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걸렸습니다. 벌써 세 번째라니 헛웃음이 났죠. 조심하느라 지하철, 버스, 도서관 등 사람 많은 곳에선 마스크를 쓰고 다녔는데도 어디선가 옮았나 봅니다. 어떻게든 일어날 일이라면 조심이나 신중, 통제라는 단어 사이를 교묘히 빠져나가 결국 일어나고야 맙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 센터 선생님들과 화상 스터디를 하고 나니 콧물이 줄줄 흐르고 목이 아팠어요. 무엇보다 근육통이 심했죠. 아귀힘이 센 누군가가 살을 꽉 잡아 양쪽으로 당기는 것처럼 온몸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세 번이나 걸리고 보니 확실히 코로나에 걸리면 독감이나 몸살과는 다른 불쾌한 감각이 있습니다. 집에 남은 키트가 있어서 해보니까 영락없이 두 줄이었어요. 병원에서는 팍스로비드인가 하는 코로나 치료제는 품절이라며 일반 감기약을 처방해 줬습니다. 내담자들께 양해를 구하고 상담도 다 취소했어요. 재수생 아들에게 옮길까 봐 방에서 나와 화장실 갈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손 닿는 곳마다 집에 사둔 항균 스프레이를 강박적으로 연신 뿌려댔습니다.
세 번째 코로나에 걸리기 직전까지 체력과 인내심이 수명이 얼마 안 남은 배터리 같은 상태였어요. '갱년기, 무더위, 재수생 엄마'라는 단어들이 만나서 일시적이지만 삶은 인내하고 버티는 것으로 가득 찬 대환장 콜라보였죠. 이를 테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통증, 발열, 울화, 불면증, 식은땀등은 일상의 디폴드 값으로 자리 잡았어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학원 가는 아들을 위해 아침밥을 하고 화수목금토는 일을 하는 똑같은 일정. 자잘하게라도 꾸준히 새로운 자극을 추구해야 사는 맛이 나는 내게 '반복'은 그야말로 쥐약이었어요. 컨디션도계속 안 좋아서단순히 어른의 삶이란 다 이런 것이라는 말로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이었죠. 꽉 막힌 도로에서 차선 변경은 꿈도 못 꾼 채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꾸역꾸역 흘러가는 심정이랄까요.
제목이 뭐였더라 눈을 뜨면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영화가 있었는데 최근의 일상이 그랬어요. 영화가 지루하면 관객들은 극장을 뛰쳐나갈 수 있지만 지겹다는 이유로 인생에서 스탑 버튼을 누르거나 몇 배속 플레이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시소에 탄 채 마음대로 내려갈 수도 없고 허공에 마냥 떠 있는심정과 흡사했어요. 무겁게 눌린 시소의 한쪽에 책임감이나 인내심이 있었다면 붕떠 있는 쪽은 음표처럼 가볍고 발랄한 즐거움 같은 것들이 자리했습니다. 어학사전에서 불행의 정의를 찾아봤더니 '행복하지 아니함'이었는데 요즘 내 마음이야말로 불행의 사전적 의미에 가까웠죠.
그러다가 코로나에 걸리자 뭔가 종류가 다른 답답함이 찾아왔어요. 꽉 닫힌 문 때문일까 밀폐된 방의 공기 탓일까 몸이 느끼는 후덥지근한 감각으로 인한 걸까. 미열이 계속 났는데 후끈거리는 게 갱년기 때문인지 날씨 탓인지 코로나 증상인지도 헷갈렸습니다. 기관지가 약해서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심하게 하고 폐렴으로 악화될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기침을 많이 해서 뱃가죽까지 아팠고 목에선 쇳소리가 났습니다.
그렇다면 에어컨 없는 방에 갇혀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는 고역스러움은 불행(행복하지 아니함)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할까요? 누군가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대답하렵니다. 무엇보다 남편이 안 하던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것이 감사했어요.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무더위에 코로나에 걸린 아내가 안쓰러웠나 봅니다. 재수하느라 이마에 내 천자를 달고 사는 아들도 모처럼 상냥했어요. 원래 존댓말을 안 쓰는 녀석인데 아침마다 '엄마 쾌차하세요'라며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나가더라고요. 방에 에어컨이 없으니 기침 때문에 삐뚜름하게 쐬는 뜨거운 선풍기 바람이나마 없는 것보다 훨씬 나았어요. 갇혀 지내면서 시원한 노래를 찾게 됐는데 가수 이승윤의 '폭포'가 제격이었죠. 장장 6분짜리 사이키델릭 얼터너티브 락 스타일(뭔지 잘 모름)의 노래를 듣다 보면 마음이 절로 웅장해졌어요. 숏폼이라는 유행에 밥숟가락을 얹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젊은이의 굳은 결기가 돋보였죠.
무엇보다 쉬는 동안 김연수 작가의 '시절일기'와 '디 에센셜'을 주문해서 다 읽었어요. 가뜩이나 산만한 편인데 온갖 영상에 익숙해진 탓인지 언제부턴가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책은 한 페이지 이상 읽기가 어려웠었죠. 상담사라는 직업이 계속 공부를 해야만 하다 보니(개미지옥임^^;) 상담 관련 책만 읽기도 벅차다는 건 이유라고 쓰고 변명이라고 읽기로 합니다. 암튼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다 읽고 나니까 읽기 전의 나와 읽은 다음의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죠. '처연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 아름다운 언어' 같은 단어를 소설로 치환한다면 바로 김연수의 작품입니다. 살다 보니 원치 않는 일들이 연달아 찾아와 삶이 신산하기 그지없고, 어떤 결과는 내가 애쓴 것에 누군가 어깃장이라도 놓은 듯 참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김연수의 문장은 어두운 밤길을 비춰주는 달빛처럼 다가오고 덕분에 웃을 수 있어요. 덤으로 도파민에 절여진 뇌가 모처럼 뽀득뽀득해지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잘 먹고 푹 쉬면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소소하게 하다 보니까 '세 번이나 코로나에 걸리다니 운도 더럽게 없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가족들이 옮지 않아서 감사했습니다. 약 먹느라 끼니를 대충 때우지 않고 잘 챙겨 먹어서 건강해지는 느낌이었죠. 할 일을 올스톱하고 푹 쉬면서 번아웃 상태에서도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뒹굴거리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편애하는 작가의 책을 읽노라니 불행은커녕 행복이 이런 거지 싶었어요. 해서 세 번째 코로나에 걸리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치거나 무기력하고 의욕이 바닥나 있을 때일수록 의식적으로, 아니 기를 쓰고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서 할 것! 나를 충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았으니 갱년기, 코로나, 재수생맘의 대환장 콜라보도 나쁘지만은 않네요. 나쁘기는커녕 뜻밖의 장소에서 보물 찾기를 한 기분인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