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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지 Sep 27. 2024

#005. 임신하면 금주할 수 있을까?

89년생 신도시 전세로 사는 아지의 임신이야기

005. 임신하면 금주할 수 있을까?


    알코올 의존증 자가진단 결과가 고위험군으로 나왔다. 술을 한 번에 많이 마셔서 알코올 중독이 아니고 하루 한잔씩 매일 마시는 것도 중독이라고 한다. 나는 주 3~4회 정도 혼술을 하는 편이다. 술이 약한데도 술을 좋아한다. 사실 주량으로는 소주 1병 겨우 마시는 정도이다. 내가 술을 즐기게 된 데에는 와인의 힘이 크다.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샤워하고 소파에 누워 좋아하는 티브이를 보면서 와인 한 잔 하는 것. 와인이 주는 과실과 아로마 향과 신 맛, 단 맛, 쓴 맛은 나에게 영혼의 휴식이 되는 느낌이라 끊기가 힘들다. '페어링'이라는 단어도 있듯이 와인은 음식의 풍미를 더 끌어올리기도 한다. 먹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함께 마시는 음료가 무엇인지에 따라 느껴지는 음식의 깊이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는 평소 회사에서 워낙 회식이 많기 때문에 나하고 까지 술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친구도 지인도 잘 만나지 않다 보니 남편과 아니면 술을 먹을 상대가 없기에 집에서의 혼술이 자연스러워졌다.




지난겨울. 한잔씩 마시기 좋은 레드와인


술을 마시고 사고 친 적은 거의 없지만 보통 과음이 되면 오바이트 후 다음 날 속 쓰림과 두통에 시달리는 편이다. 사람들과 모인 자리에서 먹다 보면 자제가 안되어 취했음에도 계속 술을 찾다 보니 숙취로 고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낮에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어도 반주로 맥주 한 병은 꼭 주문하는 정도로 나 스스로도 알코올에 대한 욕망이 평균치보다는 높은 편이라고 느끼는 중이었다. 안 좋은 습관이 30대 중반을 넘다 보니 신체회복력도 많이 떨어져 버렸다. 약한 위염이 있었는데 최근 역류성 식도염으로 발전해 버려서 만성 소화불량이 되었고 불면증도 악화되었다. 피부 홍조와 건조함도 항상 있었고 특히 머리회전이 느려졌다. (한 번씩 적절한 단어가 잘 생각이 안 난다.) 과음을 하고 나면 간이 부어서 오른쪽 갈비뼈 밑을 누르면 약간 저릿한 게 느껴졌다. 알코올의 영향인지 혈중 ldl콜레스테롤도 많이 올라가 있다. 임신을 하게 된다면 태아에게 치명적이기에 한 방울의 알코올도 불가함을 잘 알고 있다. 금주를 꼭 해야 할 텐데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지 어둠이 깔리는 시간이 되면 나는 꼭 와인병을 열고 있었다.


고민하던 나에게 금주하게 된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라식수술이었다. 고도근시로 10년 넘게 고민만 해온 라식수술을 얼마 전 진행하게 되었다. 눈 수술을 했으니 최소 한 달은 강제로 금주인 것이다. 내 눈이 안 아파야 하고 시력이 회복하는 것에 온통 신경이 가 있으니 술의 유혹을 참을 수 있었다. 벌써 3주째 금주에 도전하고 있는데 최근에 가벼운 화이트 와인 반의 반잔정도 마신 게 전부이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부작용 없이 좋은 시력도 얻고 금주하여 신체도 회복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금주 3주 차의 소감은 먼저 소화불량이 많이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역류성 식도염이 잠잠해졌는지 신트림도 많이 줄고 소화력도 좋아졌다. 그리고 항상 술을 마시고 잠이 들고 나면 급히 오른 혈당이 내려가는 시점에 놀란 듯 깨는 경우가 많았는데 금주 후 이전보다 깊은 잠을 자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피부 홍조도 많이 개선된 듯하다. 몸무게도 1kg 감량했다. 대신 알코올을 통해 얻는 도파민을 대신해 달달한 음료나 초콜릿등을 많이 찾게 되는 금단현상은 겪고 있다.


알코올로 인해 쪼그라든 뇌가 완전히 회복하는 시간은 42일이 소요된다고 한다. 임신 중에 술을 마시면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알코올이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태아 알코올증후군의 사진을 찾아보면 아기의 외모에서 인중이 흐리고 들창코가 되거나 귀의 기형을 야기한다. 소뇌증이나 지적장애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해독기능이 없는 아기에게는 술이 너무나 독성물질이니 예비 엄마가 될 자로서 긴장감을 갖고 꼭 고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세상이 좋아져서 논알코올음료가 많이 나와서 든든하다. 금주중에는 논알코올 맥주로 아쉬움을 달랬는데 향과 맛이 꽤나 맥주 같아서 대체식품으로 만족스러웠다.



알코올 제로 맥주와 직접 만든 브리또로 식사하기


아기에게 미안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나의 건강을 위해 절주, 금주의 목표를 세워보는 요즘이다. 나에게 도파민을 야기하는 3가지 습관중독이 있는데 술-알코올, 커피-카페인, 스마트폰-전자파가 그것이다. 현대인에게 이 세 가지 도파민 중독이야 빈번하다지만 임신과 출산을 위해서는 모두 멀리해야 할 습관들이다. '나 할 수 있을까?' 물론 출산하고 나면(나의 현재 생각은 모유 하지 않고 완전히 분유로만 먹이고 싶은 마음.) 단유 하자마자 바로 술 한잔 찾는 생활이 뻔히 그려지겠지만 일단은 할 수 있다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임신준비 해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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