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진 망고바나나 주스를 보면서...
엄마, 나도 할머니랑 통화 할래
내가 친정엄마에게 전화한다며 핸드폰을 번호를 누르는 걸 보며 아이가 달려든다. 그리고 무려 한잔에 6500원이나 하는 별다방의 망고바나나 주스를 몇 번 빨아보지도 못하고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다. 돈 아까움은 둘째 치고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부끄럽고 얼마나 야무지게 쏟았는지 컵에 남아있는 쥬스가 별로 없다. 나의 노트북 케이블에도 아이의 바지에도 난리가 났다.
예전의 나였다면 바로 큰소리가 나왔을 꺼다. 이날도 본능적으로 아들의 부주의를 탓하는 말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떨고 있는 아들이 먼저 보인다. 아마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엄마에게 혼날 생각에 떨고 있었으리라.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르바이트 하시는 분에게 청소도구를 요청하고 아들에게는 괜찮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나는 무서운 엄마다. 특히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과 공공장소에서 과하게 떠드는 아이들을 싫어한다. 이는 철저히 나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집 어린이가 손끝이 여물고 조금은 야무진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런 과한 기준의 잣대를 아이에게 엄하게 들이대다 보니 나는 무서운 엄마가 되었고, 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보는 아이가 되고 있었다.
아이가 나를 무서운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옳았고 여러 번 말해도 흘려듣는 아이를 가장 빠르게 교정하는 방법은 “무섭게” 이야기하는 것뿐이니까. 조금은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순간의 욱을 참지 못했던 나에게 아이를 기다려 준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는 물론 독서와 배움으로 조금은 성장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제는 나이가 드니 조금은 유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변화의 요인은 나와 아이가 다름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한번 수강에 5만원씩 하는 과학실험 학원도 다니고 영어 유치원, 반 아이들과 함께하는 어린이 축구, 어린이 전용 수영장... 평범한 소득의 맞벌이 집안이지만 고가 사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사실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그래도 둘이 버니 이 정도는 해줄 수 있고 해주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주스를 쏟은 대박 사고를 친 이 날은 희한하게 마음속으로 하나,둘,셋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본인의 실수를 당황스러워 하고 얼음이 되어버린 아들이 보이는 거다. 얘도 너무 당황한 것이 보이는 거다. 괜찮다고 달래줄 화를 내지 않고 아르바이트 하는 분과 함께 처리를 하고 앉았다.
“혹시 다시 시켜줄까”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먹기 싫어서가 아니라 또 쏟을까봐 무서워서란다. 결국 망고바나나주스 하나를 더 주문했다. 물론 아직도 고민은 많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확신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최선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제는 우리 세대가 공부했던 방식으로 이 아이들이 컸을 때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조금은 더 수학을 잘했으면 좋겠고 나의 기준에 똘똘한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죽지를 않고 있다. 그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 아이와 나의 다름을 인정했고, 이제는 말이 통하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언젠가 나의 욕심과 이런 마음의 접점을 찾을 날이 오겠지!
오늘도 이렇게 아이와 나는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