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휘지>

by 송건자

*


“당장 데려가세요! 안 데려가면 내쫓을 겁니다!”


휴가에서 급히 소환된 옥이 홀로그램으로 띄운 두 사람에게 화를 냈다.


“감독관 님, 저희 유리 좀 받아주세요.”


반투명한 유리의 부모가 애원했다. 옥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보세요. 선생님들. 도장이 하숙집인 줄 아십니까? 도장은 고귀한 전통문화의 전당이에요.”


“저희가 돈도 매달 보내겠습니다. 더 필요하신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감독관 님, 제발요….”


“제가 돈 때문에 이러시는 줄 아세요? 제가 돈벌레로 보여요?”


옥은 얼굴이 시뻘게져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런 뜻이 아니라… 감독관 님. 저희 유리가 뭔가를 해보겠다고 표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뭐가 하고 싶냐 이거 해볼래 저거 해볼래 권유해도 심드렁한 애가 나서서 배우고 싶다는데 부모로서 해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건 당신네 사정이….”


“스승님, 한 말씀해 주세요. 서예는 평등하다. 누구나 붓을 들 수 있다. 말씀하셨잖아요.”


홀로그램의 시선을 따라 옥은 뒤를 돌아보았다.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옥은 어금니를 깨물고 인상을 구겼다. 길어지는 대화에 유리가 안절부절못하자 휘지가 무슨 상황인지 보고 오겠다며 들어온 것이었다.


“감독관 님.”


“네가 나설 자리 없어. 나가. 당장.”


“한 명 더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유리의 부모의 표정을 밝아졌다. 옥의 얼굴이 더욱 찌그러졌다.


“서예 도구 창고 한편에 이불 하나 깔아주면 불편해도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먹는 거는 감독관 님 식사에 수저 하나 올리면 되지 않을….”


“잠시만요.”


옥은 음소거와 카메라 아이콘을 눌렀다. 눈과 귀가 막힌 유리의 부모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옥은 휘지의 턱밑까지 다가왔다. 휘지는 턱을 당기며 옥을 내려보았다.


“쟤 하나 받아들인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야. 한 명이 두 명 되고 두 명이 세 명 되고 그러다 어중이떠중이들 다 모인다고. 알아? 쟤만 예외로 받아들인다고 쳐. 그럼 쟤 키우는 돈은? 시간은? 땅 파면 나와?”


“저 사람들이 보낸다고 하잖아요.”


옥은 한숨을 푹 쉬었다.


“돈 받으면 참견할 여지를 주는 거야. 자기 애 잘 지내냐 심심하면 물을 거고 툭하면 얼굴 들이밀겠지. 그뿐이겠어? 하룻밤만 보내게 해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할 수도 있어.”


“그러면 안 되나요?”


휘지는 순진한 얼굴로 옥을 바라보았다. 옥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면 안 되나요? 야, 이 깡통아. 도장이 사람들 가르치는 걸로 끝이야? 여기에 검사실 하며 연산실하며 일급비밀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을 함부로 들이자는 거야, 자꾸.”


옥은 주먹으로 휘지의 머리통을 쿵쿵 내리찍었다.


“쟤가 이상한 마음 품고 있으면 그땐 어떻게 할 건데.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사람 속을 어떻게 알아.”


“제가 보기엔 이상해 보이지 않았어요.”


“아이고. 언제부터 독심술 장인이 되셨는지 몰라 뵈었네요. 깡통아. 네가 잘하는 건 기껏해야 붓으로 글씨 쓰는 거야. 그거 빼면 네가 뭐 나은 게 있어? 청소 안드로이드보다 더 나은 것도 없으면서 뭘 믿고 쟤를 받아들이려는 거야.”


“유리와 대화를 많이 했어요.”


옥은 듣기 싫다며 손을 허공에 젓고는 휘지를 등지고 소파 손잡이에 걸쳐 앉았다.


“유리는 진심으로 서예를 배우고 싶어 했어요.”


“그것만으로는 안 돼. 도장에 발을 들였을 때는 다들 그래. 다들, 뭔가 될 줄 알지…. 하여튼 문제가 생겼을 땐 누가 책임질 거야. 나는 못 져.”


“제가 질게요. 제가 유리를 보장할게요.”


“인마, 깡통! 도대체 네가 왜 주제 모르고 나서는 거야. 쟤를 언제부터 봤다고.”


옥은 이만큼 휘지가 유리를 지지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휘지는 유리의 처지가 불쌍하다거나 유리가 매력적이라거나 휘지의 사고 회로가 망가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휘지는 스스로 원하는 것을 정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고 싶었고, 휘지는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이었다.


“문제가 터진 다음에는 늦어. 보장 문제가 아니야.”


“저희가 책임질게요.”


낯선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감독관 님께서 걱정하시는 문제, 하나하나 서면으로 작성하고 공증까지 받겠습니다.”


유리의 부모가 간절하게 옥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휘지가 음소거와 카메라 송출을 해제했다. 옥은 책상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휘지에게 다가갔다.


“이거 끝나면 검사실에 처넣을 줄 알아.”


휘지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옥은 유리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유리의 부모가 서예 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일절 참견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돈은 받지 않았다.


옥은 ‘전문 문하생’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적게나마 본부에서 지원을 받았다. 유리 같은 어린아이들도 서예가 배우고 싶은 매력적인 전통문화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홍보 플랜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덧붙여서. 실제로도 도장 이용률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고 이대로 가다간 서예 장인을 폐기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본부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쉽게 승낙했다. 상납금에 차질만 없다면 본부는 도장에서 무슨 일을 벌이든 상관없었다.


제 발로 도장을 찾은 만큼 유리는 서예에 진심이었다. 도장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마음만 앞서선 최고급 족제비털 붓을 다룰 줄도 모르고 먹부터 묻혔지만 유리는 달랐다. 유리는 좋은 먹과 벼루를 고르는 법을 익히는데 몇 달을 보내고 한지에 붓을 찍고 선을 그리는데 또 몇 달을 보냈다. 가로. 세로. 넓게. 좁게.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도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수준이 될 때까지 게으름 피우지 않았다.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세우는 모습이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옥은 이런 유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앞날이 창창한 어린아이가 사死문화에 목을 매다니. 저것도 잠깐이야. 현실을 깨닫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겠지. 하지만 유리는 묵묵히 붓을 들었다. 평범한 선긋기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미흡하게 느껴지면 휘지를 찾았고 휘지도 자신이 알려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제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제자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스승이 채운 것 이상을 스스로 채우고도 넘치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꾸준한 모습에 유리를 향한 옥의 시선도 서서히 바뀌었다.


“언제까지 선만 그릴래? 다른 사람들은 오자마자 글자 쓰고 싶어 안달인데 너는 왜 이리 느긋해?”


“감독관 님. 저는 저만의 템포가 있어요.”


“너무 느리니까 하는 말이지. 그리고 전문 문하생으로서 결과를 보일 의무가 있어.”


“자기 말 안 들으면 전문 문하생 타령하시더라.”


“유리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유리는 아직 자신의 선에 만족하지 못했지만 옥의 등쌀에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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