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지, 갓 지은 아침밥의 소중함
"치이 이 이익..."
"툭툭 딱딱, 탁탁탁탁..."
"보글보글 보글..."
아침 5시 40~50분쯤, 아직 혼곤한 의식을 깨우는 건 부엌에서 들려오는 리드미컬한 음향이다. 난 그대로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은 채, 귀를 기울인다. 옥섭 씨가 오래된 나무도마 위에서 호박이나 양파를 써는 모습을 떠올린다. 소리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가스레인지 위에서 열심히 끓고 있는 콩나물국과 허연 김이 뿜어져 나오는 밥솥을 그린다. 잠시 후 차아아악 착, 냉장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도 들린다. 곧 밥 익는 냄새가 내 방에 가득 찰 때쯤 나는 완전히 일어나서 라디오를 켠다.
고등학교 시절의 아침은 항상 이러했다. 내가 졸음을 참아가며 간신히 <굿모닝팝스> 한 시간을 듣고 나서 7시쯤 부엌으로 가면 그땐 뚝딱 상이 차려져 있다. 늘 새 밥, 새 국, 새 반찬이다. 와아 맛있겠다, 속으로는 감탄했지만, "엄마, 밥을 왜 이렇게 많이 펐어" 맨날 투정이 앞섰다. 그러고도 결국 밥그릇, 국그릇을 싹싹 비웠다. 그리곤 냉큼 옥섭 씨가 싸준 도시락을 집어 들고 학교로 향한다.
당시 내가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때는 딱 아침뿐이었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저녁은 학교 근처 밥집에서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옥섭 씨는 아침에 늘 진수성찬을 차렸다. 식탁에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올라왔고, 가끔 닭발볶음도 해주셨다. 아침부터 닭발이라니! 그런데 그게 내가 다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 시간에 밥을 먹는 사람은 가족 중 거의 나 혼자였다. 옥섭 씨는 그렇게 매일 아침 5첩, 7첩 반상을 차려냈다, 겨우 나 하나 먹으라고.
어제 아침 뉴스에서 요즘 '미라클 모닝 챌린지'가 유행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도 하고, 새벽공부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한단다. 미라클, 미라클 챌린지... 나는 사과를 아작아작 씹으면서 앵커 목소리를 흉내 냈다.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곧 급하게 우유에 오트밀 두어 숟갈 타서 후루룩 넘겼다. 우유 데우는 것도 귀찮아 그냥 마셨더니, 으으 차다 차다.
혼자서는 고작 우유 하나 덥히는 것도 힘들어하는 주제에 이 십여 년 전 그때, 왜 그 과분한 대접을 고마워하지 못했나. 옥섭 씨에게 "고맙습니다", "오늘도 잘 먹었어요" 아니면 <굿모닝팝스>에서 배운 대로 "Thank you"라도 해줬어야 했다. 매일 아침 따뜻한 밥 한 상을 탁탁 차려주는 노고와 정성에 나는 지나치리만치 차갑게 응수했다. 사춘기라 쓰고 애송이라 읽으련다.
매일 아침 옥섭 씨가 차려준 미라클 모닝, 그게 지금 나를 만든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