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호사
얼마 전 지인이 설날 선물로 과일박스를 보내왔다. 탐스러운 포도며, 키위, 사과에 애플망고까지 들어 있었다. 한겨울에 이렇게 건강한 이국 과일을 받게 되다니, 예상하지 못한 호사였다. 최근 회사일이 바빠 입맛이 쓰던 차에 토실한 망고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바로 먹어도 될까, 살짝 눌러보았다. 딱딱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바로 과도를 집어 들었다.
조심스레 껍질을 벗기니 노란 속살이 드러난다. 신선한 향기도 솔솔 피어났다. 얼른 조각을 내 입에 넣었다. 몰캉몰캉 과육에서 단맛이 새어 나왔다. 달다, 달달한 망고가 새해 행복이로구나. 더 크게 두 번째 조각 썰어 우물우물 씹으면서 문득 망고 질감이 쫀득한 복숭아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망고와 천도복숭아는 친척 관계가 아닐까, 중얼거리다, 아, 이 느낌은 통조림 황도의 그것에 더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봄마다 앓았다. (옥섭 씨는 내가 4월에 태어나서 그렇다는데, 지금은 봄에도 건강한 걸 보니 그냥 그때 내가 허약한 탓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옥섭 씨는 바쁘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벌이에 바쁜 엄마, 아빠는 우리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에 휴일도 없이 일하는 부모님의 상황을 내내 보면서 자란 나는 꽤나 조숙했다. 용돈 필요하다는 말을 잘하지 못했고, 아프니까 돌봐달라는 요구를 안 했다. 어느 해 봄, 나는 또 몸살감기로 앓아누웠다. 아무도 없는 방, 이불속에서 끙끙 대며 나는 속으로만 울었다. '엄마, 나 아파'.
고열과 오한으로 한참 꿈과 현실을 넘나들 때, 옥섭 씨가 왔다. 내 머리와 뺨에 그녀의 찬 손길이 닿았다. 그 손길이 심연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내 정신줄을 잡았다. "아이고, 우리 아가, 많이 아프니? 펄펄 끓네. 엄마가 금방 약 사 올게."
잠시 후 옥섭 씨는 쌍화탕과 약 다발, 통조림 황도를 사 가지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나는 그녀가 주는 대로 약을 먹고, 복숭아를 먹었다. 편도가 부어 삼키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맛있었다. 호로록호로록 설탕물을 넘겼다. 부드러운 과육을 씹으면서, 시원한 단맛을 느끼면서, 나는 왜 갑자기 그녀가 황도 통조림을 사 왔는지 궁금했다. 평소에는 전혀 먹지 못하는 음식이었다. 아프면 이런 것도 먹을 수 있구나, 싶었다.
곧 달큼한 뒷맛을 입안에 머금은 채로 푹 잤다. 약에 취했는지, 강력한 슈거 파워인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옥섭 씨가 나를 잊지 않지 않고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픈 나를 봐주어서 좋았다. 나는 그렇게 엄마의 관심이 고팠다.
아이러니하게, 그 뒤 나는 복숭아 통조림을 먹을 기회가 수없이 많아도 거의 손도 대지 않는다. 머리 큰 내 눈에 그건 설탕 졸임 가공품이다. 기억 속에 그날 내가 그토록 달콤하게 삼켰던 건 가공 복숭아가 아니라 내 간절한 부름에 대한 '엄마'였다. 오늘의 망고도, 그때의 황도도 달달한 호사다.