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의 조각들
지금은 '드라이브 최적화'라는 기능으로 남겨진 '디스크 조각 모음'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컴퓨터가 느려지면 "디스크 조각 모음 해봐"라고 흔히 말했었지요. 간단히 말하자면 조각으로 '단편화'되어 서로 다른 곳에 저장된 파일을 빠르게(한 번에) 불러오기 위해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다시 저장하는 작업입니다. 꽤 시간이 들었지만 중요하게 생각되었어요. 이제는 마치 근현대사의 어느 부분처럼 들리는 것 같기도 하네요.
어떤 경험과 기억들은 저마다의 연관을 짓지 못한 채 여러 곳에 따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사람의 나이를 좌표로 보았을 때, 흘러가는 시간에서 발생한 여러 이벤트는 서로 다른 곳에 단편화되어 점과 같이 찍혀있게 될 거예요. 어느 순간 서로 다른 지점의 기억은 연결 지어지기도 합니다. 혹자는 이럴 때 실제 우리의 뇌세포도 서로 연결된다고 하더군요. 단순한 기억보다는 이렇게 연결된 한 덩어리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그 연결들을 패턴 삼아 개성을 나타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이겠죠.
사진: Unsplash의Malcolm Lightbody
2. 우연들
기억의 조각들을 모으는 데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그저 우연인 줄 알았던 사건의 인과관계를 알게 되는 시점, 서로 다른 우연들이 연관 지어지는 찰나가 그런 것입니다. 우연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시나브로 시작되고 반복된 우연이 '필연'이라 느껴지는 순간에서 조각난 단서들을 이어 붙이게 되지요.
봄을 지나 푸른 잎으로 가득했던 2023년의 여름은 머릿속 안개가 걷힌 만큼 선명하게 다가왔다. 열두 살로 새롭게 세상에 발을 내밀었던 나에게 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은 손에 들린 유전자 검사 결과였다. 당연하게도 모야모야병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억의 조각을 다시 모을 때였다.
15년이라는 시간을 되돌려 다시 2008년의 마지막 주로 돌아갑니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엄마는 급히 가까운 2차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차례 심정지를 겪고 유일하게 뇌수술이 가능한 다른 2차 병원으로 무사히 이송되어 수술을 무사히 끝냈습니다. 회복만을 고대하던 이튿날 다시 뇌출혈이 발생하였고, 수술해 줄 의사는 없었습니다. 이미 뇌혈관이 많이 약해져 있어 수술을 한다 하여도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를 허무하게 보냈어요. 당시 담당의는 엄마의 형제들에게 뇌혈관 MRA검사를 받게 권했습니다. 다행히 모두 괜찮았어요.
다음 순간은 2020년의 여름입니다. 둘째를 낳고 몸조리를 잘못했던지 몸이 퉁퉁 부었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지요. 이제 막 짓궂은 얼굴로 침대 위를 뛰어다니는 첫째가 많이 걱정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왼쪽 손이 저린 증상을 시작으로 어지럼증과 발음이 뭉개지거나 말이 잘 안 나왔지요. 약 한 달의 기간 동안 일주일에 1~2번 겪었던 증상은, 왼쪽 다리를 절었고 또 나아지는데 많은 휴식이 필요했던 어느 날을 기점으로 사라졌습니다.
마지막은 2021년의 여름입니다. 숙고하던 뇌혈관 MRA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난해의 증상도 마음에 걸렸지만 매해 검사하고 싶었던 항목이기도 했습니다. 우측 중대뇌동맥폐색이 관찰되었습니다. 이미 머릿속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진단은 의사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명확한 건 뇌혈관 4개의 큰 가지 중 한 개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의 머릿속(SDXL AI 생성 이미지)
3. 그러니 나중보다는 지금
대학 때 관심이 가는 분야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 후성유전이라는 유전공학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유전자 검사 결과는 반드시 그런 질병이 걸린다는 보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략 알고 있습니다. 한 질병에는 여러 유전자와 환경요인이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포함해서요. 그런데도 나의 뇌가 취약하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또 큰 일이었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미 세상 어떤 것도 모두 엄마인 내 탓인 것만 같은데 내 아이에게 무엇보다 중요할 뇌와 혈관에 관련된 취약함을 바로 내 손으로 직접 건네준 것만 같았거든요. 한창 첫째가 심한 열성경련으로 몇 년째 응급실을 오가고 있었기에 마음의 짐은 줄어들 길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 대비할 수 있습니다. 현재를 귀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미처 예비할 길도 없이 어느 순간 떠나버린 나의 엄마와는 다르게 나중보다는 지금을 우선할 수 있습니다. 우연의 조각들은 아직도 맞추어 가고 있지만 삶의 방향은 언제나 현재를 향한 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겁니다.
글을 쓰고 회고하는 것은
더 나은 나를 위한
느린 조각 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