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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Sep 28. 2023

7화. 알코올 쓰레기

소설 같은 이야기

이 이야기는 소설같은 이야기로 실존 인물 및 실제 사건과 무관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재미로 가볍게 읽어주세요!




우리 한국 사회는 ‘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도 현대판은 다르게 해석된다. 퇴근 후 늦은 밤까지 술자리에서 모든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맥주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부터 온몸에 홍조가 나타나는 나는 역사의 자리에 간 적이 별로 없다. 나는 알코올 쓰레기라서. 그래도 다행이다. 그냥 쓰레기가 아니라 알코올 쓰레기니까. 누구 말에 따르면, 술도 노력하면 는다고 하던데, 예외도 있는 법.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게 바로 ‘술’이었다.      


내가 처음 술을 마신 건 19살 때였다. 공부 못하는 것들이 꼭 쓰잘머리 없는 것들만 챙긴다. 수능 100일 주 같은 것 말이다. 부모님은 고3 스트레스 하루쯤 맥주 한 잔으로 푸는 것도 괜찮다 생각하셨는지 저녁 식사하며 곁들여 마셨다. 첫 경험이라 그런지 몰라도 머리가 핑- 돌면서 어질어질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홍익인간이 되었다. 온몸이 붉게 익어버린 인간이란 의미다.      


아버지도 나와 같았다. 후천적인 게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도 ‘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들은 잘도 진급하던데, 술을 멀리하는 아버지의 사회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정년까지 관리직 한번 못해보고 만년 과장으로 끝마친 것만 봐도 소설에 나올 만한 이야기다. 입사할 때 전국 1등으로 들어갔으니, 사실 차장이나 부장 정도는 충분히 달았을 텐데 말이다. 그나마 사기업이 아니고 공기업 계통이라 철밥통처럼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나 또한 역시나 ‘술’ 때문에 여러 번 위기를 맞았다. 그중에 나는 세 번째 직장이자 현재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곳에서 첫 회식 날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때는 첫해라서 아직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관리직 임원분 한 분이 주신 술을 받기만 하고 마시지 않았다. 티 안 나게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다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알고 보니 제대로 찍힌 거였다.      


연말이 되어 정규직 신입 사원 채용이 있을 것이라 했다. 비록 1년 계약직이었어도 올해의 우수 사원으로 뽑혔던 나는 내심 기대했다. 이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신규 채용 공고는 나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옵션은 1년 더 계약직으로 연장하는 것뿐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일단 구두로 연장 의사를 밝히고, 다른 직장 정규직을 알아보며 서류도 넣고, 면접 보며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많이 친해진 선배가 살짝 부르더니 왜 정규직 공고가 나지 않았는지 귀띔해줬다. 다른 임원들은 나를 추천하고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딱 한 명이 강하게 반대한다고 했다. 바로 회식 첫날 나에게 술을 건넨 그 임원이었다. 임원 중에서도 인사권에 있어서 영향력이 가장 센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다 물리칠 수 있었단다. 대신 나머지는 모두 아까운 인재를 놓친다고 계속 설득하니 1년만 더 지켜보는 쪽으로 회의가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옵션이 1년 연장하는 것이었다.     


정규직이 간절했던 나로서는 계속 다른 곳에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여러 차례 최종 면접까지 가게 되었지만, 계속 고배를 마셨다. 점점 가슴 졸여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내가 근무하던 부서 선배 한 명이 좋은 조건으로 제안을 받아 다른 직장으로 옮긴다는 것이었다. 직장 사람들 모두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 선배는 직장 애사심과 충성심이 매우 강했거늘. 특히 인사권이 가장 센 관리직 임원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하늘 우러러보듯이 충성하던 선배라서 충격이 컸다. 아마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그 임원이 아니었을까.    

 

천운인지 모르겠지만, 그 선배가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정규직 신규 채용 공고가 떴다. 내년에 있을 기관 평가에서 정규직에 두 자리나 공석이 있으면 감점되어 예산이 삭감되기 때문에 신규 채용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나에게 다시 기회가 온 것이었다. 한 자리도 아니고 두 자리로 늘어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최종 결과는 미지수였다. 나를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지원서를 넣어야겠지만, 가만히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동시에 다른 직장도 알아보면서 계속 근무했다. 나와 같이 근무하던 선배들은 모두 내 편이라 종종 소식을 전해줬다. 이번 신규 채용 때는 외부 인사가 와서 함께 평가할 거라 했다. 나를 반대했던 임원도 만일 외부 인사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으면 그때는 인정하겠다고 했단다.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의 가능성이 생긴 데에 희망의 불꽃이 불타올랐다.     

 

나름 경력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우선 어디를 쓰든 1차 서류는 모두 통과했다. 그런데 이를 어찌할꼬. 하필이면 같은 날 다른 회사와 2차 평가가 겹쳤다. 그곳은 3명을 뽑는다고 해서 어디로 가야 하나 깊게 고민했다. 개인적으로 업무 강도는 세도 내가 근무하던 곳이 더 좋았다. 마음이 가는 곳으로 정했다. 비록 어려움은 있더라도 내가 일하고 싶은 곳에서 도전해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2차 평가를 치르면서 멘탈붕괴가 왔다.



           



면접 전에 미리 문제를 푸는 게 있었는데, 첫 번째 문제부터 아무리 고민해봐도 풀 수 없었다. 완전히 망했다. 괜히 3명 뽑는 곳을 포기해서 이런 불상사를 만들었나 스스로 원망하기도 했다. 망연자실한 상태로 멍하니 있다가 그래도 억울하니 남은 문제라도 풀어볼까 하고 읽어 내려갔다. 나머지 문제는 너무 쉬웠다. 내가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리고 다시 올라와서 보니 첫 문제에는 오류가 있었다. 오류를 발견하고 나니까 면접 걱정이 싹 사라졌다.     


면접실에 들어가니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다. 나름 1년을 다닌 직장이라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전혀 알 수 없었다. 바로 이 사람이 외부 인사였나보다. 이 사람의 평가가 나의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긴장됐다. 손발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심호흡하고 면접관들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답했다.      


면접 시작 전에 혹시 문제를 풀면서 이상한 점이 있었는지 물었다. 나는 첫 번째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그 오류는 의도적으로 파놓은 함정이었던 것 같다. 설명하고 나니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머지 문제에 대한 답은 청산유수로 답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2차 평가 점수는 괜찮을 것 같았다. 이런 확신은 자만이 될 수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자신 있었다. 외부 인사는 순식간에 무언가를 적더니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가만히 내 얼굴을 응시하며 대답하는 내 모습을 뚫어지도록 쳐다보기만 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2차 평가를 통과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마지막 면접만이 남아 있었다. 총수와 임원들이 들어오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야지만, 정규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 괜찮은데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임원이 들어올 것 같아 불안했다. 역시나 촉이 틀리지 않았다. 총수 바로 옆에 떡하니 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만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간 면접 자리였지만, 나를 저격해서 내가 쓰러진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다.

  

다행히도 면접 문항을 100개 넘게 뽑아서 무한으로 연습하며 대비했기에 예상 범주 안에서 모든 질문이 나왔다. 나도 준비한 대로 술술 답변했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에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바로 그 임원의 저격이었다.      


“만일 상사가 업무 시간 외에 술자리로 부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에게는 쥐약 같은 질문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나락으로 가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또다시 마지막 관문에서 미끄러지게 된다. 그럴 수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자리에 별로 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순간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자 결심했다.      


“비록 업무 시간이 아니라도 상사가 중요한 일이 있기에 연락했을 것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일하다 보면 업무 시간 내에 공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있지만, 술자리 같은 사석에서 편한 분위기로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원은 바로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제가 알기론 술을 못한다고 들었는데, 술자리에서 상사가 술을 주면 마실 건가요?”     


“아... 네. 제가 선천적으로 술이 많이 약해서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꼭 마셔야 하는 순간이나 상황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때는 마실 것 같습니다. 사실 술이 약한 게 제 약점이라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술을 늘려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력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을 주변에서 많이 해줘서 그렇게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속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임원의 표정을 보니 ‘이놈 봐라?’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무사히 면접은 끝났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그동안 참고 있었던 땀이 몰려나와 온몸을 적셨다. 마치 땀샘이 폭발한 듯했다. 최선은 다했지만, 마지막 질문과 나의 답변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잘한 건 맞는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 임원의 뒤끝이 그렇게 길게 이어질 줄 누가 알았나. 알코올 쓰레기의 비애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도 사실 술을 잘 먹고 싶다. 하지만 20년 넘게 노력해봤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사실 나는 술 마시고 노는 자리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오히려 술을 마시면 잠이 들거나 숨이 가쁘고 힘드니까 술 한 방울도 안 마시고 주변 술 냄새 취해 신나게 밤새며 놀 수 있다. 나와 즐겁게 놀고 싶다면, 오히려 안 마시게 하는 게 낫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술을 먹이려고, 탄산음료에 소주 몇 방울을 탄 적이 있다. 나는 귀신같이 알코올 성분을 알아챘다. 물론 그것 마시고 해롱해롱 졸다가 놀지도 못한 적이 있다. 그다음부터 내 지인들은 술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놀지 못하고 재미가 없으니까. 심지어 나는 여자친구랑 치맥을 먹을 때, 생맥주 위에 거품 조금 마시고 확 취한 적도 있다. 집에 가는 길에는 여자친구 어깨에 기대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여자친구도 다시는 술을 권하지 않았다.     


술마다 알코올 성분이 어떻게 다른지 몰랐던 나로서는 막걸리 한 모금에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은 적도 있다. 탁주는 더욱 몸이 말을 안 들게 했다. 머리도 얼마나 깨질 듯이 아픈지... 나는 보통 숙취가 이틀이나 간다. 그렇게 한 모금 마시고선 말이다. 남들이 즐겨 마시는 그 술을 나는 마실 수가 없는 인간이다. 진짜 알코올 측면에서 볼 때는 쓰레기네.     


그런 알코올 쓰레기가 호주에서 대학원에 다닐 때 돈이 없어서 알바를 구했는데, 하필이면 고급 레스토랑 웨이터라서 와인에 대해 알아야 했다. 하루는 매니저님이 직원을 다 모아 놓고, 와인 30개를 꺼내 맛을 보게 했었다. 5번째 와인까지는 맛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는데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신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집에 돌아갔는데, 이틀 동안 술병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토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다시는 술은 안 먹겠다고 다짐했건만, 쉽지는 않았다.     


와인 맛은 정확히 모르지만, 이론으로 공부해서 다행히 손님들한테 어떤 맛이고, 어떤 요리와 어울리는지 추천해줄 수는 있었다. 그래서 잘리지 않고 버텼고 무사히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가난했지만 그나마 머리를 쓸 줄 아는 유학생의 생존법이었다. 하지만 직접 술을 마셔야 하는 자리에서, 게다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술’은 나에게 항상 큰 짐이었다. 한국에서는 술을 빼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는 동방예의지국이니까 말이다.          





드디어 정규직 발표날이 되었다. 너무 떨렸다.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꾸만 마지막 면접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르게 대답을 했어야만 한 건 아닌지 계속 다른 답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만큼 간절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은 되돌릴 수 없는 법.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마음을 자꾸만 비우기 위해 노력했다. 허나 술잔을 비우는 일만큼 마음을 비우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뭐든 비우는 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가 보다.     


혹시라도 연락을 놓칠까 봐 화장실에 가서도 핸드폰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꺼내는 동안 못 받으면 안 되니까 말이다. 정말 화장실에서 작은 볼일을 보고 있는데 진동이 울렸다.      


“찌이잉-”      


마음이 급했다. 아직 볼일을 다 마치지 못한 상태라 두 손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한 손 신공으로 간신히 패턴을 그려 보안을 풀고, 문자 버튼을 눌렀다.


두둥...     


“수험번호 OOOO, OOO님 합격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악~~~”      


기쁨의 탄성이 터져 나왔지만, 바로 핸드폰을 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이 소식을 빨리 여자친구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드디어 내 인생에 정규직이라는 타이틀과 한 직장에 정착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계약이 끝날 때마다, 특히 추운 겨울 새로운 터를 찾아 떠나는 유목민의 고통과 슬픔이 다 사라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코올 쓰레기가 위기를 극복하고 이 직장에 남게 된 사실도 위대한 일이었다. 다만,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중에 아는 선배한테 이야기를 들었다. 끝까지 그 임원이 나를 반대했지만, 외부 인사의 평가 점수가 만점이라 더는 반대할 수 없었다고.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선배의 조언에 따라 다음 날 일부 임원들한테 인사하러 갔다. 물론 손에는 ‘양주’를 들고서 말이다. 보통 계약직으로 있다가 정규직이 되면 인사치레하는 게 여기 관례란다. 총수님과 고위급 간부 몇 명을 챙기고 나니 순식간에 보름치 월급이 날아갔다. 그래도 괜찮았다. 앞으로 여기서 내가 벌 돈이 훨씬 많으니까 말이다. 투자라고 생각하면, 아깝지 않았다.     


그 임원에게 갔을 때 의외의 반응에 놀랐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감동적인 말과 함께...    

 

“이제 한 가족이니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그랬다. 정년까지 사람을 죽이지 않는 이상 보장되는 곳이라 함께 있을 사람이 중요했던 거였다. 피 한 방울도 안 섞였는데 가족이라고 표현할 정도니 말이다. 핏방울 대신 술 방울이 섞여야 하겠지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양주를 건네니 화색이 돌았다. 관례지만, 참 잘했다 생각했다. 원수에서 가족이 되는 순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피가 섞여도 원수가 되는 마당에 이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번 뒤끝은 영원한 뒤끝이니까.



          



가끔 회사에 파견 요청이 들어올 때가 있다. 업무 관련성이 높은 인재가 경우 필요에 따라 상급 기관에서 요청한다. 나도 어느 정도 연차가 쌓였을 때 기회가 왔다. 그래서 지원했고, 합격했다. 분명히 지원할 때 관리자 임원 두 명 모두에게 허락을 받았다. 막상 합격하고 나니 말이 달라졌다. 부서 사정이 있으니 이번 파견은 못 간다고 하란다. 역시나 나를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던 임원이 더 강력히 말했다. 속상했다. 파견 다녀오면 많이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데, 자주 오는 기회도 아니라 더 그랬다.     


파견 나갈 수 없는 이유는 다름 아닌 부서 업무와 딱 이틀이 겹쳐서라고 했다. 심지어 선배들이 커버해줄 테니까 다녀오라고 했는데도, 극구 임원들은 반대했다. 나는 한 번만 더 재고해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그 기회는 다른 기관에 있는 사람에게 넘어갔다. 나는 이번에 거절했으니 다음에 다시 기회가 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너무 속상해서 간절히 바라던 정규직 자리지만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고작 이틀 때문에 반대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이없는 일은 몇 달 후에 일어났다. 내가 받았던 비슷한 종류의 파견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나 때는 일주일 기간이었는데, 이번에는 무려 한 달 반이었다. 30일도 아니고 45일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파견을 나갔다. 심지어 그 부서는 가장 바쁜 시기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안 되고, 왜 그 사람은 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친한 임원한테 가서 이유를 물었다. 왜 나는 갈 수 없었고, 이번에 다른 사람은 파견 나갈 수 있냐고 말이다. 돌아오는 답변에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다.      


“파견이든 뭐든 부탁하려면 좀 친해지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평소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필요할 때만 그렇게 말하면 누가 좋아하겠어.”     


이 말에 무릎을 치고 말았다. 파견을 나간 사람과 나의 큰 차이점은 바로... 그 임원과 함께 술자리에 함께 있었냐 아니냐의 차이었다. 사실 나는 정규직 발령 이후에 전체 회식 자리 외에는 그 임원과 사석에서 술자리를 한 적이 없다. 내가 알기론 그 임원은 자기 사람들을 수요일 저녁마다 불러서 역사를 쓴다고 들었다. 일명 ‘수요미식회’라고, 오른팔 왼팔 수하들을 이끌고 자기 사람을 더 늘려나가는 자리라고 했다.      


그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주로 팀장급으로 요직을 하나씩 맡고 있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진급하고 싶지만, 그 자리에 낄 수 없으니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옳지 않았다. 진급은커녕 남들 다하는 파견조차 다녀올 수 없었으니. 이 직장에서의 비전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정년은 보장되어 있고, 호봉은 올라가니까 그냥 내 일만 잘하면서 살면 된다. 다만 남들처럼 야망을 품고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헛된 꿈만 꾸지 않으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일이니 그깟 야망쯤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사소한 경험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이 컸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술을 배우고, 그 모임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할 것은 아니었다. 물고기가 물 밖에 나가면 죽는 것처럼.  

   




몇 번이고 사표를 그 임원 얼굴에 던지며 그만두겠다는 상상 훈련을 해왔다. 하지만 30대 중반에 네 식구를 먹여 살리는 외벌이 가장으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물론 아직 젊은 나이라서 기회를 만들어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굳이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떠나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살았다. 아니면 다른 능력이 있어서 ‘술’은 먹지 않아도 먹고 살 방법을 찾으면 될 일이었다.     


그 무렵 한창 주식과 부동산 재테크 붐이 불었다. 문외한이기도 했고, 재테크에는 전혀 관심 없던 나는 사실 그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자꾸만 벽에 부딪히며 이 직장을 언제든 그만둘 상황이 혹시 올 수 있으니 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가며 주식도 공부하고, 부동산도 공부하고, 공매, 경매 등 여러 재테크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드(seeds)가 없으니 무엇을 해도 하기가 어려웠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하며 추가 수입을 벌기 위해 주변에 몇몇 가장들이 야간 직업 전선에 뛰어들기도 했다. 나도 그걸 해보면 어떨까 고민했다. 하지만 몸으로 때우는 일은 내가 나이가 들면, 더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하면 안 되었다. 그때 《파이프라인 우화》라는 책을 읽으며 패시브 인컴(수입)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알았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유튜브였다. 초등학생들 인기 직업이 유튜버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누구든 도전해볼 만하고, 수익도 기대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적성과는 잘 맞지 않았다. 1년 정도 했지만, 결과도 별로 좋지 않았다. 술도 안 마셔도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나와 맞지 않는 일도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영상을 만들기 위해 연구한 덕분에 소소하게 영상 제작 알바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생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술’을 먹지 않고, 몸으로 때우지 않고, 내가 무언가 만들어 놓으면 자동으로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은 무엇이 있을까?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생사의 기로에서 나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던 때와 같이 불혹 마흔 가까이가 되어 똑같은 고민을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83년생 불혹의 나이 마흔 살의 외벌이 가장의 현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당장 명예퇴직을 신청하라고는 하지 않으니 내가 다니는 직장에 감사했다. 2022년부터 은행권에서는 내 나이 때가 명예퇴직 대상자였기에... 어느덧 83년생이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 불황의 시기 쫓겨나듯 명예퇴직하던 40대 아버지들에 관한 기사를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엔딩곡)     


“난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 널 잃고 이렇게 내가 힘들 줄이야.”     


*술이야

- 2006년 2월에 발매된 2인조 남성 발라드 그룹 바이브의 세 번째 앨범 Re-Feel, 7번 트랙에 위치한 곡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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