프만)는 다른 사람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는 까칠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입니다. 해롤드는 나름 명성이 있었던 과거에 갇혀 살며 잘 나가는 동료 작가를 시기하죠.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독설과 비난을 퍼붓기도 합니다. 그는 자식이 세 명인데 장녀 진(엘리자베스 마블)과 큰아들 대니(아담 샌들러)는 첫 번째 결혼 때, 셋째 매튜(벤 스틸러)는 두 번째 결혼에서 낳았어요. 서로 다른 세 명의 자식들은 저마다 아버지의 차별과 편애에 대한 상처가 있고 무엇 보다 아버지를 지긋지긋해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장남 대니는 과거 피아노에 소질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해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합니다. 아버지 주위를 맴돌며 아버지를 챙기고 보살피지만 헤롤드는 이혼하고 직업이 없는 대니를 은연중에 끊임없이 무시하죠. 차남 매튜는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회계사로 성공했지만 해롤드의 독단적인 모습에 질려 멀리 LA에 거처를 두고 독립했습니다. 유일한 딸인 첫째 진(엘리자베스 마블)은 항상 그림자처럼 존재감이 없습니다.
연로한 조각가 아버지의 회고전을 준비하느라 세 남매가 재회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뿌리내린 가족의 갈등은 수면 위로 불거집니다. 해롤드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와중에 대니와 매튜는 몸싸움을 벌이면서 잔디밭을 뒹굴죠. 형 대니는 동생 매튜에게 아버지는 네 전부를 좋아하는데 넌 왜 그렇게 꽁하냐면서 아버지는 자신과 누나를 이류시민처럼 취급한다고 불만을 터트립니다. 그러자 동생 대니는 아버지의 관심이 자신에게만 집중돼서 자기 인생이 개판이 됐다고 쏘아부칩니다. 돈을 아무리 벌어도 아버지가 자기 일을 무시해서 기분을 거지같이 만든다고 덧붙이면서요.
아버지 해롤드가 뇌출혈에 패혈증까지 겹쳐 혼수상태를 헤매자 담당의사는 가족들을 불러 모아 더 늦기 전에 해롤드에게 이 말을 자주 해주라고 권합니다.
사랑해요. 미안해요. 용서할게요. 용서해 주세요(I’m sorry. I love you. I forgive you. Forgive me.)
다행히도 헤롤드가 위기를 넘기고 퇴원하는 장면이 나오길래 서로 화해하는 훈훈한 결말을 상상했더랬죠. 그랬더니 웬걸 가족의 갈등은 완결된 게 아니었나 봅니다. 아버지를 챙기려고 집에 들렀던 대니는 별 볼일 없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듯한 아버지의 말투에 심한 모멸감을 느낍니다. 대니는 집을 나가겠다고 소리치며 아버지에게 절대 들릴 수 없게 작은 소리로 읊조립니다.
‘I forgive you. Forgive me. thank you, good bye’
영화를 보다가 십 년쯤 전에 모임에서 만났던 지인 K가 기억났습니다. K는 자신에게 그토록 모질게 대했던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미안하다고 하시는 걸 꼭 듣고 싶었답니다. 임종하시기 직전까지 엄마 나한테 미안한 거 없냐, 나한테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하시라고 울부짖었지만 끝끝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데요.
K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정 형편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엄마는 재혼을 하신 뒤 새아버지와 사이에서 세 명의 자녀를 낳았어요. 재혼 후에도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고 엄마는 일도 하고 아이들도 키우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첫째인 K에게 풀었습니다. 주로 맞거나 모진 막말을 듣는 일이 잦았는데 그나마 동생들을 돌보거나 집안일을 도우면 엄마가 화를 좀 덜 내시는 것 같았답니다.
K는 철도 들기 전에 동생들을 챙기고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티를 내지 못했어요.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학비를 보태느라 그녀는 가고 싶던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만 했죠. 그녀 바로 아래 남동생은 공부를 곧 잘해서 엄마의 큰 자랑거리였어요. 그녀가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멀지 않은 곳에 사시던 엄마가 병원에 못 오시는 이유 역시 ‘네 남동생 밥을 챙겨줘야 돼서’였습니다.
ⓒ Allen Taylor, 출처 Unsplash
형제간 갈등이나 경쟁은 막장 드라마 속 재벌가에만 있는 일이 아니라 어느 집이나 흔한 일이죠. 형제자매 있는 사람치고 다툼이나 싸움 없이 자란 경우는 거의 없을 거예요. 저 역시 연년생 언니와 이불장 위에 올라가서 머리채를 잡고 싸우다가 아버지가 집에서 쫓아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형제자매는 인생에서 최초로 만나는 라이벌이기도 하지만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기에 서로 의지하며 추억과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존재입니다. 중요한 건 부모가 애정을 얼마나 공평하게 줬느냐에 따라 아이의 애착이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죠. 부모가 대놓고 차별이나 편애를 했다면 부모의 애정이나 관심이 쏠린 형제자매에게 콤플렉스가 생기고 억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믿음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출생순위에 따른 생활양식(성격) 유형론을 발표했습니다. 차남으로 태어난 아들러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자신보다 능력 있는 형에게 열등감에서 비롯된 경쟁심이 심했어요. 자기 바로 아래 태어난 동생에 대해서도 질투심을 느꼈습니다. 동생이 죽는 바람에 어린 시절을 죄책감 속에 보낸 아들러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대표적인 이론 중 하나인 ‘출생 순위 이론(형제간 경쟁이론)’을 제시했습니다. 같은 부모를 둔 자녀들이라도 출생순위에 따라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경쟁하면서 제각기 성격이 다르게 발달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양육태도나 기대는 형제, 자매의 구성과 위치에 따라 차이가 있고 이러한 심리사회적 지위와 경쟁적 구도들이 인성발달에 영향을 미칩니다. 가족 내 위치에 대한 개인의 해석은 어른이 된 후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중년 여성을 위한 마음 PT
나의 출생 순위는 어떻게 되나요?
예 : 2남 1녀 중 둘째
형제·자매들이 태어난 것과 관련해서 기억나는 것이 있나요?
어린 시절 나는 형제자매들과 주로 어떤 것 때문에 싸웠나요?
자녀들끼리 다투거나 갈등할 때 부모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나요?
어릴 때 가족에게 당신은 어떤 존재였나요? 아래에서 어울리는 단어가 눈에 띄나요?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면 왜 그 단어가 끌렸는지, 그리고 그 단어와 관련되어 어떤 일이 떠오르는지 생각해 보세요.
중재자□ 짐□ 상담자□ 문제아□ 거짓말쟁이□ 희생양□ 걱정거리□ 왕자/공주 □ 피에로□ 귀염둥이□ 대리 배우자□ 효자/효녀 □ 있으나 마나 한 아이□ 애어른□ 부모의 기쁨□ 부모의 친구□ 화풀이 대상□ 무기력한 아이□ 이방인□
양육자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했던 말이나 행동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성장하면서 부모님이 자녀들을 대했던 양육태도나 형제관계가 현재 내 삶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