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지>
*
촬영용 드론이 차례차례 요트에 착륙했다. 하늘에는 검정 드론 두 대만이 거친 엔진 소릴 내며 떠있었다. 연구원은 자기들이 처리할 수 있는 것부터 해치웠다. PDCP가 예측대로 동오스트레일리아 해류에 실리는지 플라스틱을 분해하는지 확인했다. 옥 역시 스트리밍이나 데이터 공유를 처리하느라 바빴다. 태블릿도 내려놓고 작업에 몰두했다.
휘지는 선체 끝으로 걸어갔다. 두루마기가 허물처럼 몸에서 흘러내렸다. 휘지는 가장 멀리 있는 모서리 요트에 신경을 뻗고 바다에 전극을 흘렸다. 머리털이 쭈뼛 섰다. 바다에 녹아들던 나노머신 캔버스 일부가 해수면에 허옇게 굳었다. 모니터링을 하던 연구원들은 깜짝 놀라 전극을 끊으려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휘지는 아이 드론을 높이 띄웠다. 캔버스는 완전하지 않았지만 글자를 쓸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순수도 저하 감지. 감독관은 주의를 기울여주십시오.]
휘지는 경고문을 무시하고 브러시 드론을 움직였다.
[순수도가 기준치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안전감시 프로그램 작동.]
삐—. 경고문이 휘지의 시야를 뒤덮고 알림음이 정신을 뒤흔들었다. 휘지의 무릎이 꺾였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휘지는 흰색 쪼가리에 글자를 새겼다. 我.
종아리와 무릎 덮개가 떨어졌다. 기어 밴드와 실린더가 볼품없이 드러났다. 자세가 무너졌지만 휘지는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껍게 겹친 경고문이 시야를 가렸고 알림음도 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시끄러웠지만 브러시 드론은 어느 때보다 경쾌한 엔진 소리를 내었다. 愛.
“휘지! 인마, 깡통! 너 뭐해. 미쳤어?”
이제야 경고문을 확인한 옥이 선체로 달려왔다. 허리를 감싸고 있던 피부 덮개가 모두 떨어져 프레임과 실린더가 화석처럼 드러났다. 가슴과 어깨도 흉측한 뼈대만 남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조립을 기다리는 미완성 안드로이드처럼 보였다. 고풍스러운 장인의 자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옥은 태블릿을 찾았다. 휘지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시뻘건 경고문이 겹겹이 겹쳐 한눈에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옥은 신경질적으로 경고문을 날렸다. 마침내 마주한 휘지의 상태에 옥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올 레드. 단순히 위험하다고 말할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옥은 태블릿에서 연결선을 뽑아 덮개가 떨어진 휘지의 경추에 꽂았다. 子.
87, 82, 72, 53, 39. 순수도 그래프는 절벽이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장인 데이터베이스가 오염될 소지가 있었다. 어쩌면 이미 심각하게 더럽혀졌을지도 모른다. 옥은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옥은 데이터베이스부터 분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안전감시 프로그램이 이미 데이터베이스 분리와 육체 해체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외피가 떨어지고 가동부가 멈추고 데이터베이스마저 분리된 안드로이드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지? 메모리만으론 휘지는 단단히 앞을 가로막은 장애물을 넘을 수 없을 터였다. 놀랍고 두려웠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옥은 감독관이다. 옥은 휘지의 메모리를 다운로드하면서 강제 정지 시퀀스로 넘어갔다.
“바이러스라도 걸렸어? 다 끝났는데 대체 왜 이래. 정신 차려!”
옥은 휘지의 어깨를 잡아 끌어당겼다. 하지만 휘지는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며 집중하고 있었다.
태블릿 화면 중앙을 가로지른 진행바가 전부 채워지고 셧다운 코드를 입력하는 빈칸 네 자리가 나타났다.
“간도칸 니…….”
휘지는 노이즈 섞인 먹먹한 소리를 내었다. 발성 장치는 진작 제 기능을 잃었고 턱은 전선 하나에 매달려 덜렁거렸다.
옥은 지체 없이 빈칸을 채웠다. 확인 버튼만 누르면 휘지는 완전히 멈춘다. 하지만 옥은 누르지 못했다. 휘지와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다. 도구 따위에 정이 들어버렸다. 통달하지 못할 바엔 서예를 지키겠다는 맹세는 어디 갔어. 이래선 감독관 탈락이다.
“간도칸 니…….”
휘지가 돌아보았다. 두 개의 공동空洞 너머 아이 드론과 브러시 드론이 추락하고 있었다.
“핸버케 즈새여.”
휘지는 웃었다. 진심을 다해 활짝 웃었다. 옥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안녀.”
휘지의 앙상항 몸통이 앞으로 기울었다. 가냘픈 연결선이 휘지를 붙들었지만 찰나도 버티지 못했다. 휘지와 옥의 연결은 간단히 끊어졌고 한때 휘지를 이뤘던 부품들이 흩날렸다. 옥은 난간에 달려들었다. 바다 위엔 동심원 몇 개와 캔버스 파편, 그리고 형편없이 휘갈긴 글자가 남아있었다. 유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