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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명함 밖, 내 이름

by 있잖아

처음 명함을 받았을 때, 괜히 심장이 뛰었다. 작은 종이 한 장에 내 이름과 회사 로고, 직함이 찍혀 있었고
그게 나를 갑작스레 어른으로 만들어준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먼저 명함을 꺼내 들었다. 마치 그것이 나를 증명해 주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공허감이 찾아왔다. 계속해서 일은 하는데,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명함에 적힌 짧은 설명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게 '나'인가? 내 이름 앞의 수식어를 빼면, 나는 누구지?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맡은 역할을 하고 있을 뿐, 그 경계를 벗어나면 금세 사라지는 등장인물 같았다.

그때부터 생각하게 됐다. 명함 없이도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소속의 도움 없이,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얘기할 수 있을까? 그 전에,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누군가 만들어준 네모 칸에 이름을 얹어놓기보다는, 오롯이 나를 위한 네모 칸을 만들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 이름만 들어도 '아, 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내가 오늘 나에게 한 질문에 답할 수 있지 않을까.



*노래: Better tomorrow

https://youtu.be/f8CYhWHtaIY?si=VbDRP_c6OQSSu5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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