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안쓰는것은 앞으로도 안쓰게 되더라
사례1. 둘찌가 코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녀왔다.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았다. 빈 약병 두개를 넣어주길래 '집에 있으니 안주셔도 됩니다'고 했다. 약사님이 나에게 "정말 없어도 되나요?"라고 재차 물으셨다.
사례2. 야쿠르트 20개를 샀다. 낱개로 구매가 가능해서 장바구니에 담아 가는데 사장님께서 '애기엄마 빨대가져가야지'하고 빨대 한무더기를 주신다.
저번에 주신 빨대 아직 있어서 안주셔도 됩니다고 했다. 사장님이 "그거 언제준건데 아직있어?"라고 놀라셨다.
사례3. 마트에 가서 감자와 사과를 샀다. 감자와 사과는 한 개당 가격을 매기길래 장바구니에 두개씩 넣었다. 그랬더니 매대 정리하던 직원이 나에게 와서 비닐을 내민다. '집에가서 바로 먹을거라 장바구니에 넣어갈게요'라고 했다. 직원이 "어머 그래도 괜찮아요?"하고 날 희한하게 쳐다봤다.
사례1,2,3은 내가 늘 겪는 이야기다. 약병은 위생상 웬만하면 한번쓰고(3,4일치 약을 다 먹고)버리는데, 보통 약병을 2~3개씩 챙겨줘서 항상 두세개가 남는다. 집에 약병 쌓아봤자 쓸곳도 없고해서 다음에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항상 거절한다. 집엔 비상용 약병(갑자기 아이 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일때)한개 빼곤 늘 다 쓰고나서 새로 받는다. 그마저도 없으면 숟가락에 떠서 홀랑 먹이기도 한다. 야쿠르트 빨대도 사정은 비슷하다. 빨대는 크기가 작아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을 하면 안되고 일반쓰레기로 넣어야한다는 말을 듣고난 후 빨대를 쓰는게 꺼려졌다. 특히 아이들 우유나 주스, 요쿠르트를 먹을때 쓰는 빨대들! 한번쓰고 홀랑 버리기 아까워서 한번쓰고 속까지 깨끗하게 씻은 후 서너번은 더 쓰고나서 버린다. 주둥이가 좀 큰 컵이나 주스를 마실땐 집에 있는 유리빨대를 쓰기도 한다. 엄마는 날 보고 궁상이네, 그거 씻는 물값이 더 나오겠다고 하지만 빨대를 사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괜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더 늘리기 싫은거라 그냥 듣고 만다.
마트에서 채소나 과일을 살 때는 부득이 쓰레기가 생길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포장이 거진 다 되어있고, 대부분이 그램수로 재는지라 용기를 가져가면 직원들이 번거로워진다(용기를 올리고 영점을 다시 재야 하기 때문) 집에서 쓰던 비닐을 챙겨가긴 하지만, 내가 비닐이나 봉투를 꺼내면 아주 간혹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시선이 있어서 좀 부담스럽다. 그래서 차라리 재래시장이나 하나로마트를 간다. 별수없이(?)스티로폼에 랩을 칭칭 두른 채소를 가져오면 잘 뒀다가 마트에 갖다주기도 한다. (깨끗하게 씻어 말려 갖다준다) 아예 안 살수는 없으니 이렇게라도 쓰레길 줄이려 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비닐을 많이 쓴다. 다만 내 선에서 조금이라도 덜 쓰는 방법을 찾는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실천하는것.
이게 굉장히 중요한데, '번거롭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게 '일'이 되어버려서 후에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되면 점점 힘들고 지치게 된다. 나도 시작은 의욕적이었다. 차와 가방에 텀블러와 밀폐용기도 몇개씩 들고다녔고 비닐 안쓰려고 애썼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너무 힘들었다. 비닐 안쓰려고 냉동실에 있는 것들을 죄다 밀폐용기에 넣어 보관했더니 가뜩 작은 냉동실이 꽉 차버렸고, 텀블러를 챙겨도 정작 세척을 까먹어서 못쓴 일도 많다. 그러다 점점 지쳤고 '아우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퍼뜩 깨달았다. 나는 왜 일회용품을 안 썼지? 본질은 잊혀지고 남은건 힘든 내 육신과 정신. 그래서 다시 재정비했다.
냉동식품은 팩 그대로 쓰고 굳이 용기에 덜지 않았다. "원래 쓰던 비닐과 일회용기는 그대로 두자" 냉동만두나 동그랑땡 같이 몇몇 식품은 비닐팩이 밀폐형으로 되어있는데, 이것들은 다 먹고 나면 비닐을 깨끗하게 씻어 말려 재사용했다. 스치로폼은 모았다가 필요한 가게에 갖다주고, 장바구니를 두고왔을땐 종량제봉투를 구매해썼다.
이정도만 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여기서 조금씩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장바구니는 가방필수품이 되었고, 텀블러나 도돌이컵을 적극 쓴다. 음료를 주문할때 빨대는 괜찮다고 했고, 그밖에 휴지 등도 꼭 쓰지 않으면 받지 않았다. 지금 당장 쓰지 않는것은 받지 말자. 이러니 물건이 쌓여 정리하기 힘들 일도 없고, 쓰레기도 더 생기지 않았다.
소비패턴도 바뀌었다. 길 가다가 예쁜것, 좋은것이 있으면 샀는데 지금은 '집에 있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라는 생각에 '다 집에 있어'라고 사지 않게 되었다.
옷과 신발, 가방의 소비가 가장 많이 줄었다. (안산다는 것은 아니다. 책만은 욕심내는데, 중고장터를 이용해 구매한다) 있는거나 입고 쓰자! 궁색하지 않고 내가 당당해지니 나의 소비패턴과 환경신념에 자신도 생겼다. 나의 변화에 주변 지인들 중엔 텀블러를 쓰거나 빈티지매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생겼다. 맛있는 비건음식이 있으면 같이 공유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함께하니 더욱 신이났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적당한'제로웨이스트, 미니멀라이프, 비건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