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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지 Sep 13. 2024

#004. 아기를 싫어하는 강아지와  신도시 생활하기

89년생 신도시 전세로 사는 아지의 임신이야기

004. 아기를 싫어하는 강아지와 신도시 생활하기


    현재 살고 있는 검단신도시에는 저출산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이들이 많다. 이곳은 입주한 지 약 4~5년 차가 된 신생 도시인데 인천 출신 반, 서울로 출퇴근하는 외지 출신 반 정도로 구성된 듯하다. 젊은 인구의 비중이 높아 생동감이 있고 매일 새로 생기는 건물들과 가게들의 오픈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파트 주위로 유초중고가 기획된 필지에 모여있고 적절한 학원과 공원, 상권이 갖춰져 있다. 2명에서 3명의 아이들이 있는 집도 많다. 학원버스가 아파트 정문마다 돌아다니며 여름마다 물놀이터도 열리고 기본적으로 단지 내에 차가 출입하지 않아 아이들 중심이다. 외지거나 위험한 곳이 별로 없고 곳곳에 cctv가 있어 안심할 수 있는 치안을 갖췄다. 음식점 단가나 생활비면에서는 서울보다 확연히 물가가 싸다. 집값으로는 5~7억 정도로 강남처럼 부의 차이가 높거나 큰 곳은 아니다. 코로나시절 분양가보다 2배가량 올랐다가 작년에 곤두박질치고 다시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작년에 전세사기와 입주폭탄으로 주택시장이 침체되었던 시기에 용인의 집을 팔고 정말 저렴한 가격 때문에 이곳에 전세로 입주하게 되었다. 수도권의 신도시는 비슷한 연령대의 비슷한 소득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공감대가 맞고 아이 키우기 좋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이곳은 mbti로 따지면 E성향의 엄마들이 종종 모여 함께 다니는 느낌이다. 카페에 있다 보면 교육과 재테크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테이블이 많다. INFP인 나는 성격상 물론 친구나 지인이 없이 반려견 모임도 일체 들지 않고 개인활동만 한다. (대신 7km 거리에 부모님 댁이 있어 가족모임은 잦은 편이다.) 평소 산책 중에 주변을 관찰하는 것이 취미 중 하나이다.




화창한 날 신도시의 공원산책


산책 때문인지 자녀는 없지만 어느샌가 엄마들의 스케줄을 알게 되었다. 잠순이인 나는 보통 점심쯤 느지막이 일어나기 오후에 산책을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이 거리에 많은 평일 13시와 17시대는 웬만하면 피하는 중이다. 오후 1시는 초등생들이 점심 먹고 하교를 하는 시간대이고 4~5시는 어린이집 하원과 학원을 가는 아이들로 동네가 분주하기 때문에 이 시간대에 산책은 자제하는 편이다. 나의 반려견 '달'이 아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여느 신도시가 그렇듯이 이곳에는 아이도 많고 강아지도 많다. 그런데 달은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달의 성격이 겁도 많고 보수적이기는 하지만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해 간식을 주는 사람은 초면이어도 바로 따라가서 주인이 된다. 성격 좋은 강아지 친구들과는 인사도 잘한다. 달은 이쁨 받고 싶어 하는 성격에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기들은 성인 인간과 다른 어떠한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특히 킥보드를 타고 쌩쌩 달리거나 자신을 보고 "멈머~!"라며 소리 지르고 뛰어오는 아이들에게 경계성을 높여 짖을 때가 많다. 개로서 예측 안 되는 작은 존재가 주는 불안함의 이유일 것이고 달이 짖기는 하지만 사람을 실제로 공격하거나 문 적은 한 번도 없다.


개의 종의 기원이 늑대이며 야생의 본능이 튀어나올 수 있는 개들에게 아기는 토끼나 다람쥐와 같은 사냥감으로 오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고는 예고하고 오지 않기에 우리 부부는 달을 키워온 8년간 항상 주변을 살피며 산책을 다니고 있고 아직까지는 사고가 생긴 적 없다.


임신을 생각하다 보니 반려견과의 육아에 대한 생각이 우선적으로 든다. 달이 소형견도 아닌 체급 좋은 중형견이고 아기와 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나 인스타에는 대형견과 아기가 잘 지내는 행복한 반려가족들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조는 달이 아기를 낳으면 잘 지내고 보디가드가 되어 줄 것 같다고 한다. 과연 우리 부부가 '애개육아'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까. 가보지 않은 길이라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행히 이곳 신도시로 이사 오고 1년이 넘는 산책 중에 많은 아기들을 매일 접하며 달의 외부 자극이 많이 줄었는지 경계하는 빈도가 많이 줄었다. 얼마 전에는 초등생들이 달에게 다가와 말도 걸고 쓰다듬으며 소통한 적도 있었다. 우리 부부가 예방차원으로 퍼피 시절부터 아기들에게 다가가지 않게 너무 분리해 놓기도 하였고 산책 중에 아이를 보면 우리의 긴장 호르몬이 달에게 느껴져서일 수도 있겠다. 사람의 마음이 개에게 잘 느껴지는 듯하다. 보호자인 우리부터가 아이들을 편안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개월 전 조의 친 조카가 이사한 우리 집에 놀러 온 일이 있었다. 조카는 달과 같은 해인 2017년도에 태어났는데 3개월이 빨라 달보다는 '형아'이다. 예전에 한번 달이 조카를 많이 경계했던 적이 있어 당시 초대에 내가 많이 긴장되고 걱정했었다. 경계성이 높아지는 집안보다는 밖에서 산책하며 첫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같이 들어오는 계획을 세웠다. 형님 부부와 조카가 방문하였고 정말 다행히도! 달이 밖에서 조카를 보고 경계하지 않았다. 조카 가족이 모두 강아지를 워낙 좋아하여 그 마음이 전해졌을까, 집안에 들어와서도 조카가 간식을 주고 달을 쓰다듬어주기도 하는 등 친한 모습을 보였다. 달이 경계심을 완전히 풀진 못하고 한 번씩 "왕!"하며 짖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희망이 보이던 하루였다. 아직 달이 신생아나 영아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어린아이들과도 이 정도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조카와 인사하는 달


날씨 좋은 날 공원 피크닉에서 아이와 강아지가 함께 어울리는 가족의 모습은 화목과 행복의 이미지 그 자체이다. 물론 그 안의 아픔이 있을 수도 있도 진실은 제각각 이겠지만 내가 꿈꾸는 이미지는 일단 긍정적이다. 달의 건강이 요새 들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개의 나이 만 7세, 사람으로 치면 40대 중후반정도인데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귀찮아하는 모습도 보인다. 달이 건강할 때 아이를 만나게 해주고 싶은 소망을 가진다. 우연히 노견영상이나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작별의 영상들을 보고는 곤히 자고 있는 달을 끌어안고 운 적도 있다. 아직은 헤어짐에 대해 도저히 준비나 실감이 나지 않는 개아들과 산다. 2세가 생겨도 끝까지 달을 책임질 것이다. 언젠가 만나게 될 '애개육아'를 위해 엄마인 나의 인내심과 체력도 뒷받침해 주어야겠으니 오늘도 파이팅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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