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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옥 Mar 04. 2021

사랑의 매

때리는 자도, 맞는 자도 아픈데..., 사랑은 어디에?

어릴 때 둘째 동생이랑 매일같이 싸웠다. 괴팍한 성질에 민감성 대마왕이던 나는 애교 넘치고 둥글둥글한 여동생과 걸핏하면 툭탁거리며 다퉜다. 그날도 무슨 이유였는지 나는 크게 동생에게 화를 냈고, 아니나 다를까 동생은 "우와왕" 울음을 터뜨렸다.


옥섭 씨는 회초리를 들었다.


"언니가 동생을 돌보고 감싸줘야지 그렇게 울리면 어떡해? 종아리 걷어!"


"차아악!", '하나', "차악!", '둘', "차악!", '셋'..., 석대쯤 맞았을 때부터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말 그대로 '불같이 뜨거운' 눈물이었다. '다 동생이 잘못해서 화를 낸 건데, 왜 엄마는 나만 때리지?', '왜 싸운 이유도 묻지 않는 거지?' 억울함을 심장 깊은 속에서 하나하나 헤아리며, 머리로는 매질의 회수를 셋다. 일곱 대. 옥섭 씨는 딱 일곱 대를 때리고 회초리를 놓았다. 물리적으로 30초도 되지 않았을 그 시간은 내 의식 안에서 영겁과 같았다. 종아리는 아팠고, 마음은 아렸다. 커억 커억, 기어이 큰 소리로 울면서 나는 집을 뛰쳐나갔다.


생각 같아서는 영영 그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그 상황마저도 비참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귀신처럼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나는 뭐하러 태어났나, 내 말은 하나도 듣지 않는 옥섭 씨는 과연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할까'. 나는 고아처럼 느껴졌다. 이럴 바에야 자살을 하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세상이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나는 동네 골목 한켠에 앉아 그런 생각을 뭉게뭉게 떠올렸다. 그때 옥섭 씨가 나타났다.


그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면서 나는 한편으로 안도했고, 한편으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옥섭 씨가 와줘서 고마웠지만 또 아주 미웠다. 절뚝이며 집에 들어가서 나는 옥섭 씨가 시키는 대로 이불 위에 엎드렸다. 그녀는 퉁퉁 부운 내 종아리에 안티프라민을 발라주었다. 옥섭 씨의 손길이 회초리 자국 따라 움직일 때 나는 온몸을 들썩이며 울었다. 알싸한 파스 향이 방안을 가득 채우는 데, 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도 울고 있구나'. 옥섭 씨는 우는 목소리로 "다시는 그러지 마라"라고 조용히 타일렀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단 한 마디도 잘못했다고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점점 더 내성적인 인간이 되어갔다. 언젠가는 꼭 자살해야지, 라는 생각이 서른 살까지 자라났다. '가족은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명제에 늘 반감을 품었다. 옥섭 씨에게 처음으로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하기까지, 그로부터 이십 수년이 걸렸다.


요즘 아동학대에 관한 홍보 기획서를 작업 중이다. '사랑의 매'가 중요 키워드다. 옥섭 씨 그 단 한 번의 매질로 나는 엄마에 대한 사랑을 오랫동안 잃었고 앓았다. 사랑의 매는 사랑을 부르는 매인가, 사랑을 버리는 매인가. 하아, 아이디어도 안 떠오르는데..., 이 스토리가 그대로 기획서가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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